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을 하고 있는데 전화기가 막 울린다. 에라이, 모르겠다! 울언니가 오는 거라면 비번 누르고 들어오겠지(무식한 할망구, 생전 연락 않고 훅! 들어온다 ㅋㅋ. 우리집은 삑삑 소리를 죽여놨기 때문에 자다가 갑자기 사람 소리에 깜놀 자주 함)
나와서 전화기를 확인하니 이런 메세지가 와 있다. 난 쿠팡에서 뭘 사지 않았는데, 그리고 철수 이름으로는 더구나...? 메세지 내용을 더 내려보니 딱 한 개 남은 Wien 시절 친구가 보냈다는 것이 확인됐다.
내가 뭘 먹고 싶어하는지 귀신같이 알았구낭~ 기특한 것!
수제햄 세트다. 사실 햄이란 것이 미안하지만 우리나라 것은 정말이지 맛 없어 못 먹고 먹을만 한 건 너무 비싸서 엄두도 낼 수 없어 암만 먹고 싶어도 참고 또 참다가 코스트코에서 그나마 가끔 줏어다 먹고 있었는데
햄 이름을 살펴보니 '레겐스부르거'도 있고. 독일어를 한글로 또박또박 써 놓으니 생각지도 못하게 어찌나 웃기는지 ㅍㅎㅎ 한 판 웃고,
비어쉰켄도 있네~ Bierschinken 그러니까 맥주햄이라는 뜻인데 맥주로 만들어서가 아니라 맥주를 마실 때 안주로 주로 먹는 것이라 이런 이름이 붙었다. 돼지고기를 갈지 않고 툭툭 썰어 만들어서 부분적으로 살아있는 육질을 느낄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이 브랜드는 딱히 어느 대륙의 음식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이 대륙 저 대륙 유명한 햄들은 모두 만들어보는 모양이다. 라이어너햄은 어디 출신인지 모르겠고 야채맛햄은 우리나라?
호주산 비프스테이크도 있고, 좋으다~ 사실 내 입에 들어가는 건 쌀 사는 것도 아까워하는 것이 나라는 인간이라(괭이들 때문에 가난해 더 그렇다^^;;) 먹을 것을, 더구나 내가 좋아하는 것을 이렇게 푸짐하게 받으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일단 넘나 먹어보고 싶으니까 비어쉰켄! 너로 정했다 - 사실 비어쉰켄은 좀 맛 없는 편에 드는 햄이라 Wien에서는 잘 사 먹지 않는 편이었는데 여기서 이것저것 가릴 처지나 되나!
마침 그나마 가장 유럽빵 닮은 코스트코의 스페니시보카타도 있고 오랜만에 거의 제대로 된 그리운 시절의 식사를 해 볼 생각이다.
Wien 시절에는 식사라 하면 밤이나 낮이나 딱 이런 것이 전부였다. 셈멜이라는 빵 한 두 개에 쉰켄이나 치즈, 버터 그리고 저녁이면 피클도 함께. 더 가난할 땐 잼과 버터...
버터는 펴 바르지 않고 툭툭 잘라 넉넉하게 올린다.
그리고 그 위에 쉰켄도 넉넉하게 올린다.
이렇게 해서 반으로 갈라놨던 뚜껑 덮어서 먹을 것 같지? 천만에! 저 뚜껑은 벗겨서 아까와 똑같은 방법으로 넉넉하게 버터와 쉰켄을 올리고 뚜껑없이 먹어야 제 맛이다 - 이 방식은 유럽식이 아니라 철수네 집사 방식인데 그 시절에 독일인 룸메이트 왈 "세상에~ 이렇게 먹으면 더 맛있는 걸 나는 왜 몰랐을까?!" 하더라는 것.
따끈한 커피와 함께 먹었더라면 그 시절 냄새가 장면이 손에 잡힐듯 가까웠을텐데 아침밥 같은 거 없는 요즘에는 그리고 더구나 늦은 오후라 막걸리와 함께! 죽여준드아~~ 비어쉰켄도 제법 맛이 괜찮고 완전 미쿡맛 나는 버터가 옥에 티지만 그나마 없었다면 눈물 날 뻔!
친구 덕분에 생각지도 않게 가장 그립고 빛나던 시절로 돌아가는 타임머신을 타 마음이 아리까리 설레는 하루였다. 친구야, 고맙드아~~ (이집 햄, 맛도 괜찮고 여러 이유로 가성비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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