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고 비우고 가벼워지기의 시작

일요일, EBS에서 빈집에 대한 다큐를 봤다. 부산 영도의 유령촌 같은 아파트에 94세의 할머니가 혼자 살고 계셨는데 방송을 통해 틀림없이 꽤 자주 보고 듣던 환경이고 삶이었을텐데 그 날 따라 유난히 현실적으로 다가온 것은 어쩐 일이었을까. 아마도 피붙이라고는 언니 두 개 밖에 없는 현실과 어느 날 갑자기 눈 떠 보면 저렇게 나이 들어있을 것이 당연한 미래가(나이 들어가면서 하루에 하루씩 가던 세월이 점점 더 주 단위로 가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세월이  월(月) 단위로 가기 시작한지도 꽤 됐기 때문에) 손에 잡히듯 보이게 한 장면이었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당연히 내가 몸 담고 있는 현실과 공간을 둘러보게 되면서 해야 할 일이 한 가지 생각났다 - 바로 여차하면 트렁크 하나에 가진 모든 것들이 들어갈 수 있을 만큼 가진 것들을 줄이고 정리하는 것이었다

지우고 비우고 가벼워지기의 시작

사실 오래 전부터 하겠다고 노래를 부르면서 별 것 없는 일상에 필요도 소용도 없는 '아등바등'에 치여 손 댈 여유를 갖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만일 시작을 한다면 이 많은 시디들부터 시작하겠다고 순서까지 정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도대체 몇 장일까, 이 집에 이사 오면서도 버리고 작년에 일차 정리해 60리터 검은 봉지로 세 번이나 내갔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오래 전부터 하겠다고 노래를 부르면서 별 것 없는 일상에 필요도 소용도 없는 '아등바등'에 치여 손 댈 여유를 갖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태도 이 만큼이나 남아 있던 것에 드디어 손을 대기로 한 것이다. 게다가 지난 겨울에 외벽마다 생긴 곰팡이를 처리하기 위해서라도 시급하게 했어야만 했던 일인데...

60리터 검은 봉지 하나를 만들어 내고 방으로 돌아오니 이깃! 이 녀석이 이러고 있다

60리터 검은 봉지 하나를 만들어 내고 방으로 돌아오니 이깃! 이 녀석이 이러고 있다. 사실 장 아래를 막아 놓았던 차폐물을 치웠을 때 철수가 엎드려 바각바각 하는 걸 봤음에도 손에 거대한 한 봉지를 들고 있었기에 말리지 못하고 방을 벗어날 수 밖에 없었는데 그 새 철수는 퇴장하고 이 녀석이 새로이 등장해 이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 방 가득 곰팡이 포자가 날리고 여기저기 오만 잡동사니가 널부러져 있는 한 가운데 이 녀석 또한 이렇게 널부러져 있어 60리터 시디 봉지 6개 들어내면서 이 녀석 밟지 않으려고 무진장 애를 먹었다

한 방 가득 곰팡이 포자가 날리고 여기저기 오만 잡동사니가 널부러져 있는 한 가운데 이 녀석 또한 이렇게 널부러져 있어 시디 더미 6개를 들어내면서 이 녀석 밟지 않으려고 무진장 애를 먹었다

클래식 음악으로 밥 먹고 살던 사람이라 희귀 음반도 꽤 많은데, 버릴까 말까 망설이게 만든 단 한 장의 시디는 엉뚱하게도 '레오나르드 코엔'

클래식 음악으로 밥 먹고 살던 사람이라 희귀 음반도 꽤 많은데, 버릴까 말까 망설이게 만든 단 한 장의 시디는 엉뚱하게도 '레오나르드 코엔' - 이 사람의 음악을 특별히 좋아하는 건 아니었지만 특별한 순간에 특별한 사람을 통해 알게 됐기 때문에 그 때의 느낌, 냄새 등등이 쉬이 지워지지 않는 그림이 되어 남아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앨범 쟈켓의 모습은 그 친구와도 엄청나게 닮게 나와 볼 때마다 가슴이 찌르르... 지금 그 친구는 세상에 없기도 하거니와 당시에 그가 결혼하자고 하면 OK 했을 것 같은 유일한 상대였음에, 결혼 하자고 할 만큼 나를 좋아하지는 않는다는 걸 설명할 수 없는 느낌적인 느낌으로 알고 있었음에도 그 때는 내 마음이 그랬다 - 버렸다! 일장춘몽임에는 예외가 없다

기침 컥컥 해가며 만든 회반죽을 처덕처덕, 너무 두꺼워 줄줄 흘러내리도록 열심히 처발랐다

이 벽면 하나 처리하는데 7시간 이 걸렸다. 일단 시작하니 중간 과정 같은 건 찍을 여유가 1도 없었다 - 설명도 하기 싫다. 날리는 가루에 마른 기침 컥컥 해가며 만든 회반죽을 처덕처덕, 너무 두꺼워 줄줄 흘러내리도록 열심히 처발랐다 - 지우고 비우고 가벼워지자. 그러면서도 '이게 도대체 돈이 얼마야~' 도 어김없이 했다

보스톤 : 고사리과 식물로 물만 주면 쑥쑥 튀기듯이 잘 자라서 햇빛이 별로 없는 환경에서 기르기 쉽다

화초(보스톤 : 고사리과 식물로 물만 주면 쑥쑥 튀기듯이 잘 자라서 햇빛이 별로 없는 환경에서 기르기 쉽다. 그러니까 식물에 ㅅ도 모르는, 무조건 물만 많이 주는 초보들에게 정말 쉽다. 가끔은 이것마저도 못 기르시는 분들이 계시기는 하지만 ^^)도 늘 바라보는 곳에 있는 것들만 남기고 20개에서 6개로 줄였다

옛다 선물이다, 골뱅이 비빔면과 낮맥주 한 잔!

허리도 펴지지도 않을 만큼 큰 일을 했다, 7시간 일 했으니 최저임금으로 주먹구구 계산해도 6만 원 가량은 벌었다 - 옛다 선물이다, 골뱅이 비빔면과 낮맥주 한 잔!


사실 내가 가장 비우고 버리고 싶은 것은 이유도 의미도 없는 일상의 "아등바등"이다. 각자의 나름 이유 있는 아등바등으로(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어수선하기 짝이 없는 세상에 나는 어쩌면 이유도 없으면서, 사람이라면 그래야 하는 줄 알고 덩달아 휩쓸리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여... 지우고 비우고 가벼워지자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