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전 새벽에 경철 고양이가 구토를 했다. 철수 고양이의 구토라면 8년여를 지내는 사이 거의 일상다반사가 되어(철수는 건사료나 그것처럼 생긴 키블 형태의 간식을 먹으면 토한다) 예사로운 일이지만 경철은 분기에 한 번 토할까 말까여서 헤어볼이 나오지 않는 구토라면 집사 신경이 꽤 곤두서게 된다.
한 번 시작한 구토는 4번이 거듭 되는 동안 거의 물만 뱉아내면서 매 번 끝머리에는 "아이!"하는 짜증스런 비명으로 끝이 나 마치 무엇인가 뱉아낼 것이 있는데 안 나와서 짜증스럽다는 투로 들렸다 - 그런데 야아는 왜 토 할 때마다 뛰어다니면서 하는지, 네 번을 뛰어다니며거듭 토하니 그 부분 만이라 할 것도 없이 거의 온 집안을 새벽부터 청소 해야만 했다. 예전에 침대 위에서 토하길래 한 번 밀어낸 적이 있는데 그것이 트라우마로 남아 뛰어다니나 죄책감이 생기기도 한다
토 하느라 저도 힘들었는지 졸졸 따라다니지도 않고 멍하니 앉아있다. 종일 구토가 이어지면 병원엘 가야한다... (이것이 집사나 고양이에게나 최고의 스트레스다) 이동장 문짝도 다 망가졌는데 우짜노, 지금이라도 주문하면 내일 쓸 수 있을까, 이제 나이가 있으니 슬슬 질병이 오는 것인가, 생각만으로 천국과 지옥을 수십 번 오간다
밥 시간이 되어 혹 뭔가 걸려서 안 나오는 것이라면 많이 먹고 토해내라고 안 주던 건사료까지 듬뿍 같이 차려주니 오랜만에 보는 건사료라 특식으로 여겨졌는지 습사료 다 먹고 건사료까지 한 끼 양을 싹싹 다 해치우신다 - 잘 먹는다고 안심할 수는 없다. 다시 토 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때까지 집사 마음이 어땠는지... 그것이 이틀 전이었는데 하루종일 지켜보며 평범하고 여여한 일상, 밥 먹고 싸고 걸어다니고 등의 너무나 당연한 일상들이 새삼 고마워졌다.
근사하고 멋진 것을 많이 소유하고 누리는 것에 행복해 하고 감사해 할 일이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일상을 여여하게 이어나가는 것이 가장 기적적이며 감사할 일이라고
지난 주말에는 철수가 몇 시간이나 눈을 이렇게 뜨고 있어 얼마나 또 노심초사 했던가... 이 날도 이 현상이 지나간 후의 안도감, 특별히 즐거우려고도 부유하려고도 하지 말자, 그저 행복이란 우리 모두 무사히, 밥 굶지 않고 비바람 맞지 않고 육체적인 고통 없이 살다 가면 그것이 가장 행복하게 살다가는 것이려니 했었는데
이 후 나는 스스로 움직여 일상을 치뤄내고 심지어는 화장실도 잘 가고 밥도 잘 먹는 나 자신이 기특하고, 고양이들도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아 줘 아이들이 움직일 때마다 밥을 먹을 때마다 순간순간 감사함을 느낀다. 모든 평범한 것들이 새삼 눈에 뜨기 시작하고 그 때마다 감사함을 느낀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이 모든 것들이 또 누군가에게는 기적으로 여겨지기도 할 것이라는 말로만 오래 알던 것을 요즘에서야 자각하기 시작한 것이다(이 또한 기적이다)
이 생명들을 책임지는 집사라는 위치에 있지 않았더라면 평생 깨닫지 못했을 이런 것들 - 고양이 또는 작은 생명이란 것은 곁에 있어 예쁘고 사랑스러운 것이 전부가 아니라 더러 인간의 감사할 줄 모르는 오만함까지 일깨워주는 기적 같은 힘을 가졌으니 나날이 소중해지고 의미가 깊어지는 생명들이다
이제부터는 보너스 샷들? - 철수 고양이, 끈을 사냥해보려고 날뛰다가 저렇게 화면을 짚은 상태에서 저 방향으로 주루룩~ 미끄러져자빠져 버렸다 (야아는 얼마나 와일드 한지 마구 점프를 하다가 동영상 한 번에 적어도 두 번은 미끄러지거나 뒤로 자빠져 떨어진다. 좀 전에는 딛고 선 저 바구니까지 같이 뒤로 자빠졌다. 크히힛!)
식겁 했는지 "우이씨, 머 저런 게 다 있노!" 겨우 몸을 추스르고는 원망스럽게 화면 속 빨간끈을 돌아본다
아래의 새 바구니 속에서 그런 형을 올려다보는 경철 고양이를 찍는 사이
철수 고양이, 언제 내려왔노? - 입을 마주대고 뽀뽀를 하다니, 이것이야말로 자주 잡을 기회가 없는 진짜로 보너스 같은 샷이다!
그런데 입을 떼고 형을 바라보는 경철 고양이의 표정이 심상찮다. 그러고 보니 뽀뽀샷에도 꼬리가 살짝 부풀어 있는 것이, 그렇다면 느들 뽀뽀한 것이 아니었어?
경철 고양이의 꼬리가 한층 더 부풀어 오르고 잔뜩 불만스런 표정으로 들어가 있던 바구니에서 아예 뒷걸음질로 빠져나오기까지 한다
철수 고양이가 바구니를 들여다보는 폼새를 보니 "내 거야, 저리비켜!"라고 귓속말을 한 건가?
"흠!" 하는 표정으로 대장고양이가 고개를 돌리자 겁 먹고 뒷걸음질 친 고양이, 꼬리는 여전히 부풀린 채로 "흥!" 몰래 콧방귀를 끼며 도끼눈을 뜬다
단디이 일렀으니 정말 다시는 새 바구니에 안 들어가리라 믿고 돌아서는 건가?
이 고양이 감정표현이 정말이지 일품이다, 저 나쁜 놈이 확실히 갔나 어쨌나 골똘히 살피는 표정이더니
슬그머니 바구니 속에 두 손을 넣고 킁킁 냄새를 맡는 척하다가
여전히 꼬리를 부풀린 채로 긴장감의 입술 핥기까지 시연하는 동시에 제 형의 눈치를 살피면서 나머지 다리도 마저 바구니 속으로 불러들인다 - 아이고 저리 겁 나면 들어가지를 말지를...
대단하다 하얀 고양이! 변함 없이 근심스럽고 오금이 저리는 표정이면서 기어이 바구니 속에 엉덩이를 내려놓고야 만다
그런데 저 성질 더러운 엉아란 놈, 금새 다시 동영상에 영혼을 팔아버렸다
그리고 다시 빨간 노끈을 사냥하러 훌쩍 뛰어오르나 했는데...
끄응~ 제 동생에게서 등을 돌린 자세로 바구니를 타고 앉아 두 눈을 스르르 감는다 - 이 모습을 보니 저 윗장면들을 집사가 완전 잘못 해석한 것 아닌가 싶은 것이 진짜 문제는 바구니가 아니라 미끄러져 자빠졌던 것을 제 동생이 다 보고 얼마나 우스워할까 민망하고 부끄러웠던 대장 고양이, 방귀 뀐 놈이 성 낸다고 동생에게 괜한 심술을 부리고 다시 제 자리로 리턴한 것이었던듯? -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가르쳐 주고 덤으로 이런 웃음까지? 아무튼 여러모로 소중한 내 고양이 두 마리!
ⓒ고양이와 비누바구니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