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앵돌아지다

생각해보니 집사가 좀 심하긴 했다... 

[나름 귀엽게 생긴 숨숨집]

일주일이나 꼬박, 고양이 형제를 거의 방치하다시피 하면서 만든 숨숨집이 이래저래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하지만 오며 가며 위에서 내려다보니 오목조목 볼록볼록 제법 귀엽게 생겼다) 월요일부터 곧바로 새로운 작업에 들어갔는데...

[귀신같이 늘어진 지끈 더미 앞에서 망연자실한 철수 고양이]

밤이 되어 더 이상 기운이 달려 작업을 계속 할 수 없는 상태가 돼, 방바닥에 퍼질러 놓으려니 정신 시끄럽고 대충 추슬러 고양이 형제의 캣폴 첫 번째 칸을 잠시 빌려 올려놓았더니 철수 고양이, 하필 그 방향으로 캣폴에 오르려다 귀신처럼 머리를 늘어뜨리고 제 캣폴을 차지하고 올라앉은 지끈 더미를 발견하고 꽤 오랜 시간을 망연자실 쳐다보고 앉았다.

[밥 먹다 무심코 돌아오다 제 형의 모습을 바라보는 경철 고양이]

집사의 지끈 일 따위에는 관심도 없는 경철 고양이가 지나가다 "지 시키 왜 저래?" 할 정도로 철수 고양이의 모습이 좀 범상치 않았다.

[이리저리 둘러봐도 도무지 해법이 없어 보이는지 입맛을 다시는 철수 고양이]

캣폴에 올라갈 생각이었으면 다른 방향으로 얼마든지 올라갈 수 있고 게다가 저 칸은 거의 전혀 쓰지 않는 곳이라 잠시 빌린 것 뿐이므로 캣폴 한 칸을 뺏겼다고 기분이 상한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경철 고양이가 한 손을 들어 시비를 걸어도 신경도 쓰지 않고 그냥 스윽~ 지나가는 철수 고양이]

이윽고 뭔가 마음에 정리를 마쳤는지 움직이기 시작하는 철수 고양이. 마침 "왜 저래?"며 저를 구경하던 경철 고양이와 딱 마주쳐, 게다가 경철 쪽에서 먼저 손을 들어 시비를 거는데도 개무시, 한 곳만 바라보고 걸어간다.

['저 시키가 웬일로 걍 지나가는겨?' 의외라는 듯 제 형을 돌아보는 경철 고양이]

먼저 시비를 걸어도 전혀 반응을 않고 지나가는 제 형이 의외라는듯 돌아볼 정도로 철수는 저만의 생각에 빠져있다.

[잠시 앉아 뭔가를 새기는 듯한 철수 고양이]

뭔가 쎄에~ 하다. 철수 고양이의 이런 엄근진 모습은 아무리 고양이지만 집사로 하여금 눈치를 보게 만든다.

['엄니, 쟤 왜 저래여?']

역시 같은 마음으로 제 형의 행동을 따라잡던 경철 고양이가 저것 좀 보라는 듯 집사를 올려다본다.

[화가 나 돌아앉은 철수 고양이]

....? 말문이 막힌다. 그 잘난 숨숨집 만든다고 꼬박 일주일을 제대로 눈길 한 번 안 주던 집사가

[방안 가득 펼쳐진 지끈 일감]

누가 만들어 달랬나, 제 마음에 안 든다고 또다시 한 방 가득 일감을 벌리고 하루 종일 엎드려 있다가 급기야는 캣폴 위에 귀신처럼 치렁치렁 얹어 놀이터까지 뺏아버리니 집사의 행동에 응기 ('진절머리 나다'의 경상도 사투리 - 엉기 또는 은기 난다,라고 쓰는 사람도 있다.)가 난 모양이다

[정말이지 오랜 시간을, 집사가 지끈 작업을 포기할 때가지 이러고 있었다]

결국 앵돌아지고 말았다. 이렇게 돌아앉아 식빵 굽는 자세는 심기가 절대로 불편하다는 명확한 바디랭귀지이다. (다리를 세우고 돌아앉은 것과는 다르다) 우짜쓰까...

[캣폴 사용에 방해 되지 않게 지끈더미를 치웠다]

잘못이 어디에 있는지 알면 그 잘못의 원인을 제거하면 되는 것이다. 결국 집사는 한 방 가득 늘어놓았던 지끈 더미를 모아 방 한 구석에 처박고 빼았았던 캣폴 한 칸도 돌려주었다 (평소에는 쓰지 않음서... 이 부분은 진짜로 분하다 ㅜ.ㅜ) 

 

이 넘에 고양이들, 진짜로 귀신같다. 저렇게 지끈 더미를 치우고 나니 두 녀석이 약속이나 한 듯 집사의 무릎을 하나씩 차지하고 엎드린다. 그렇다, 고양이를 앵돌아지게 하는 것은 매끈하게 빠지지 않은 숨숨집이 아니라 매끈한 숨숨집 만드느라 즈들에게 관심을 안 주는 인간의 욕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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