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 고양이가 귀신을 볼 수 있는가 없는가, 사람과는 보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그들 눈에만 보이는 특별한 자외선 파장이 특별한 상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경철 고양이가 귀신 보는 듯한 행동을 한 에피소드를 썼었다. 그리고 이 아이가 이런 행동을 하면 반드시 아픈데 그 때는 아프지 않고 지나갔던 것 같다,고 얘기를 했지 않은가 - 고양이는 정말 귀신을 보는 걸까?
그런데 요즘 늘 하던대로 그저께 보던 앨범을 이어서 보고 있자니 아니다, 그 날도 아팠고 적어도 이틀 동안은 아팠던 것 같은 장면들이 나온다. 그래서 부랴부랴 옛블로그엘 가보니 역시나...
2013년 7월 20일의 기록이다 (그저께 한 얘기는 7월 19일의 기록이었다)
경철 고양이, 어제(2013년 7월 19일을 말 하는 것이다) 밤에 늘 하던대로 놀아주니 움직일까 말까 한참을 망설이다 그저 한 두번 뛰는 시늉만 하고 평소와는 다르게 피아노 위에서 혼자 잤다.
그리고 아침에 캔 한 두 입 께작대고 다시 침대 밑에 기어들어갔는데 이쯤 되면 숨어 있는 꼴이 귀엽기는 하지만 심히 아픈 것인지 집사는 타들어가는 마음에 사진이고 나발이고 그런 거 찍을 생각 하나도 안 난다. 안정하고 나오고 싶을 때 나와야 회복이 빠를 것 같아 일부러 무심한 척 내버려 두니 과연 제 발로 나오기는 했는데
책상에서 마주 보이는 피아노 쪽에 이렇게 골똘히 눈을 꽂고 있다
그러다 내려가서도 제 갈 길 가면 되지 이렇게 돌아봐가면서 엉금엉금,
정말로 무엇인가 신경 쓰이는 것이 보이는 듯한 표정 아닌가? 도대체 무엇이 너를 그렇게 두렵게 하는 거니... 보고 있는 인간 속이 어떨지 안 겪어 본 사람은 절대 모를 것이다. 아무래도 저 곳에 무엇이 비쳐 제 눈에는 무섭게 보이나 싶어 안 쓰던 커튼 한 조각을 꺼내다가 아이 시선이 닿는 부분을 가렸더니
경철이 기행 때문에 이틀 내내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던 철수 고양이, "웬 떡이냐!!!" - 고양이 삼신 마음에 까슬까슬 하면서도 포근한 광목의 질감이 어찌 좋지 않겠는가, 이거저것 살필 것도 없이 단번에 뛰어 올라가 아주 신이 나 엎드렸다 일어섰다 그루밍도 했다가
"가만~ 나도 하이퍼텍스트 어쩌고 그런 거나 쫌 배아보까..." 제법 책을 보기나 할듯이 살피기도 하신다
"엄니, 나가 인자부터 공부를 시작 할팅게 기념사진이나 한 방 근사하게 찍으시오~" - 짠한 시키! 어느 한 녀석이 아프면 어쩔 수 없이 관심 밖으로 밀려나는 다른 한 녀석이 나중에 정신 차리고 보면 얼마나 짠하고 미안한지...
그런데 경철 고양이는 다시 책상 위로 올라와 여전히... 가려도 보이는 무엇이 있는 건지 저 피아노를 완전히 꽁꽁 싸매 봐야 하는 건지. 그리고 아무 것도 입에 안 댄다. 지가 평소에 먹는 것 다 가져다 손으로다 먹여보고 입 벌리고 강제로도 넣어보기까지 해도 안 되고... 오후에 목이 말랐던지 물이라도 마시라고 캔에 물 타 놓은 거 두어번 할짝거리더니 그릇을 빙빙돌며 바닥을 벅벅 긁는다. 이런 상황이니 내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겠소...
이 후로 저 커텐은 피아노를 완전히 둘둘 감싸게 된다
앨범을 살펴보니 다음날인 21일에는 이렇게 사료를 먹는 모습이 들어 있어 이렇게 일단락이 된 모양이다. 그러나 겪는 동안은 얼마나 노심초사 속이 상했던지 (저 때만 해도 블로그 이웃이 융성 했던 때라) 포스트 머리에 "우리가 갑자기 안 보이거들랑 진짜로 한 구덩이에 다 기어 들어가 죽은 줄들 아시오"라는 어리광 반 협박 반의 멘트를 날려 놓았더라
그러고 보니 생명을 모시고 책임 진다는 일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딱 그 만큼의 두려움도 괴로움도 감당해야만 한다는,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진리 - 아마 나는 이 때부터 고양이 건강 염려증에 걸린 집사가 된 것이 아닐까 싶은데 특히 경철 고양이는 고양이 특유의 까다롭고 비밀스런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 뭔가 대단히 눈치 보이고 어려운 부분이 있기 때문에 사실 대부분의 날들이 노심초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