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에는 하루도 빠짐 없이 루틴인냥 반복되는 세 가지 장면이 있다 - 사진으로만 보면 매일 다른 그림이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단 한 장면도 달라진 것이 없다
첫번째 장면 - 철수의 매 끼니 중 후반부는 언제나 정해진 식탁을 떠난 다른 장소에서 마무리 된다. 그러나 계속 공개 했듯 어디로 피신하든 상관없이 남에 밥을 노리는 검은 그림자는 늘 따라다닌다
의자 위도 안 되고 책상 위도 안 되고... 여기는 캣휠과 가구 사이의 어둡고 좁은 공간인데 순전히 철수가 스스로 개척한 새로운 간이 식탁이다. 철수의 표정이 말 하듯이 어렵게 찾아낸 자리건만 이미 저 쪽에 하얗지만 검은 그림자 다가오고 있다 - 결국 경철 고양이가 카메라 방향으로 똥꼬를 들이밀고 캣휠 프레임에 다리를 걸치고 선 자세로 얌냠~
이 장소도 사흘 전쯤 철수가 개척했다. 경철이 올라갈 자리가 없도록 일부러 철수를 돌려 앉혀가며 공간을 설계해 밥을 놓았더니 (두 녀석의 표정에서 경철은 저런 약탈질을 내가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고 철수는 이런 타이밍에 불쌍한 척하면 즉효라는 것도 알고 있다는 것이 읽혀진다 - 고양이들 시근이 멀쩡하다, 사람아이 3~5살 지능이라 하지 않았던가. 이런 표정들을 보면 형상이 다르다고 인간보다 가볍게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역시나 파고들 공간이 여의찮아 보였든지 한참을 고개만 잔뜩 빼고 껄떡거리는 경철 고양이와 참으로 난처하고 서글픈 표정을 짓는 철수 고양이 - 아무리 그러더라고 무시하고 꿋꿋이 먹으라고 공간을 설계까지 해가며 차려 줬건만 이 고양이 또한 집사를 닮아 유리멘탈인지 그게 안 되는 모양이다
아무래도 마음이 편치 않았던 철수가 훌쩍 윗자리로 피함과 거의 동시에 밥을 향해 뛰어 오르는 경철 고양이
경철 고양이, 먹으면서도 집사 눈치를 본다.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말리는 행동이 내가 느끼는 것보다 이 아이에게는 더 강하게 어필이 됐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웬만하면 무심한 척 해야겠다는 반성도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 녀석은 눈치만 늘고 다른 한 녀석은 어리광만 늘 것이므로
철수 고양이도 내가 이 일로 안타까워 하고 있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고 - 방금도(14일 아침) 경철이 제 밥그릇 쪽으로 오니 우선 나를 돌아본다, 못 본척 했다. 밥이 모자라 저러는 거 아니니 어느 놈이든 배 고픈 놈이 나중에라도 다시 찾아 먹겠지 위로한다
두 번째 장면 : 철수 손톱에 하얀 터래기. 이렇게 이어서 보면 마치 철수가 빼앗긴 밥에 복수를 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시간차를 보면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다. 밥은 눈 뜨자마자, 이런 장면들은 주로 한 두 시간 후인 청소 때 연출 되므로. 이렇게 손톱에 흰 터래기를 끼우고 씩씩거리다 반드시 경철이 있는 쪽으로 뭔가 미진한 듯 돌아보고서야 마지못해 움직이는데
터래기 뜯긴 하얀 고양이, 이렇게 가능한 한 높고 좁은 곳으로 형의 공격을 피해 눈치를 보다가 적당한 시점라는 판단이 될 때 내려오기 마련이지만
어쩌다 눈치 없이 타이밍을 잘못 맞춰 내려오면 다시 하얀 터래기가 얼룩고양이의 몸에 들러붙고 털주인은 꽁지 빠지게 침대 밑으로 숨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저쪽으로 들어가 이쪽으로 서서히 떠오르며 겁에 질린 표정으로 공격자의 눈치를 살피는 하얀 고양이와
여차하면 다시 덤벼 하얀 털 한 뭉치를 뽑아 놓은 것만 같은 자세와 표정의 얼룩 고양이 - 이 두 번째 장면은 언제나 얼룩 고양이 철수의 "내가 저걸 갋아 뭐하랴"는 듯 돌아서는 양보로 끝을 맺는다
그리고 세 번째 장면 : 이것은 주로 오후에 연출 되는데 집사가 집안 일 마치고 컴퓨터 앞에 앉으면 두 녀석은 나란히 책상 아래로 들어와 서로 포개져 잠을 자다가 다리를 베개로 빌려준 집사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잠에서 깬 두 녀석이 어김없이 이 짓을 한다. 하루도 빠짐 없이 뺏고 뺏기고, 뜯고 뜯기고의 반복인데 마지막 이 장면이라도 연출되지 않았더라면 집사, 스스로의 인성에 대해 엄청나게 비관했지 싶으다 : 왜냐하면 고양이들도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집사의 성격 또는 인격을 닮는다는 느낌이 참으로 강하게 들기 때문에... (여기에 대해서는 동물 행동 과학자들이 제시하는 증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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