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 고양이가 경철 고양이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관찰 당하는 놈은 짐짓 아무것도 못 느낀다는 듯, 무심한듯 그루밍을 하고 있다
하지만 집사는 잠시 이쪽으로 얼굴을 돌린 철수의 날름하는 혀에서 아까부터 뭔가 쎄에~했던 것의 실체를 본듯한데 경철이는 정말 아무 예감이 없어 저리 무심한 것일까?
그루밍을 마친 경철이 최애 낮잠자리인 피아노뚜껑 위로 뛰어 올랐고 혀를 날름거리던 철수도 곧바로 따라올라 멀찌기 자리를 잡은 다음 능청스럽게 그루밍을 시전하신다 - 중요한 것은 아까부터 세 식구 모두 이제 곧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고 있다는 것이다. 볼만한 장면이 예정 되지 않고 두 녀석이 그저 한 자리에 나란히 있는 일은 0%다
그러다 생각보다 신사답게 다가가 "경철아, 우리 그루밍 놀이할까?" "싫다, 니 하고는 안 한다!" 경철은 물론 그루밍 마치고 노곤한 낮잠 한 판 자려던 참에 저런 제안을 하니 귀찮았을 테지만 흥, 인간이 보고 있자니 거절 당하는 쪽이 나라고 해도 기분이 좋지는 않겠다. 아닌 게 아니라 경철은 무조건 제 형을 제치고 보는 까칠냥이다 - 이 순간, 어쩐지 서로간에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을 건드린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기분이 더럽게 상해버린 철수 고양이 단박에 제압포즈에 들어가신다. "시키야, 거절도 좋지만 태도가 그게 뭐얏!?" 그러나 저 밑에 깔리 고양이 표정 좀 봐라, 후다닥파다닥 등으로 누워 제 형 얼굴을 할퀴고 금새 튀어나가는 것이 정해진 순서인데 이번에는 귀만 쫑긋 마징가가 되어 비교적 느긋한 표정을? 오늘은 저도 호락호락 지지 않겠다고 마음 먹은 것일까?
"흐... 이 시키를 우짜꼬, 귀찮구마이~"
"어 이시키 봐라, 지롤발광 할 때가 됐는데... 야, 이 시키 너 뭐야? 사람이 아니, 괭이가 올라탔으면 싫다 좋다 반응이 있어야지!??"
경철 고양이의 뜻밖의 반응에 철수 고양이도 멈칫, 커다란 두 눈 가득 당황스러움과 의문스러움을 담고 있다. 아래 깔린 고양이의 "배 째라!" 표정 - 아아... 집사는 깊이 실망한다, 이 게임은 시작도 하기 전에 잔뜩 싱거워질 것 같은 피할 수 없는 불길함. 그렇구나... 철수야, 내 이제서야 확실히 깨달았는데 니들 체격을 보니 이미 게임 오버여~
하긴, 언젠가부터 슬슬 힘의 구도가 변해간다는 것을 집사는 인지하고 있었는데 그 시점이 경철이 철수보다 덩치가 커지고 몸무게가 더 나가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처음 보는 동생의 이런 반응에 대단히, 몹시 당황한 철수 고양이 "야, 니 뭐야! 약 먹었어?"하며 솜방망이로 머리를 한대 내려치니 오호, 요 시키봐라 스윽~ 머리만 피한다? 평소에는 제 형의 털만 닿아도 오만 지롤발광, 하악질에 생난리를 치며 빠져나오곤 하더니. 그래도 경철 고양이, 머리 눌려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싸움이 오래 가면 아무래도 제가 불리하다는 걸 인지했는지 "어허이~ 이 시키, 더는 못 참겠네" 눈 깜짝할 사이에 훅 퍽! 휘릭~
상황종료! 좌절 철수만 남았다. 이 꼴을 지켜보는 집사는 웃지도 울지도 못하겠다 --;;
어퍼컷 한 방 먹고 훌렁 나가떨어진 형을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건너다 보는 것이냐?
철수 또한 동생의 괴력과 당돌함에 현실을 깨닫는 눈빛인지 뭔지, 집사도 얼떨떨하다. 하지만 우짜겠노 철수야, 하늘 아래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니 이도 저도 받아들이고 소화를 시켜야재~ 평소에 네가 동생을 너무 함부로 대하긴 했어~
제 의지와 관계없이 가진 것을 잃어가는 자의 모멸감 좌절감 허탈함 그리고 창피함?
우오오~ Quo Vadis Domine!!!??? 신이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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