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개혈종 수술한 하얀 고양이는 몇날며칠 그루밍을 못하니 아이 꼴이 말이 아닌데...
무릇 고양이의 그루밍이라는 것은 이렇게 머리와 귀를 쓸어내려 입으로 가져가 침으로 닦아내고 또 쓸어내리고를 반복하는 것이 가장 익숙하고 흔한 방법 첫번째 방법이고
두 번째로는 혀로 직접 고개가 돌아가는 한 이쪽 저쪽 아랫쪽까지 그루밍을 하게 된다 - 이런 그루밍 덕분에 나는 이 아이들이 8살이 되도록 단 한 번도 목욕 시켜 본 일이 없을 뿐더러 이 전 아이들도 시켜 본 적이 없다.
한 마디로 단모종 고양이에게는 피부병이 생겼거나 오물을 뒤집어 쓴 상황이 아니면 목욕을 시킬 필요가 없다. 괜스레 냄새가 나느니 어쩌니 하시다가 아이가 스트레스로 잘못 될 수도 있음을 유럽의 수의사들은 경고한다. 실제로 고양이 몸에 코를 처박고 아무리 킁킁 냄새를 맡아봐도 우리집 냄새 외에 다른 것은 안 난다.
수술을 금요일에 했으니 사흘째 되던 일요일부터는 상처가 아물기 시작하고 게다가 넥카라를 착용한지는 어림 잡아도 열흘은 넘었으니 그야말로 미칠 지경이 된 모양이다. 카라 아래로 손을 들어올리니 쿠션으로 된 카라가 자연히 높아지고 그걸 이용해 이 똑똑한 고양이 거기다 대고 귀를 비빈다. 카라만 없으면 완벽한 고양이의 첫번째 그루밍 자세다
그리고 이건 귀를 닦은 다음 침으로 닦아내는 자세인데, 손이 카라에 막혀 입에 닿을 리 없다... 보고 있는 집사 마음이 찢어진다. 빗질이라도 좀더 꼼꼼하게 해줘야겠다고 마음 먹게 만드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카라가 방수 천이라 정말로 소리가 나게 "벅벅" 그루밍을 하기 시작하는데 바로 위에 보여드린 철수의 두 번째 정석적인 그루밍 동작이다. 얼마나 갑갑할까... 여기까지는 캣타워 최상층의 좁디 좁은 바구니 안에서 해결할 수 있었는데 그 곳에서는 절대로 안 되는 그루밍 자세가 하나 있었으니 (이 카라는 이럴 것을 예상해 소독솜으로 꼼꼼히 여러 번 닦아 두었었다 - 그런다고 안심이 되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그나마 방수천이라 가능했던)
바로 이 자세다. 이것을 하기 위해 이 고양이 자리까지 옮겨 앉았는데
이것이 지금 경철이가 하려는 편안한 고양이의 편안한 그루밍 자세다
"나 왜 이러지...?" 하는 표정이다. 미안하다, 다 집사 잘못이다...
고양이, 그루밍을 못하면 이 꼴이 된다. 특히 경철이는 집사가 똥꼬에 손대는 것을 너무도 싫어해서(이 아이가 매사에 까칠한 편이지만 대부분의 고양이들이 뒷쪽에 손 대는 것을 몹시 싫어한다. 자신의 모든 정보가 들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닦아주지도 못한다. 집사 손에 티슈만 들면 바람과 함께 침대 밑으로 사라질 정도니 그루밍 못하는 날이 쌓이고 쌓여 이 꼴이 된 것이다
해도해도 시원해지지 않는 그루밍 때문에 한참이나 머리를흔들어가며 애처로운 표정을 짓는데 집사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빗질 이 외에 아무것도 없어 더욱 더 미안하다
그 갑갑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귀 밝은 철수는 방수 천이 벅벅대는 소리가 너무 싫어 일찌감치 멀리 뛰어가 자리를 잡았다 (정말 시끄럽긴 하다)
그나마 낮잠을 위한 일련의 과정을 끝냈다고 믿는 것인지, 아니면 포기하고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인지 고양이가 하는 모든 그루밍 절차를 나름대로 마치고 자리를 잡고 낮잠에 든다.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이제 거의 다 왔으니 조금만 더 참자... 내일은 병원 가는 날. 오후 3시에 예약이 돼 있으니 한 시 반에 안정제를 먹이고 성격이 좀 좋아지면 똥꼬 그루밍은 집사가 따뜻한 물수건으로 해주기로 마음먹었으니 그것도 좀만 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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