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는 꼬박 사흘째 거의 식음을 잊어버리고 청소는 물론 설거지 마저 다 팽개치고 바구니 짜기에 몰두해 있었다. 지난 봄이었던가, 내 바구니를 사고 싶다던 분께 한올한올 힘 들게 짜는 것을 돈으로 환산하기가 퍽이나 어렵다고 팔지는 못하지만 언젠가 바구니를 다시 짜기 시작하면 원하는 사이즈로 하나 선물 하겠다고 약속 했던 것을 문득 지난 기록들을 보다가 발견했기 때문에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시작한 것인데
사실 완성이 바빠 사흘 동안 일상을 팽개친 것이 아니고 일 전에도 말 했지만 바구니 짜기란 내게는 중독과 같은 것이어서 한 번 손에 잡으면 세월아 네월아 천천히 짜면서도 도무지 손에서 놓아지지 않기 때문이다 - 중독이 확실한 것이 사소한 일상을 잊을 뿐만 아니라 중요하게 챙겨야 할 일까지 잊어버리기 일쑤다, 그러니까 현실감각을 상실하는 것 --;;
그럼 고양이 형제는?
하루 6끼 밥 챙겨 먹이고 화장실 청소하기는 잊어버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것은 소소한 일상이 아니라 생명과 관계 있는 일이니까. 다만 아이들과 놀아주는 시간이 현저히 줄어든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라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더 눈치가 빠안~해지는 녀석들, 집사가 이런 상태일 때는 건드려봐도 소용 없다는 걸 이미 깨우쳤는지 그저 말 없이 멀찌기서 지켜만 보고 있다
여기서도 지켜보고 있다
그러나 집사가 카메라를 들었다는 건 와서 치대도 된다는 신호로 알아듣는지 한 컷씩 찍자마자 두 녀석 모두 냉큼 일보전진
그러나 냉큼 집사에게 치대지를 않고 두 녀석이 마주보고 앉아 미동도 말도 없는데 이것이 집사에게는 뭔가 쎄에~하다. 아마도 집사 가까운 자리를 선점한 철수가 경철이를 향해 "거어 딱 붙어 있어, 가까이 오면 듂는다?" 라고 했을 것 같은 해석이 경철의 눈빛을 통해 전해진다 (우리집에서는 이런 집사 쟁탈전이 하루에도 몇 번씩 벌어진다)
"흥, 더러바서 가까이 안 간다묘!" 외면하는 경철 고양이와
"흥, 저거 아무래도 의심스러워!"
그러더니 갑자기 수염이 낱낱이 흩어지며 입주변이 툭! 불거진다 - 사냥의 신호다. 그리고 마침 등 돌린 제 형을 이윽히 건너다 노는 경철 고양이
아, 진짜로 야아들은 등으로도 대화를 나누는 것일까, 저 뒤에 있던 경철 고양이는 이미 휘리릭~ 바람처럼 사라지고 없다
헉! 그 새 저기 들어가 있었군! 어쩌면 경철 고양이가 지레짐작으로 달아났던 건지도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그 꼴을 본 철수 고양이, 대장답게 어슬렁어슬렁 걸어내려가
하필 경철의 동굴 옆에 있는 기둥으로 가 스크래칭을 한다. 짐짓 여유로운 듯 행동하지만 저것이 일종의 위협이라는 걸 경철이도 알고 집사도 안다
아따, 성질 급한 경철 고양이 후아악~! 제 형이 스크래칭을 끝내고 발을 바닥에 딛자마자 대놓고 하악질부터 날린다
"어쭈구리, 덤벼 보겠다고?" 철수의 뒷태가 말 하고 하악질 날린 녀석은 눈꼽만치도 당당치 못하다, 나름 도끼눈은 뜨고 노려는 보는데 "내 겁 먹었소~" 온 몸으로 말 한다
"어이그, 이걸 그냥!" 하지만 동굴이 좁아서 경철이 더 깊이 숨어버리면 승산이 없다는 걸 아는 대장 고양이는 참을까 말까 망설인다. 이 럴 때는 집사가 대장 고양이에게 물러설 빌미를 주면 이 정도에서 끝이 난다
" 우쭈쭈~ 철수야아~" 고양이들은 정말로 뒤끝이 없다, 이렇게 잠시 고개를 돌린 사이 두 녀석 모두 전투 중이었다는 걸 까맣게 잊어버리니까 말이다. 게다가 저래 놓고는 금새 둘이 마주앉아 그루밍을 주고 받는 일조차 이제는 특별할 것도 없다 - 뒤로 보이는 경철 고양이의 안도한 눈빛
그렇게 한나절이 가고 드디어 완성 된 바구니에 옻칠을 하는 집사
집사가 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궁금해 죽는 고양이들, 경철이 다가와 멀찌감치 앉아 구경하다가 어느 순간 가까이 다가와 흠흠 냄새를 맡기 시작하는데 집사는 마음이 불편한다. 아무리 시험성적서가 있는 물건이라지만 진짜로 무엇이 들었는지는 며느리도 모르니 무취라면 모를까 묘하게 화학성분 냄새가 나는데 아이가 코를 들이대면서까지 냄새를 맡는 건 아무래도 허락이 안 되기 때문이다 - 이 녀석을 어찌 쫓아낼까 궁리 중인데 마침 바구니 벽면을 칠하느라 붓 손잡이가 제 쪽으로 향해 까딱까딱 움직이니 사정 없이 잽을 날린다. 집사, 오홋! 이런 방법이 있었군, 전등이 반짝 켜진다
붓 손잡이를 제 쪽으로 점점 더 들이미니 순식간에 저만치 달아나 한 손을 들고 "더 가까이 오면 때려 죽여불거다아~"하고 있다
칠 하는 데에 다시는 못 오게 할 묘책을 찾았는데 집사가 포기 하겠는가, 점점 더 들이미니 역시나 솜방망이질이 작렬한다
오른손으로 때리고
왼손으로 때리고! - 그래서 고양이 퇴치에 성공 했냐고요?
흥! 이것이 다음 장면 되겠슴다... 내가 집사의 신분이며 이 곳은 내 집이 아니라 고양이 형제의 집이라는 것을 잠시 잊은 집사의 미련함이 증명 되는 순간이다. 찝찝한 냄새가 나는 물건을 아이들 보는 앞에서 꺼내 든 집사를 미련타 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건 그렇고, 저 끝이 어딘 줄 가늠할 수 없는 호기심은 도대체 어디까지일지 참으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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