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속에 고양이 있다, 그리고 15분

새로 만들기 시작한 숨숨집에 (중간에 살짝 곡절을 겪어) 계획과는 다르게 상자를 미리 넣어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법으로 짜게 됐다. 

[이 속에 고양이 있다]

이 귀신같은 사진이 뭐냐고요? 이 속에 고양이 있어요~ ㅎㅎ 이런 사진 한 장으로 뜻 밖에 고양이 찾기 놀이를 해도 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저 위의 사진 찍은 시각을 보니 오후 1시 57분( 이 시각을 짚는 이유는 아래에서 설명된다), 새로 설계해 짜던 지끈 틀 속에 박스를 넣자마자 철수 고양이가 냉큼 들어가 앉은 것인데  하던 일 마치고 돌아보니 고개를 조금도 숙이지 않고 딱! 정좌하고 싶은 모습에 음~ 사이즈가 잘 나왔군! 생각하고 사진을 찍었다.

[카메라인지 렌즈인지 초점을 철수 고양이 눈에 맞췄음에도 불구하고 제 멋대로 지끈을 찍어 버렸다]

그리고 집사는 나가서 설거지도 하고 세탁기도 돌리고 족히 10분 이상은 지나서 다시 방으로 돌아오니 여전히 이 모습으로 앉아있다. 정말 10분 넘어 들어왔나 위의 사진 찍은 시각을 확인하니 2시 11분. 진짜로 15분 이상을 (처음 사진도 한참 딴짓을 하다 찍은 것이었으니) 같은 자세로 미동도 없이, 더구나 집사도 없어서 볼 것도 없는 공간을 저 지끈 사이로 내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사진을 자꾸 찍으니 "내가 왜, 어때서?" 하듯 내다보는 철수 고양이]

15분이란 사람에게도 가만히 있기에는 짧은 시간이 아닌데 이 고양이 머리에 지끈 사이로 내다보이는 세상이 알파파(alpha wave) 또는 세타파(theta wave)를 불러오게 한 것일까, 일부러 마음 먹고 해도 쉽지 않을 행동을 이 고양이는 무슨 마음으로 한 것일까... 진짜로 경외심이 일어난다. 엎드려 있는 것도 아니고 창 밖을 내다보는 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없는 박스 안에서, 움직임라고는 하나도 없는 공간을 바라보며 정자세로 앉아 15분이라...

[하품을 하며 상자에서 걸어나오는 철수 고양이]

집사가 계속 철퍽철퍽(내 카메라 셔터 소리가 진짜로 이렇게 난다, 렌즈를 시그마로 바꾼 이 후로) 사진을 찍어대니 심오한 명상을 방해 받은 것이 틀림없어 보이는 우리의 대장 고양이 "에이~ 인간이란..." 하듯 째지게 하품을 하며

[걷는 모습마저 예쁜 것이 '고양이']

뚜벅뚜벅 걸어나오더니

[스크래처에 의지해 기지개를 켜는 철수 고양이]

곧장 스피커 스크래처에 두 손을 대고 기일~게 스트레칭을 한 후

[제 영역표시가 잘 됐나 확인하는 철수 고양이]

바각바각 스크래칭을 하더니 제 페로몬이 골고루 잘 묻었는지 확인을 한다.

 

고양이들과는 함께 살면서 익숙해지는 부분도 분명히 많지만 오늘처럼 "이게 뭐지?" 하게 되는 일도 더러 있어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점점 더 경외심을 가지게 되는 부분도 셀 수 없이 많다고나 할까. 오늘도 집사가 사진 찍는 짓으로 방해를 하지 않았다면 이 고양이는 얼마나 더 오랜 시간은 저 정자세로 미동도 없이 저 속에 앉아 있었을까 자못 궁금해진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내 고양이 경철]

그리고 경철 고양이, 하아... 매일 약 먹기 시작한 지가 벌써 언젠데 (2019년 7월 25일부터였으니 일 년 하고도 반이 지났다) 적응을 하기는커녕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스트레스를 키워 요즘은 얼굴 보기도 힘이 든다. 아이가 하도 스트레스를 받아하니 "뭣이 중한디..." 하는 생각이 들어 먹던 귀약도 중간에 끊어버리고 유산균도 안 먹이고 양치질조차도 안 하고 즈들 좋아하는 쓰레기 밥으로 식단을 바꾸니 이틀 후부터 밖에 나와 있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제 형 밥 뺏아먹는 짓도 다시 시작했다.

[이 사진 찍은 잠시 후 귀청소, 양치질 당하고 다시 침대 밑으로 숨었다]

고양이도 사람처럼 성격이 이리도 천차만별이라 철수는 이제 찍소리도 않고 쉽게 끝내는 이 모든 행사를 유독 이 녀석만 죽을 듯 스트레스를 쌓아가고 있으니 이 성격으로는 아마 15분 동안 정자세로 멍 때리기 이런 건 불가능하겠지...?

ⓒ고양이와 비누바구니 All rights reserved.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