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 고양이, 언제나처럼 컴터질 방해작전 수행 중 완전 잠에 빠져 버렸다
베개까지 만들어 받쳐줘도 꿈쩍도 않을만큼 깊이 잠 드는 건 고양이에게는 드문 일인데 아무튼 이 날은 그랬다
창가에 앉아 바깥구경 삼매에 빠져 계시던 경철 고양이 이 장면을 목격하고는 득달같이 달려내려와 "이게 웬 떡이냐!" 깨우지 말라고 궁디팡팡으로 관심을 유도하는 집사의 손길은 아랑곳 없이 - 서열 높은 놈이 다른 놈의 똥꼬를 정복하는 게 고양이계의 불문율이라 이 고양이 형제도 기회만 있으면 서로 똥꼬를 차지하려는 노력들이 보통 아니다 -
엉아 꼬리가 똥꼬를 덮어버리지 않게 일단 단디이 잡아쥐고 천천히 접근하기... 서두르면 그 서슬에 이 똥꼬가 놀라 깨어 버릴 수도 있으니까
흐으읍~
"띠요옹~~~아, 어지러워!
"서열이고 나발이고 역시 하지 말았어야 할 일이었나???"
똥꼬를 뺏기고도 다리까지 늘어뜨린 채 한 잠에 빠진 철수는 머? - 오늘 아침에는 옛추억을 소환해 이렇게 너스레를 떨고 말 생각이었으나...
어제 오전(7일, 목요일) 경철 고양이가 이렇게 허옇게 실눈을 뜨고 자길래 푸히힛! 웃으면서 사진을 찍고, 찍으면서 '그런데 너무 붙박힌 듯 깊이 잔다'라는 의문이 살짝 지나갔는데 이 자세 그대로 해가 져 컴컴 질 때까지 계속 잔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이상타, 밥 달라 할 때가 지났는데...' 하며 밥을 차렸는데 철수만 와서 먹고 이 녀석은 드디어 잠에서 깨 바구니에 멍하니 있길래 코 앞에 밥을 가져다 드시라 했더니 냄새도 안 맡는다, 어라?
그리고는 바구니에서 내려와 요 며칠 새 개방한 사람 화장실을 탐색하시다가 하얀 헤어볼을 두 줄기 구토 - 구토라면 헤어볼이라 해도 사람 마음은 자꾸만 예민해지는데... 다행히 사람 화장실이라 물로 씻어내고 헤어볼은 건져서 화장실에 투하, 끝났으려나 했는데 다시 입맛을 다시면서 딸깍딸깍 (고양이들은 토하기 전에 입맛을 다시면서 몇 번씩 딸깍거리는 소리를 내고 그 다음에 '우꾹우꾹' 해서 토해낸다) ... 결론만 말 하면 총 8번, 아침 먹고 내내 굶었으니 거품과 물만 토해내고 외딴방에 혼자 숨어 있기 시작했다
[오늘 아침 첫사진, 밤 새 홀쭉해진 느낌이다]
고양이가 숨어 있기 시작하면 집사는 가슴이 천근만근 내려 앉지만 숨어있게 내버려 두는 척 해야한다, 그래야만 충분히 휴식을 취한 후 스스로 추스리고 나오기 때문이다. 숨어 있고 굶는 시간이 오래 되면 병원에 가야 하지만 통상 하룻 저녁 정도는 관찰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는 잘 시간이 돼 다 같이 자는 방으로 오긴 했는데 다시 2 번 더 토하고... 새벽 2시가 넘을 때까지 살피고 있자니 더는 토하지 않았지만 먹을 것은 입에도 안 댔다. 그 와중에 다행이다 싶었던 것은 내게 와서 머리를 비벼대며 예쁜짓을 하는 것이 아주 못 견딜 지경은 아니라는 증거였던 것
요즘은 두 녀석 모두 자주 이러고 있는데 아침에 일어나 밥은 안 먹고 물을, 그릇마다 다니면서 할짝할짝 마시더니 동향 방의 해가 따가운건지 혼자만의 동굴이 필요했던 건지 이렇게 침대 밑에 머리만 들이밀고 있다
철수 눈에도 도무지 분위기가 심상찮은지 마침 열려 있던 창고방으로 들어가 이렇게 청소기 뒤, 잡동사니 위로 숨어 버렸다. 사진을 찍으니 외면
이건 시간이 좀 지난 장면이다 - 밥 차려 코에 대주니 평소 먹던 양의 30% 정도 할짝거려 주길래 이제 기운 좀 차리려나보다 안심하고 즈들 화장실 완전갈이를 하고 들어오니 다시 이 모습으로 있다가 바닥으로 내가 온 것이 보이는지
밖으로 나와 스크래칭을 시전 하신다 - 회복 중이라는 확실한 신호다. 그러나 마음을 놓기에는 이른 것이 사람도 병이 났을 때 잠시 컨디션이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 하듯이 고양이들도 마찬가지의 행태를 보이므로 이틀 정도는 더 관찰을 해야한다
아침이면 끊임없이 징징대며 따라다니던 철수도 오늘은 쎄에~ 함 때문인듯 조용한데 인간 입장으로서는 혹시 너도? 걱정이 된다
계속 집사 곁에 껌딱지로 붙어 있는 걸 보면 회복 중인 게 틀림 없는데 특별히 먹어주는 것이 없어 아직 불안한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 - 아침에 뭘 먹으려는 듯 이것저것 냄새를 맡고 돌아다닐 때 츄르 같은 걸 들이밀면 먹을 것 같은 분위기였는데, 그거라도 사 놓을 걸, 성분이 쓰레기라고 웬만하면 안 먹이는 그 물건이 오늘 같은 날 너무나 간절하다
7년 하고 한 달이 되도록 어찌 이런 일이 없었겠는가만은 당할 때마다 새로이 겪는 듯 집사는 매번 식겁을 하게 된다. 토하면 지옥이었다 물이라도 좀 마시면 천국이었다가 다시 숨으면 지옥, 집사에게 머리라도 비비면 천국, 이렇게 매 번 지옥과 천국을 순간이동 하며 숨이 갈딱깔딱 넘어갈 지경이 된다 - 아직도 기운이 없어 보이는데 이번 주말 관찰하다가 회복이 지지부진하면 월요일에는 병원엘 가봐야겠다... 츄르도 비상시를 대비해 좀 사 놓아야겠다는 생각도 함께. 그런데 내 무얼 잘못해 내 고양이가 이런 고생을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