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고양이 형제에게 처음으로 유튜브 동영상을 보여준 것이 12월 2일(그 날의 글 - 도둑 맞은 내 고양이 두 마리) , 그러니까 불과 열흘 전의 일이다. 그러나 동영상이란 것이 늘 켜져 있을 수만은 없는 것인데다 틀어준다고 해도 고양이 형제가 늘 집중하는 것도 아니어서 필요하다고 느껴질 때만 틀어주게 되는데
사나흘 전부터 하얀 고양이 얼룩 고양이 번갈아 가며 시커멓게 꺼진 티비 앞에 이러고들 목을 빼고 앉았다 - 필요할 때 틀어준다는 것은 이 전까지 순전히 집사의 판단으로 이뤄지는 것이었는데 티비를 많이 보면 고양이드도 흡수하는 정보가 많아 영악해지는 것일까, 이 순간부터 채널권은 전적으로 고양이 형제에게로 넘어가고 말았다
한참을 저러고 앉았는데 못 본 척 버티고 있었더니 급기야 "집사야, 머하노 티비 안 켜고?!" 성화를 부린다
"옛다, 동영상!" 광고니 뭐니 금새 플레이 되지도 않는 것을 이럴 때는 놀랍도록 끈질기게 기다리고 앉았다. 이 고양이, 사냥감이 나타나기까지 얼마나 더 기다려하는지 집사보다 이미 잘 알고 있는지도 몰러~~ 이 번에는 제법 현실감이 있는 빨간 풍뎅이인지 바퀴벌레인지가 온통 화면을 zzzzzzz~ 하며 돌아다니니
화면 밖으로 떨어진 벌레 사냥 하느라 이쪽 저쪽 분주히 뛰어다니며
냄새까지 맡아가며 수색을 하다가
무슨 중대한 생각을 했는지 몹시 급하다는 표정으로 돌아서더니
풀쩍 뛰어 내리더니 티비와는 반대쪽 벽에 있는 선반 위로 뛰어오른다
그리고는 티비를 가장 정면으로 잘 볼 수 있는 위치에 자리잡고 한참을 골똘 하길래 집사, 짧은 생각에 "거 봐라, 멀리서 보니 더 잘 보이재?" 했다
침대 위에 앞드려 있던 경철 고양이, 제 형의 난데없는 호들갑에 의아해 하는 시선을 보낸다 - 아직 동영상이 돌아가고 있는 걸 못 본 모양이다
그런데 어라? 중간 샷을 건질 사이도 없이 고양이는 다시 날아서 티비 아래로 진출 하는 중이다
그제서야 집사는 고양이가 한 수 위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왜냐하면 다시 휘릭 건너 간 모습을 보니 이 쪽으로 건너 왔던 것은 화면을 더 편히 잘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 눈에 전체적인 상황을 파악하고 합리적인 작전을 세우기 위한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꿈보다 해몽이라고들 하시겠지만 고양이는 태생이 뛰어난 사냥꾼이라 사람과는 사고가 다르기 때문에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진심!)
하얀 고양이, 제 형의 동분서주를 구경하다가 드디어 동영상이 돌아가고 있는 걸 발견한 뒷모습이다
그래, 그거 보고도 안 부러우면 고양이 삼신이 아니지~ 어느 새 아래로 내려가 바구니 속에서 미어캣 자세가 됐다
우리의 미어캣, 도저히 사냥본능을 누를 수가 없었던지 이미 사냥에 푹 빠진 형 옆으로 훌쩍! 뛰어올랐다
"어라? 이건 뭐?" 돌아보는 형의 서슬에 하얀 고양이 제 풀에 끔쩍 놀라 눈이 검실~ (여담으로 이런 건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다, 어떤 모습이든 상관없이 '내 고양이 두 마리의 풍경')
그렇지! 손찌검이 작렬할 정확한 타이밍이다. 만날천날 옷에 저렇게 손톱자국이 나도록 구타를 당하는 딱한 경철 고양이~ 우리집에는 왜 티비가 하나 밖에 없는 것이여...
오늘은 요행히 경철 고양이가 먼저 귀뚜라미를 차지하고 앉았다 - 집사 머리에는 경계경보, 경철이 다시 구타 당하고 물러나기 전에 무엇이라도 해야한다. 허둥지둥 후다닥!
솔로몬의 지혜! - 노트북으로 보는 유튜브다. 철수는 청력에 이상이 없으니 새들이 지지배배 날아다니는 것으로. 다행히 금새 집중, 나중에는 키보드를 밟고 서서 사냥에 나서 동영상이 더덜덜~
그리하여 고양이 두 마리는 이렇게 각자 제 영상에 몰입하여 오래오래 사이좋은 저녁시간을 보냈다고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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