노인들이 경로당에서 가짜 물건을 비싸게 사는 이유?

한 동안 노인들이 복지관이나 경로당 등에서 턱도 없는 물건에 속아서 고가에 구입하는 피해사례들이 뉴스를 떠들썩하게 한 적이 있었다. 그 때 지금보다 좀 더 젊었던 나는 '딱 봐도 검증 안 된 건데 그게 안 보여서 저 돈을 주고 사냐, 어이그~~'라며 사기 당한 노인들을 한심해 했었다.


그런데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가!!!??? (미리 말하지만 내가 지금부터 언급하려는 이 물건이 가짜 또는 엉터리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스스로의 한심함에 대한 성토를 하려는 것일 뿐)

귀여운 내 고양이 두 마리

'요즘은 미세먼지 때문에 공기청정기 외에도 고체산소라는 것이 대응책으로 잘 팔리고 있다'고 전하는 뉴스가 어느 날 귀에 쏘옥~ 들어왔다. 평소에는 콩으로 메주를 쑨다해도 절대로 믿지 않는 극우 방송사의 뉴스였는데, 그리고 그 채널은 웬만하면 안 보게 되는데 어쩌다 지나가던 길에 그 소식만 희한하게 쏘옥~ 그렇잖아도 환기가 힘 드는 계절에 고양이 형제가 말을 못해 그렇지 집안에서만 생산되는 미세먼지만 해도 얼마나 괴로울까 마음이 쓰이고 있었던 참이어서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고체산소는 유해가스를 제거하고 산소를 발생시키는 역할을 해서 공기정화 기능을 발휘하는 것으로 전기를 쓰는 것도 아니고 그냥 개봉만 해서 원하는 장소에 놓기만 하면 되므로 아주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설명이었다.

산소 한 그루

찾아보니 과연 이런 고체산소가 있었다, 21000원 - 두 개, 세 개 묶음도 있었지만 검증도 확실하게 되지 않은 것, 그리고 검증 할 방법도 없는 것, 일단 버릴 셈치고 하나만 사보자 했다 - 이거 하나를 방에 두면 15m의 소나무 한 그루가 방에 있는 것과 똑 같은 효과를 낸다나...


요즘은 항균필터, 매트리스에서까지 유해물질이 뿜어져 나오는 세상이니 믿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더구나 이런 물건은 카트리지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 방법이 없다. 시험 성적서를 잔뜩 올려 놨지만 크기가 너무 작아 한 자도 알아볼 수가 없고 확대도 안 된다, 읽지 말라는 거다 ㅎㅎ

고체산소

집에 공기질 측정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게 효과가 있다고 어떻게 믿는다냐... - 멀쩡하게 이런 생각을 하면서 기어이 하나를 사보는 심리는 도대체 무엇일까? 주말에 결제를 했기 때문에 취소할 시간도 얼마든지 있었는데 말이다. 아무튼 물건이 왔는데 냉장고에 쓰이는 탈취제와 겉모습은 완전 닮았다. 실제로 안내에도 100일 동안 산소발생의 의무를 다하면 탈취제로 쓰라고 돼 있었다.

산소발생 카트리지

시키는대로 스티커를 제거하고 종이케이스에 공기구멍을 뽕뽕 뚫었는데 다시 저 위의 박스 안에 넣어 쓰는 것은 아무래도 하고 싶지 않다. 그렇게 꽁꽁 싸서 무슨 정화의 효과가 있겠냐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침대 헤드 뒤의 산소발생 카트리지

그래서 그냥 맨 카트리지를 잘 안 보이는 침대 헤드 위에 슥~ 끼워놓고 말았다. 그리고는 생각한다, 광고나 설명은 1도 신뢰하지 않으면서 이걸 왜 샀니? 이 정도 의심이면 플러시보 효과조차도 기대할 수 없을 것 같은데 말이야. - 


결론은 "늙어서"이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팔랑귀가 되어간다는 걸 어느 순간부터 느끼고 있긴 했지만 이성적으로는 전혀 아니라는 판단을 하면서도 기어이 "혹시나"하는 마음과 경험 해보고 싶은 호기심 그리고 안 사면 뭔가 손해 볼 것 같은 막연한 조바심 ㅋㅋ 늙었어, 확실히 늙은 것이여~

조잡한 산소발생기

"우이씨! 또 돈만 버렸어" 하다가 혹시나 멀쩡한 남에 제품 대놓고 불신하는 것 같아 공기질 측정기라도 하나 사야하나, 찾아보니 웬만한 물건은 공기청정기를 차라리 하나 사는 게 낫겠다 싶을만치 비싸다. 2만 원짜리 물건 시험해보려고 그 열 배로 비싼 물건을 산다는 건 더더욱 미친 짓 같고 (아, 공기청정기 - 이것도 할 말이 많은데...)  


아무튼 산소가 정말 발생이 되고나 있는지 아니면 또 다른 무슨 물질이 뿜뿜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못 느끼는 상태에서 버리기는 아까워 자꾸만 툭툭 떨어지는 물건을 굳이 줏어 헐렁한 침대헤드 뒤에 끼워가며 곁에 두고 있다

공기질 측정기

찾아보니 이런 물건이 공기질 측정기 중 가장 싼 가격대인 3만 정도로 팔리고 있는데 살까? 또 유혹을 받는다.


이로써 내게는 '노인들이 경로당에서 가짜 물건을 비싸게 사는 이유?'가 설명이 된다 - 팔랑팔랑, 머리로는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그저 마음의 팔랑거림을 이기지 못해 크고 작은 저지레를 하는 이런 것. 이렇게 나도 노파가 되어가고 있드아~ (노인=팔랑귀를 생각해보니 여기저기 끊임없이 몸이 불편해지니 뭐라도 도움이 된다면 이 전보다 더 쉽게 솔깃해지는 것이구나, 스스로의 심리를 분석해보니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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