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부터 이기주의자가 된다

일상의 누적된 피로를 호소하며 "모든 것이 허무해 내 삶은 이제 불행과 혼돈의 구렁텅이 빠져버려 더 이상 구제의 길을 찾을 방법조차 없다"고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 자신이 선택한 자신의 삶을 배운대로 행하며 살았는데  왜 여기까지 내몰렸을까? 문제는 생각 만큼 그리 복잡하지 않다. 잘못된 기대와 배움의 잘못된 응용 때문이다.

 

우리는 늘 다른 사람을 위해 기꺼이 봉사하고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하며 이기주의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배워왔다. 그렇다면 내가 항상 다른 누군가를 위한 삶을 살아갈 때 내 삶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헌신과 희생 자체가 의미이며 행복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한 사람의 생각은 곧 그 사람의 개인적인 자산이라 할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지배하는  좌표를 스스로 결정하고 그것은 생각이 되고 생각은 행동으로 이어지고 생활에 투영된다.

 

이 말은 곧 내가 삶의 어떤 부분을 변화시키고자 한다면 먼저 자신의 생각부터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이 바뀌려면 주변이 먼저 달라지기를 바라는 것이 사실이다.

나는 오늘부터 이기주의자가 된다

중요한 진실 - 잘못된 기대

기대가 클수록 상처가 크다. - 타인이 악의를 품고 고의적으로 주는 상처 이 외에 가까운 주변인들에게서 받는 상처의 원인을 곰곰히 생각해 보면 금새 수긍이 될 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서 주말에 갑자기 급한 미팅이 생겨서 미처 설거지도 못하고 뛰쳐 나갔는데 주말이라 집에서 쉬는 남편이 당연히 설거지도 하고 어쩌면 청소도 해 놓았을 줄 알았건만 지친 몸으로 막상 돌아와 보니 아침에 있던 모습 그대로 소파와 혼연일체가 되어있다.  이럴 때 뚜껑이 열린다 "나는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뛰쳐나갔는데 집구석에서 놀면서 설거지 하나도 안하냐 인간아!?"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보면 남편에게 설거지나 청소를 부탁한 일도 남편이 그것을 하겠다고 약속한 일도 없다. 그런데? 평소에 남편은 설거지 청소 등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오늘이라고 해서 그가 특별히 그 일에 관심을 가질 리가 없지 않은가? 이런 경우가 바로 그런 것이다. 곰곰히 그리고 솔직하게 되짚어 생각해 보면 아내는 남편이 청소는 커녕 설거지 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기대를 지치지  않고 하는 것이다. 왜? 우리가 배운 파트너십은 배려의 극치를 달리며 언제 어디서나 일심이어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배움의 잘못된 응용이다.

 

상황에 따른 배려도 있을 수 없느냐고 반박할지도 모르겠지만 배려를 바라는 것 자체가 잘못 된 기대라면?  그 사람은 이미 오랫동안 그 모습 그대로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하루도 빠짐없이 그가 변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또 반박이 들어올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사람을 포기하라는 것이냐?'고. 여기서 말 하는 것은 '포기'가 아니라 '인정'이며 '수용'이다. 저 사람은 원래 그런 사람이다, 좀 게으르고 센스가 부족하다고 해서 단죄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 그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진정한 파트너십은 수용과 인정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내가 내게 옳은 선택을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헌신과 책임감의 왜곡

가족과 주변을 위해 헌신하는 삶, 멋진 의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우선 내가 있어야 희생도 봉사도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내가 존재할 수 있는  삶의 환경과 조건을 스스로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무리 기다려도 본인이 아니면 해낼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이 헌신이라는 덕목이 가면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필요가 있다.

 

스스로가 정말 원해서 기꺼이 하는 헌신이라면 "나는 불행해, 피곤해 죽을 지경이야" 등의 하소연이 나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진정 원하는 삶을 사는 사람은 행복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불행하다고 느낀다는 것은 상대가 나의 헌신을 알아주고 고마워 해주기를 바라는 잘못된 기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즉, 잘못된 기대가 불러온 상처가 불행과 피로감, 허무함 등의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다. 쉽게 말 해 혼자 바라고 혼자 상처 받는 악순환이 반복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자신을 돌아볼 줄 모르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의 감춰진 자기학대이다.

왜곡된 헌신과 희생은 스스로를 불행하게 한다

스스로를 위한 시간을 가져라

우선 매일 내가 꼭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찾아서 하루에 삼십 분 만이라도 그 일을 하기 위한 시간을 가지라고 말 하고 싶다. 이렇게 말하면 어떤 사람들은 이미 너무 지쳐버렸기 때문에 도대체 내가 뭘 원하는지 원하는 것이 있다고 해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 것도 알 수 없다고 말할 것이다.

 

조용한 장소, 집 안에 그럴 장소가 없다면 발코니나 또는 공원의 벤치 등에 멍하니 앉아 있어 보기를 권한다. 상념에 젖으면 그 상념을 따라가고 상념이 끊기면 내 호흡도 느껴보고 피부에 스치는 바람도 느껴 보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지만 온전히 자신하고만 보내는 시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명상음원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런 작은 시작이 내 삶을 바꿀 큰 시작이 되어줄지도 모른다.


나를 기분 좋게 하는 것, 내 몸에 좋은 것, 내 직감이 말 하는 것을 알아 차리고 행동으로 옮겨야 할 것이다. 내가 잠시 그것을 돌아보고 시간을 투자한다고 해서 세상이 무너지지는 않는다.

 

"왜 그렇게 잠시도 앉아 있지를 않고 계속 일만 해?" 라고 물으면 착하고 헌신적인 그녀가 대답한다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것도 제대로 돌아가지를 않아!"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무엇이 제대로인가? 그녀가 잠시 앉아 휴식을 취한다고 해서 절대로! 결코! 하늘은 무너지지 않는다. - 이기주의자가 되라!

누구를 위한 책임감인가?

책임감 운운 하는 것은 악순환에서 탈출하고 싶지 않다는 변명에 불과하다. 내가 원하는 것은 항상 맨 나중에! 우리가 그렇게 배워 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지칠대로 지치고 심한 경우 갖가지 중독에 빠지고 정신과적 증상에 시달리기도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더 늦기 전에 나중에~ 라고 미뤘던 취미생활이라도 당장 시작해야만 한다.

기대와 필요

이제는 내가 필요로 하는 것과 사람들이 내게 기대하는 것을 구별할 때가 되었다. 커피 한 잔 마시자고 끊임없이 내 시간을 훔쳐가는 친한 친구들, 예고 없이 초인종을 누르며 안부를 묻는 착한 친척들, 나는 흥미도 관심도 없는 얘기를 전하려고 끊임없이 울려대는 톡메신저들  - 이 모든 것들이 내가 진심으로 즐기는 것인지 아니면 모두에게 친절하고 사려 깊은 사람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배웠기 때문에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려 인내하는 것인지 알아낼 필요가 있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이라면, 그리고 대세에 지장이 없다면 그들의 기대에 내가 모두 부응해야할 의무도 책임도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시간은 나를 배려하지 않는다

남의 기대에 부응하느라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해서 내가 이룬 것은 무엇인가, 나는 과연 행복했는가, 내가 살고자 했던 그런 삶을 살았는가 생각해보라.

 

내게 남은 나머지 삶에는 무엇을 할까? 어떻게 하면 내 일상을 내가 소망했던 모습과 가깝게 가꾸어 나갈까? - 이제는 그것을 생각하고 행동에 옮길 때이다 왜냐하면 시간은 배려없이 흘러가기 때문이다. 오늘부터 당장 이기주의자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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