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 모전여전, 그 나물에 그 밥
계단 아래에 밥을 내다놓고 물그릇을 씻는 동안 어느 새 나타나 밥을 자시고 있던 담북고양이,
수돗가에서 일어서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달아날까 말까 몹시 망설이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대문간에서 서성이는데 열린 대문으로 갑자기 생면부지 젊은 아짐이 쑥! 들어와서는 담북군을 발견하고 "엄마야~~ 무서버라, 엄마엄마 이 집 아인갑다!" 하고 번개 같이 휙 돌아서 사라지니 (아, 나는 저렇게 호들갑스럽게 톤 조절 못 하는 아짐들 정말이지 혐오스럽다...) 심장 무게라곤 고작 10 ~ 20g 남짓인 괭이 시키는 얼마나 놀랐겠는가,
"고양이 놀라게 거 지금 무슨 짓이냐!?"고 소리를 꽥 지르고 싶었지만 분란 만들면 야아들에게 좋을 것 없다는 판단은 재빠르게 들어 다행히도 뷁!을 누를 수 있었다. (여자는 나이가 들연 남성 호르몬의 비율이 높아져 점점 사나워진다 --;;)
불쌍한 시키, 인간여자가 대문을 뒤로 하고 뒤집어지는 소리를 내자 밖으로는 달아나지 못하고 이층 계단으로 순식간에 달려올라가 아래에서 올려다보니 저 꼴을 하고 있다. "내려 와, 담북아 ! 저게 뭐가 무서워!"
그런 후 밖에 밥을 두러 나가자니 역시 처음 보는 여자 아이가 하나 들어서면서 대놓고 "우리 엄마 못 보셨어요?"한다? 잠시 띵~ 했지만 "내가 너를 처음 보는데 니네 엄마를 어떻게 알겠니...?" 그제서야 아이도 사리분별이 된 듯 "아아~" 멋적은 표정을 하고 안으로 사라지고 (나중에 알았지만 아랫집에 혼자 사는 여성 집에 놀러 왔던 모녀였다) 그 사이, 아아~ 저 아이의 엄마가 아까 그 귀신이구나, 깨달음이 왔지만 아이 잡아서 "아까 니네 엄마 괭이 보고 무섭다고 소리 지르고 달아났다" 할 만치 내가 친절한 인간은 아니라...
바깥 밥 임무를 완수하려 대문에 한 발 나서니 어디까지 돌았는지 헐떡거리며 돌아오던 그 귀신, 날 보고 "이 집 맞지예? 이 집 맞다 카이~" 여전히 뒤집어져 톤 조절 안 되는 말투로 방정맞게 묻고 또 제가 대답까지 한다. (대구에는 이런 톤으로 말 하는 사람들 정말정말 많다) 아이하고 하는 짓이 어찌 이리 똑 같으냐...
이 집이 어디에 맞는데? 너거 엄마 누구? - 정황이야 짐작이 가지만 좀 전의 그 행동과 저 말투, 싫다, 진저리가 나게 싫어서 "맞다" 그래주고 싶지가 않다. "뭐가 어디에 맞아요?" 하고 지나쳐 버렸다. -틀림없는 모전여전 그 나물에 그 밥이라!
좀은 부끄럽고 안타깝게도 나는 사람 싫다는 표현을 좀 쉽게 하는 편이다. 게다가 이 전에 그 집 여성에게 몹시 정 떨어지는 일 세 가지가 있었기 때문에 그 날은 더더욱 그랬다. (이건 말미에 더 서술 할 생각이다)
부전자전 - 고양이
바깥 자리에 밥을 놓고 확인차 돌아보니 어느 새 담북군은 뒤따라 나와 있었고 아깽이가 저만치 밥 먹으러 가는 모습이 포착됐다. 아깽이라면 더 좋은 캔을 먹이고 싶다, 눈에 안 보이면 몰라도 이렇게 마주쳤으니.
그런데 저 아깽이 (실은 청소년 깽이), 어제 밥자리에 먼저 와 기다리고 있다가 꽃네냔한테 걸려서
이렇게 삼십육계 줄행랑을 놓더니 (꽃네란 냔 저 길 끝까지 따라 뛰어가데라... 독한 것)
똥개도 제 집에서는 50점 먹고 들어간다지 않았는가, 애비 믿고 저러는 것이지, 캔을 가지고 내려오니 애비는 (담북이가 저 청소년깽이 진짜 애비인지는 모르겠지만 늘 같이 다니니) 전봇대 옆에 앉아 아깽이가 드시는 걸 호위하듯 앉아있는 그림이 연출되고 , 내 기척을 느끼자 두 녀석 모두 자동차 아래로 전광석화처럼 달아났다. 그런데 아깽아, 저 애비도 꽃네란 냔 나타나면 다 헛깨비니라...
아깽이 녀석, 피는 못 속이지~ 지 애비를 닮아 넉살이 좋은 편인지 냉큼 달려와 먼저 시식! - 부전자전 고양이!
