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형제의 종이봉투 쟁탈전이 시작 됐다. 다른 사람 식구가 없고 오프라인 쇼핑이라고는 가뭄에 콩 나듯 하는 집사의 성향 때문에 우리집에는 흔해 빠진 종이 쇼핑봉투도 명절이나 돼야 한 두 개 생긴다.
말하자면 이것이 지난 추석 이 후 처음 만난 만묘의 로망, 종이로 된 쇼핑봉지니 야아들 또한 그것의 등장이 그 얼마나 반갑겠는가~ 새로운 물건의 등장에 언제나 더 재빠르게 반응하는 건 만사에 좀 더 대범한 편인 철수 고양이다
한 발 늦게 따라와 부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동생 고양이 경철의 시선,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늘 봐왔고 예상했던 구도다
혹시나 저도 같이 머리를 들이밀 공간이 있나 제 형을 타넘어가며 살피니 형아 하나만으로도 꽉 차 있어 제 머리 들이밀기를 어림도 없어 보이고
다시 돌아나와 형아 머리가 봉투 안에 있건 말건 뿌지직! 밟고 서서 고개를 주욱~ 내밀어 어떻게든 한 귀퉁이라도 차지해보려 애를 쓴다 "엉아, 니 일루 좀 나와 봐~"
제 머리가 들어있는 봉투를 밟고 서는 서슬에 "이 뭬이야?"라며 밖으로 나온 철수고양이, 이를 본 경철 고양이는 이때다! 하고 애원을 한다
"엉아, 나도 좀 갖고 놀아보면 안 될까?"
"음... 그런데 나도 이 봉투를 오랜만에 봐서 말이다"
"우리 그믄 엄니한테 함 물어볼래, 같아 놀아야 되는지 혼자만 갖고 놀아도 되는지?"
"엄니한테...???"
집사가 개입되면 언제나 상황이 저한테 불리해졌다는 걸 상기한 똑똑한 철수 고양이 세차게 머리를 흔들어 거부의사를 강하게 표시한다,
"안 한다, 안 해! 저 할망구 틀림없이 '동생하고 같이 놀아라~' 칼낀데..."
"그라마 그냥 쫌 내 놔 봐라!"
"니 계속 버티믄 내가 진짜로 엄니한테 확 일러뿐다~(소근소근)"
'하나도 안 들리긔... (하지만 내심 살째기 걱정도 됨)"
"엄니..."
이 고양이, 진짜로 집사의 개입을 요청하는 애절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 도대체 이런 경우에 이런 수법이 통한다는 건 어디서 배웠을까?
"우이야 경철아~~" 집사 입에서 자동적으로 대답이 나온다
받아주니 '됐다!'싶은지 그예 움직여 턱 밑까지 다가와 응석을 부릴 작정으로 집사 쪽으로 방향을 잡는 경철군과 머리를 봉지에 처박고 있었지만 바깥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안 봐도 비디오로 꿰고 있는 철수군,
"저 시키 비겁하게 또 저런다... "
경철이 뭐라하고 할망구가 뭐라 할지 이미 예상을 한 지라 흥미로움과 봉투 속의 어둠 탓에 거봉보다 더 커진 새까만 눈동자가 어쩐지 조금은 서러워보인다.
"엄니, 나도 이거 오랜만에 봐서 갖고 놀고 싶담요..." 라고 그래도 한 번은 어필해 보는 애처로운 철수군,
아니나 다를까,
"어험마~ 저 시키가 봉지 속에 혼자 드가 놀아여, 나도 좀 주라고 해여~~~ 잉잉~"
이 애절한 눈빛을 보고 못 본 척할 집사가 세상에 몇이나 될까, 공평함이고 나발이고 내 입에서는 "철수야~ 동생하고 같이 놀아야지~" 입이 완전 자동으로 움직이고 말았다. 그러니까 이성적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내뱉은 말이 아니라 자라며 들은대로 무뇌 상태에서 플레이 시킨 말인 것이다
"내 저 할망구 저럴 줄 알았다..." 실망스럽게 떨어뜨린 고개가 애처로운 철수 고양이 "봉지야, 인제는 니하고 이별을 할 때가 가까워 온 모양이다, 그 동안 잘 놀아 줘 고마웠대이~"
"나도 저거 좋아하는데..."
섭섭함과 아쉬움 그리고 원망이 뒤섞인 눈으로 제 동생과 집사를 돌아보며 쓸쓸히 자리를 양보하는 착한 고양이 철수 - 무개입의 원칙을 그 새 잊어버린 집사, 이제와서 후회해도 아무 소용 없다, 미안태이...
말 잘 듣는 착한 형 고양이는 제 재미를 양보하고 한 쪽에 널부러져 부러움 가득한 시선을 보내고, 철딱서니라고는 1도 없고 얍삽하기까지 한 막내 고양이는 신이 나서 꼬리를 휘릭휘릭 내저으며 쇼핑봉투를 탐색 중이다
인간의 고정관념으로 고양이에게 형(꼴랑 한 시간 먼저 태어난) 된 자의 운명을 감수하게 한 집사, "그래 이 눔 시키야, 비겁하게 이 늙은 집사 자극해서 봉지 뺏으니 재밌냐, 재밌어?" 욕을 하며 자신의 무뇌아적인 우유부단함을 죄 없는 고양이 탓으로 돌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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