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손톱에 내 머리털

내 고양이, 이리 얼굴 보기가 힘들어질 줄이야... 경철 고양이 이야기다. 귓병 때문에 약이니 영양제니 먹기 시작한 지가 벌써 일 년 하고도 6개월이 넘었는데 점점 더 그 일을 싫어하고 스트레스를 받아 침대 아래 박스에 살림을 차린 지 오래됐다.

[물 마시는 경철 고양이]

밥을 주면 겨우 나와 밥만 먹고 가끔 물 마시고 집사가 놀아주면 잠시, 아주 잠시 깔짝거리다가 그나마 빗질을 오래오래 받다가 다시 침대 아래로 들어간다. 어느 날은 공복 구토를 하길래 (고양이는 공복이 심할 때 구토를 하기도 한다) 식이요법 때문에 그런가 보다 오래전부터 의심해 왔던 참에 다시 쓰레기 밥으로 바꾸니 아이의 행동거지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

[마주보는 고양이 형제 사이에 긴장감이 흐른다]

그래... 사람도 나이가 들면 건강이니 나발이니 먹는 낙 하나로 근근이 버티는데 고양이라고 다르랴,

[경철 고양이 손톱에 철수 고양이 머리털]

억지로 마음을 다잡고 두 녀석 모두 환장해 마지않는 쓰레기 밥을 주기 시작하니 밖에 나와 있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제법 제 형에게 시비도 걸고 예전 행동거지를 되찾았다.

[아침부터 동생에게 쥐어박히고 의기소침해진 철수 고양이]

경철 고양이, 이렇게 까불다가 언제 제 엉아에게 제대로 깔려 침대 밑으로 달아나는 신세가 될지는 시간만이 말해줄 것이다 ㅎㅎ

[집사의 작업을 방해하며 즐거워하는 철수 고양이]

쓰레기 밥이 더 문제가 되는 건 철수 고양이인데 식이요법을 해도 탈모 현상은 거의 전혀 변화가 없으니 그냥 먹자, 하지만 사실 오버 그루밍을 좀 더 하고 귀를 더 가려워 하기는 한다. 두 녀석 모두 병원 둘러업고 가 정밀 진단을 받아 근본적이고 과학적이 해결책을 찾아보는 것이 마땅한데... 와중에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철수 고양이는 여전히 명랑하고 질척거린다.

[금쪽 같은 내 새끼들]

영양제는커녕 치료약, 양치질까지 모두 하지 않은 다음 날에는 경철 고양이가 눈에 띄게 활발해진다. 게다가 쓰레기 성분의 밥까지 먹으니 요즘은 살 판이 났다. 오랜만에 '네 손톱에 내 머리털'이 집사 눈에 반갑기도 하지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도 실천에 옮길 수 없으니 우리 환경 안에서 "뭣이 중한디...?" 진짜로 자꾸만 되묻게 되는 시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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