두 녀석이라 어느 놈 먹게하고 어느 놈 말게 할 수 없으니 이 쪽 저쪽 두 곳을 부어 줬건만 담북군, 아깽이 먼저 먹게하고 부러워 죽겠다는 듯 콧구멍만 벌름벌름~
"담북아 이 쪽에 니 꺼 있어, 이리 와~" 고양이들, 저희들 필요할 때는 사람 말 기가 막히게 알아듣는다. 시키는대로 할까 말까 한 동안 안절부절 하더니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지 아깽이 뒤로 움직여
어찌나 급했던지 걷던 자세 그대로 몸을 숙여 허겁지겁 먹기 시작한다. 그래, 나란히 그렇게 하나씩 차지하고 먹으면 이 아짐 마음이 편하지, 아따, 그림 참 보기 좋다~
그러나 인간의 만족감도 잠시, 아깽이 시키, 인간이 지켜보고 있어 불안해서였을까 아니면 애비가 먹는 꼴을 못 봐 욕심이 나서였을까
곁눈질을 해대더니 기어이 지 애비 곁으로 가서...
이에 담북군, 스윽~ 내 눈치를 한 번 보더니
이내 저 뒤로 물러나 털썩, 자리를 잡고 앉는다. 도대체 저 그림은 또 뭐? 담북아, 너 여자였어? 감자 만큼 거대한 땅콩을 달고있어 튼실한 대장길고양이임을 이미 확실히 증명 받았는데 아깽이가 달라고 하니 뒤로 물러나 주는 저 그림은 모성애 아니, 부성애?
애비가 자리를 뜨자 아깽이 녀석, 이쪽 저쪽 왔다갔다 하며 양 쪽을 다 먹는다.
아깽이는 도끼눈을 하고 식사 중이시고 담북이는 기다리다 못해 눈까지 감고 이마에 참을 인(忍)자를 새기고 있다. 인간은 속이 상한다, 요 샤꾸 그만 먹어라! 하고 싶은데 인간이라 말이 통할까...
드디어 다 드신 모양이다, 아깽이가 물러나자 꾸물꾸물 몸을 일으켜 밥 쪽으로 오는 걸 보니 뭐야, 수고양이에게 부성애라도? 수고양이가 그럴 리는 천만에 없다고 들었는데... (나중에 다른 캣맘들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동네마다 하나씩은 그런 수고양이가 있다고 했다) 이유야 어쨌거나 저보다 한 참 어리고 작은 녀석 먼저 먹일 줄 아는, 웬만한 인간보다 기특한 녀석, 나중에 지붕에 나타나면 따로 불러 좋은 것 먹여야겠다!
서두에 언급 했던 아랫집 사는 여성과 있었던 언짢은 일 세 가지와 담북 고양이의 이 태도가 대비 돼 고양이라는 존재에게 향하는 정이 한층 더 깊어진 날이었다.
그리고 아랫집 여성
1. 지난 추석에 명절이라고 찾아온 아들에게 "너무 실망스러워서 엄마는 너 오래 안 보고 싶다, 이만 가거라"라고 하는 걸 우연히 들었다. 일부러 엿들은 건 아니고 고양이 밥자리가 계단 아래에 있기에 밥을 놓으러 갔다가 들려서 들은 것이다. 아들 아이가 기 죽은 목소리로 "예, 안녕히 계세요"라며 깍듯이 인사를 하고 나오는데 연령대가 청소년 이상이 아니었던 바 눈물이 왈칵할 만큼 가슴이 아팠던 일이 있었다 - 물론 그럴 만한 사연이야 있었겠지만 명절에 엄니라고 찾아와 거의 문전박대를 당하는 어린 녀석 마음이 얼마나 시릴까, 그 때는 그 생각만 들었었다
2. 또 다른 날, 고양이 밥을 놓고 있자니 꽃네란 지지배 고양이가 저 쯤에서 알짱거리며 기다리고 있었다. 이 때 아랫집 여성이 외출할 모양으로 문을 열고 나오다 꽃네와 딱 마주치고 말았다. 그 여성 "엄마야! 재수 없어라!"며 쇳된 소리를 지르는 동시에 진짜로 펄쩍! 뛰어오르디라, 그게 내 눈에는 일 미터 정도 뛰어올랐던 걸로 보였다지. 고양이가 대체 뭘 어쨌게 재수가 없냐고오~? - 물론 고양이 싫어하는 것 존중! 그렇다고 동물을 상대로 그렇게까지 호들갑을 떨고 제 속내를 다 드러내야 하나?
3. 그리고 또 다른 날, 마침 내가 대문으로 들어서는데 그 아랫집 여성이 나오려는 걸 보고 먼저 나가라고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기다리자니 이 여성, 대문 밖으로 나와서는 등 뒤로 대문을 철컹! 하도록 닫아버렸다. @@;; 내가 고양이에게 밥 주는 게 못마땅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더라도이게 제 정신인 인간이 할 짓이냐?
아주 나중에야 그녀가 온 동네방네 싸움을 만들고 다니는 사람이라는 풍문을 들었지만 직접 경험만으로도 꽤 충젹적인 존재로 각인이 돼 이 후 그 집과 관련 된 무엇이라면 모두 맨 위에 언급했던 것과 같은 반응을 보이게 된 것이다.
어느 쪽이 인간이고 어느쪽이 고양이인지 참으로 마음이 복잡해지는 에피소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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