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 하자면 - 병원에서 선생님께 혼 난 셈이 됐다
어디 보자~ 시며 반갑게 아이를 꺼내 귀를 열어보시더니 "이렇게 소독이 안 돼 있어서..." 가 첫마디였다. 집사는 집사대로 "잉?!"
[병원에만 다녀오면 식욕폭발하는 고양이]
나는 나름 아이에게 할큄을 당해가며 한다고 열심히 했는데... 변명 따위 필요도 없다, 선생님이 하시는 걸 보니 전혀 다르다. 그리고 아이가 잘 제압당해 귀를 내주고 있다. - 물론 안정제도 먹었고 간호사도 있었고 나도 있어서 두 사람이 잡아준 탓도 있겠지만 아무튼 전혀 달랐다. 나는 혹시 절개 해놓은 곳이 덧날까봐 소독약을 거즈에 묻혀 안쪽 바깥쪽에 대고 톡톡 두드려주는 수준이었는데 선생님은 절개한 곳 사이로 고름도 짜내고 그 동안 나와 엉겨 있던 피고름들을 말끔히 닦아내시는 것이었다
[피고름으로 떡이 졌던 털을 선생님이 빗어서 정리 해주고 남은 자국이 확연히 보이는 옆모습이다]
나는 그렇게 하는 것이 소독인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그리고 생각 했다 하더라도 상처가 아플까봐 혹은 덧날까봐 절대로 그렇게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경력 오래 된 경험 많은 집사라고 까불거 뭐 있니, 내 아들뻘이나 될까 해도 서운찮을 만큼 젊은 전문가의 상식은 발끝도 쫓아가지 못하는 것을 - 아마 선생님도 소독이라고 하면 본인이 생각하는 수준의 소독을 집사도 하리라 생각 하셨을 것이다. 그래서 어제는 병원에서 배운대로 흉내는 내 봤는데 아무래도 전문가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는지 가렵다고 털고 깽깽대고 생지롤을 했다
그래서 오늘은 안정제라도 먹이고 언니의 도움을 받아 제대로 해 볼 생각이다. 그건 그렇고 이 아이는 왜 병원에만 다녀오면 이렇게 식욕이 대폭발할까나 - 환묘용 캔을 하나만 따 주었더니 모자랐던지 평소에 거의 안 먹던 건사료를 씹지도 않고 삼키고 있다. 더구나 이 날은 처음으로 병원에서 따로 안정제를 맞지도 않았고 집에서 먹고 간 그 약 기운으로 치료를 마치고 왔는데 말이다
"야아~ 대단하다 대단해!" 철수가 제 동생을 보고 그러는 것만 같다. 왜냐하면 이 고양이는 식탐이 거의 전혀 없는 편이니 저 꼴을 하고도 배가 터지도록 먹어대는 아이가 이상해 보이기도 할 것이다
철수는 또 다시 어수선함에 조용히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철 든 눈빛으로 집사를 바라본다. 미안하다...
아, 그런데 이 고양이 좀 보소! 씹지도 않은 건사료를 소화 시키기도 전에 창가에 자리 잡고 곤히 잠이 들었는데 아픈 이후로 처음 보는 편안한 모습이라 선생님의 손길이 얼마나 개운했는지 저 잠 든 표정에서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이다. 뽀송하게 빨아 말린 새 넥카라까지 했으니 더더욱 상쾌 하겠지~
정말로 개운하게 목욕하고 새로 옷 갈아입고 뽀송뽀송한 개운함을 느끼며 잠 든 모습이라 집사의 똥손이 얼마나 미안 하던지... 그러니 경험 많은 고양이 집사라고 까불지 마라, 소리가 스스로에게 저절로 나오더라
뜨고 있으면 왕방울 수정구슬 같은 눈이 감으면 왜 저렇게 단추 구멍보다 더 작아 보이는지 비밀을 아는 사람? 와중에 저 작아보이는 눈 덕분에 피실피실 웃음까지 나왔다
쓰던 넥카라는 다시 빨아서 세균이 번식 할까봐 제습기 위에 얹어 가능한 한 빠르게 말리고 있는데 이건 방수천이라 솜이 쉽게 마르지를 않는다
넥카라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넥카라에는 플라스틱으로 된 전통적인 것과 천으로 된 새로운 것, 두 가지가 있는데 선생님은 천으로 된 넥카라를 팔고 계시면서도 상당히 회의적인 반응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그저께 그루밍 장면에서도 -[고양이 형제 철수와 경철이] - 고양이 그루밍의 정석-이 고양이가 그루밍 하는 법- 보여 드렸지만 천으로 된 것은 아이가 그것을 손으로 들어올려 거기다 대고 귀를 비벼대니 그 만큼 상처보호 효과가 플라스틱에 비해 떨어져 2차 감염의 가능성과 더딘 회복이 예상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집사 입장에서는 플라스틱으로 된 넥카라를 쓰고 방향조절 높낮이 조절을 잘 못해서 가는 데마다 부딪히고 턱에 걸려 고개가 뒤로 꺾어지고 하는 탓에 아이가 훨씬 성격이 예민해지고 삐꿋만 하면 과잉반응을 하며 밥맛도 잃고 잠도 잃으니 차라리 좀이라도 스트레스 덜 받는 쪽으로 해주고 싶은 것이다. 물론 나도 플라스틱 넥카라를 하면 회복이 두 배는 빠를 수 있겠다는 것을 모르는 바도 아니고 부인 할 수도 없지만 아이가 가는 곳마다 턱턱 걸리며 그 때마다 고개를 치켜들고 뱅뱅이 치는 꼴을 보는 마음도 빨리 회복 시키고 싶은 마음 못지 않게 아픈 것이다. 어쨌든 선생님이 집사에게 져줘서 계속 소프트 넥카라를 하고 있기는 한데...
이렇게 한 쪽 구석에 경철이 약국을 차려 놓고 있는데 요즘은 내가 그 방향으로 움직이기만 하면 기절을 하고 침대 밑으로 숨어버린다 (저 두 개의 칫솔 용도는 하나는 더러운 귓털용이고 다른 하나는 경철이 직접 못하는 그루밍을 대신 해주는 용도인데 얼마나 그루밍에 목이 말랐는지 한 번 칫솔그루밍을 시작하면 비벼대고 구르고 고로롱대고 한 바탕 난리블루스를 춘다)
이렇게 집사의 움직임마다 눈치를 보며 과민하게 반응하는 아이를 보면 더더욱 내가 얼마나 무능한 집사인가를 실감하며 미안해진다. 무엇을 어떻게 더해서 이 아이를 조금이라도 더 편히, 더 빨리 낫게 할지... 많이 아는 척 까불지 마라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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