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도 가끔은 TV 채널을 돌리고 싶다

어제, 철수 고양이가 약 먹을 시간에 사라져 온 집구석을 찾아다닌 이야기와 그에 따라 창가에 나앉을 만한 새로운 자리를 만들어 드렸다는 이야기를 했다.

창가에 앉은 고양이

오늘은 약 먹을 시간까지 사라지지 않고 두 녀석 모두 밥 먹고 저 있던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사실 어제도 느낀 것이지만 철수 고양이가 사라진 건 약 먹는 것을 피해서 달아난 것이 아니라 그냥 그 창가에 나갈 수 있는 기회를 포착 했기 때문에 나앉아 있었을 뿐인듯 했다. 왜냐하면 요즘은 잘 사라지지 않을 뿐 더러 오늘은 약 먹고 보상까지 챙겨 먹고 사라졌으니까 말이다. 멍석 깔면 하던 짓도 안 하는 고양이들 습성 때문에 자리를 만들어 놓고도 반신반의 했는데 오늘 아침에는 비가 주춤 하길래 창을 열어 뒀더니 귀신 같이 알고 찾아가 올라앉아 집사가 나타나니 "또 왜?" 귀찮아하는 눈길을 보낸다.

하품하는 고양이

"에이, 저누무 집사 지겨워!" 하듯 하품을 쩌억 하고는

일어서려는 고양이

"이 자리를 떠나, 말아?" 잠시 망설이는듯 하더니

머리를 흔드는 고양이

"집사 왔으면 왔지 내가 왜?" 도리도리를 귀부딪히는 소리가 파라락 나도록 세게 하시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는 고양이

"집사, 쫌!"

배를 깔고 엎드린 고양이

그래도 집사는 꿈쩍도 않고 좋다고 사진을 찍어대니 하루 이틀 겪은 일도 아니니 어쩔 수 없다는듯 배를 내리고 엎드린다.

창가에서 밥 먹는 고양이

그리고는 밥을 차려놓고 아무리 불러도 절대로 안 온다. 경철이는 이미 제 그릇에서 고명만 걷어먹고 제 형 그릇을 넘보고 있는데 말이다. 얼른 경철 그릇에 새 고명 얹어주고 철수 고양이에게는 할 수 없이 창가로 밥그릇을 대령했다.

밥 먹은 후 그루밍 하는 고양이

새로운 TV를 보면서 (고양이에게는 창 밖 구경이 TV보는 것과 비슷한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손 하나 까딱 않고 밥까지 드셨으니 만족스러운 모양이다. 진짜로 밥맛이 더 있었는지 그릇을 싹 비우셨다.

몹시 궁금한 표정으로 올려다 보는 고양이

한 편 하얀 고양이 경철군, 엉아는 아까부터 어디로 갔는지 그림자도 안 보이지 집사는 카메라니 밥그릇이니 들고 분주하게 왔다갔다 하지 무슨 일인가 싶어 오느 새 집사를 따라 건너온건지 돌아보니 "너거 여어서 머 해?" 완전 궁금한 표정을 하고 올려다 보고 있다.

깜짝 놀란듯한 눈빛의 고양이

집사만 보고 있다가 눈길을 제 형 쪽으로 돌리자 "오잉? 저거 머야?" 새 TV가 생긴 걸 이 녀석은 이제서야 발견한 모양이다.

창가에서 잠 자려는듯 널부러진 고양이

집사와 제 동생이야 어쩌거나 배부르게 밥 먹고 새로운 TV까지 획득하신 고양이 당분간 시청을 멈출 생각이 눈꼽만치도 없는 모양인지 아예 널부러져 버린다.

갑자기 창 밖에서 무엇인가 발견한 고양이

그러다 갑자기 고개를 들고 뭔가 살피는 눈치길래 고양이의 시선에서 내려다보니

집으로 들어가는 이웃 어린이

골목 건넛집 사는 아이가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가는 장면과 계단을 오르고 제 집 현관문을 여는 장면까지 엄청 흥미진진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이 관찰 됐다. 이런 타이밍에 경철 고양이 같았으면 "꺄아악~" 하고 채터링 한 방 날렸을텐데 아쉽다. (경철이는 자동차, 사람 할 것 없이 창 밖에서 무엇이 움직이면 무조건 채터링 한다)

창 밖을 내다보는 고양이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비가 부슬부슬 다시 내리기 시작해 창가의 고양이가 걱정 돼 건너가 보니 방향을 아니, TV 채널을 다른 곳으로 돌려 다른 프로그램을 시청 중이시다. 이런 모습을 보면 고양이에게 환경이 너무 좋지않은 집에 사는 것이 또다시 미안해진다. 바깥에 낯설은 고양이도 더러 보이고 사람들 왕래도 빈번하고 그런 곳에 살 때는 아이들이 하루종일 심심해 하지 않고 창가에 붙어 살았는데 어쩌다 이곳은 너무나 무료해 고양이 스스로 채널을 돌리게 만드는 그런 환경이지 말이다...

집사을 돌아보는 고양이

새 채널이 영 시원찮긴 했던 모양이다. 문득 고개를 돌려 집사를 발견한 눈빛이 아까와는 사뭇 다르다. "엄니, 보고 싶었어~"

창가에서 내려오려는 고양이

역시! ^^

창틀에서 뛰어내리는 고양이

두 말 할 필요 없다, 아이들이 TV가 재미 없거나 심심하면 제 엄마에게 칭얼대는 것과 똑같다. 득달같이 집사를 향해 달려온다. 그래봐야 이 고양이를 기다리는 것은 점심식사 후 삼켜야 하는 캡슐이었다.


덧) 고양이 형제의 싸움은 L-테아닌을 먹인 후 거의 한 번도 없었다 - '거의'라고 하는 것은 한 번쯤 철수가 도발을 하긴 했지만 집사의 블로킹으로 금새 끝이 났다. 확실히 이 고양이들에게는 질켄보다는 L-테아닌이 효과를 보이는 듯하다. 약 먹는 것도 귀청소도 양치질도 훨씬 수월해졌다. 다만 둘 다 너무 조용해졌다는 부작용 아닌듯한 부작용도 있다.

그리고 두 고양이가 각각 가진 문제 중 한 가지는 해결이 거의 된 듯하고 한 가지는 더 나빠지고 있는 걸로 보이는데 이건 추후에 이런저런 것을 따져 다시 정리 할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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