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에 철수 고양이가 아직도 프린터에 미쳐 있어 비누로 화분으로 경로를 차단 해 놨음에도 불구 하고
프린터만 사용하면 이런 예쁜 표정으로 다가오지 못해 애타 한다는 이야기를 전하면서 까짓 프린터, 고양이가 뭉개서 부서지면 부서지는 것이지 생명보다 물건이 중하겠냐 생각하고 프린터를 내어줄 생각을 했는데 마침 오랜 이웃께서 내어 주라고 도장을 꽝! 찍어 주셔서
차폐막을 모두 치워 주었더니 깔개가 없어 엉덩이가 시릴 텐데도 이렇게 올라가 그루밍도 하고 엎드려 있기도 해 확실히 내어주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사진을 보니 아무래도 엉덩이 깔개 하나 놓아 줘야할 것 같다) 기왕 잘 한 거 더 잘 해 볼까?는 생각에 프린터를 켰더니
프린터의 움직임은 엉덩이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보는 것이란 걸 아는 고양이, 금새 옆으로 자리를 옮겨 철커덕거리는 부분을 정확히 바라본다
고양이는 세상에 어째 이런 물건이 다 있노~ 하는 눈빛이고 집사는 어째 저런 눈빛이 다 있노~ 하는 마음이다. 정말이지 적나라하게 "뚫어지게 바라보는" 눈빛이 이런 것이지 싶다
인쇄가 끝난 종이가 아래로 후두둑 떨어지니 고양이가 더 빠르게 휘리릭 떨어져 다시 떨어질 종이를 숨도 안 쉬는 듯한 눈빛으로 기다린다
기다리는 사이, 귀가 간지러웠던가 파바박 재빠르게 머리도 한 번 흔들어 보고
흡! 다시 숨을 멈추고 기다림 모드에 들어간다. 이 눈빛을 보고 있으면 신비하도록 순수하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사람이라면 다섯살 먹은 아이도 이렇게까지 순도 100%의 눈빛을 보이기는 어렵지 싶은데 무념무상 몰아일체의 경지를 보이니 네가 바로 부처로구나!
이 후로 철수 고양이가 프린터 위에서 이런 자세를 보이면 전원을 올리라는 신호란 것을 알아차리면 된다. 어떤 날은 쓸 데 없이 버리는 종이가 너무 많아 전원을 넣었다 뺐다 하는 트릭을 쓰기도 한다. 종이보다는 카트리지 움직이는 소리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보이므로
집사가 잔머리 굴리고 있다는 걸 꿈에도 모르는 순진한 고양이, 이 쯤해서 종이가 떨어져야 하는데 싶었던지 쏟아지도록 고개를 빼고 아래를 내려다 본다
며칠 동안 이 광경을 지켜보던 경철 고양이, 여기 무엇이 좋아 철수 고양이가 붙어 사는가 형이 자리를 비운 사이 공연히 한 번 프린터 위에 올라앉아 본다. 마침 프린터를 깔고앉았으니 집사, 이 난청 고양이는 프린터의 진동을 느끼고 반응을 보일까 궁금해 전원을 넣는다. 철커덕~ 전원이 들어오자마자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보이지도 않던 철수가 득달같이 달려와 밀려나올 종이를 기다리다가
"종이가 말이야, 종이가 여그서 나오는데~?" 종이가 나올 소식이 없으니 손으로 파닥파닥 프린터 속을 뒤지며 의문스런 표정을 짓는다. 이 때 경철 고양이의 왼손이 움찔움찔한다. 데자뷰? 우리 셋 모두에게 그 순간 같은 그림이 떠올랐지 싶으다 - 경철군이 프린터의 진동에 어떤 반응을 하는지 따위도 셋 모두에게 이미 관심 밖이다
바로 5년 전의 이 장면이다
어어~ 하기도 전에 경철 고양이의 솜방망이는 철수 고양이의 머리를 강타하고 있다. 그래도 꿈쩍도 않는 것까지 여전하다 - 징해라~~~
끈질긴 난타 끝에 밑으로 떨어진 철수 고양이 "아 왜애~?" 억울한 눈빛이다
'제 버릇 개 못 준다더니 5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저 지롤여'며 크르르~ 하는 하얀 고양이
그러나! 철수 고양이 살아있네!!! - 달라진 것이 조금 있긴 한 것이 중독에서 금새 깨어나 본래의 더러븐 성질을 시전하사
경철이 하얀 터래기 한 입 잔뜩 물고 씩씩대고 있다 - 철수 얼굴 앞에 허연 덩어리, 금새 한 입 뜯기고 혼비백산한 경철 고양이다.
이대로 냅두면 치고박고 한 바탕 더 재밌는 장면이 연출 되겠지만 그냥 두면 저 터래기 그냥 삼키고 토하고... 토하는 거 징해서 좋은 장면 포기하고 "철수 아~ 해!" 해서 터래기 없애느라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 - 프린터와 고양이 형제의 삼각관계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 될 것 같은 어쩐지 지루한 예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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