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바보냐고? 사연은 이렇다
지난 8월부터 시작해 어제까지 경철이 3번을 병원에 다녀왔다. 대부분의 고양이들은 제 형제가 병원에 다녀오면 전혀 엉뚱한 냄새를 묻히고 다니기 때문에 부모도 못 알아보고 하악질을 하고 공격을 해댄다, 마치 낯선 고양이가 제 영역을 침범한 것처럼. 그래서 전문가들은 가능하면 한 녀석이 아프면 두 녀석을 모두 병원에 데려가거나 새로 합사하는 것처럼 시간을 두고 두 녀석을 가까워지게 하라는 조언들을 하는데...
처음 병원에 다녀왔던 날은 아니나 다를까 경철을 덮치는 등 약간의 공격을 시도 하길래 집사가 막아서는 등 단호하게 대처하니 금새 그만 뒀다가 두 번째 병원을 다녀 온 날부터는
이 사진은 어제의 것이지만 사실 두 번째 때와도 전혀 다르지 않기 때문에 그대로 보여드린다 - 지난 번보다 사실 더한 것이 어디서 외계인같은 둥그런 모자까지 쓰고 등장한 동생이
영 의심스럽고 못 미덥고 심지어 무섭기까지 한지 마주보고 냄새를 맡으려 하다가 자신이 변한 걸 모르는 경철이 고개를 쑥~ 내밀자 제 풀에 놀라 뒷걸음질을 친다
그래놓고는 골똘히 생각에 빠진다 - 저거 아는 고양이 맞는 것 같긴한데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도대체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거지? 하는 표정이다. 지난 번에도 이런 후에 사흘 동안을 경철이 있는 방에 들어오길 꺼리더니 이번에 또 그러려나... 이런 행동 때문에 지난 번에도 한 번 더 갔어야 할 병원을 즈들 이모 보내 약만 타오는 걸로 가름 했었는데.
하지만 고양이라는 것은 혹시라도 몰라서 피곤해 죽겠다는 아이들 이모를 방어용으로 모시고 집에 왔는데(혼자서는 아픈 아이와 공격하는 아이를 감당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철수란 고양이 하는 짓은 오히려 제가 남에 집에 온 듯 낯설어 슬슬 자리를 피해 점점 더 멀어진다
그리고는 한참을 스피커에 코를 박고 고민 하더니
꼬리를 축 늘어뜨리고 기운없는 뒷모습으로 어두운 복도를 걸어 컴컴한 작은 방으로 건너간다 -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내는 꼴에 다름 아니다(하도 어두워 철수 부분만 밝게 보정했다)
이 일을 어쩌지... 한참을 고민에 빠져 있다가
고양이 삼신, 궁금증은 어쩔 수 없는지 다시 경철이 있는 안방으로 건너간다
그 사이 비틀거리며 돌아다니다 다시 케이지에 들어가있는 제 동생 냄새를 킁킁 맡더니
그러는 철수가 불편한지 경철이 뒤로 물러나니 철수는 철수대로 놀라서 뒤로 움찔 물러난다
경철 또한 제 정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불편함을 못이기고 비틀거리며 (이 장면은 내일) 물러나자 "저 시끼, 정말 갔지?" 확실하게 하는듯 한 번 돌아보더니
"자아가 여기 들어갔다 나오더니 저리 됐지?" 하듯 한번 스윽~ 머리를 들이밀었다가
"이 쪽이 아닌가벼~" 하며 꽁무니부터 힘들게 빠져 나오더니
뒤로 돌아 다른 방향으로 다시 한 번 들어가
반대 쪽 끝으로 나오더니 "이게 도대체 뭔데 자아가 저랴?"
사방에 냄새를 킁킁 맡아보지만 고양이 삼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냄새 맡고 다닌다고 알아지겄냐...?
이 날 경철이 한 웃지도 울지도 못할 행동들은 내일 기록 하겠지만 머리에 쓴 꼬깔 때문에 밤 새 침대 아래에서 퍼덕거리다가 기어이 하루종일 나오지 않고 밥도 안 먹는다. 밥은 보다 못한 집사가 손으로 떠주면 할짝할짝 핥아 드시는데 꼬깔에 자꾸 떨어져 빙빙 돌다 귀에 묻을까봐 숟가락으로 떠주니(이 때 집사는 있는대로 엎드려 상반신은 침대 밑에 들이밀고 머리도 못 드는 상태) 그건 또 기절을 하고 피한다. 암만 저한테 이런 짓을 한 집사라도 집사 손이 좋은 모양이다. 그렇게 하루종일 츄르 두 개 캔 30g, 건사료 10g 먹은 게 전부다
덩달아 철수도 굶고 있다. 철수는 지난 번에도 사흘을 밥 안 먹고 방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이 번에는 방에는 잘 들어오지만 밥을 안 먹는다. 철수도 떠 먹이면 먹는데 경철 만큼도 먹지 않는다. 츄르를 주문한 지가 지난 주인데 오늘에사 출발했다고 메일이 오고 그 잘 난 것은 딱 한 개 남았는데 이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건사료를 손으로 떠 먹이면 그걸 가장 잘 먹는 것 같으니 물 대신에 그거라도 먹여야하는데 말이다
철수가 오줌소태로 병원 다녀 왔을 때 경철이는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하악질을 해대며 5일 동안 철수를 근처에도 못오게 하던데 이 넘의 철수 고양이는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 하악질 한 번 할 줄 모르고 오히려 제 쪽에서 더 겁을 내는지 이건 바보 고양이인지 신사 고양이인지 도무지 가늠이 안 된다 - 맛 있는 건 무조건 제 동생한테 양보하는 걸 보면 신사임에는 틀림없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