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먼저 맞은 자의 여유 - 하루아침에 묘생역전

사람도 그렇듯이 어려운 일을 먼저 겪고 나면 마티 저만 세상을 달관한듯 세상 모든 일이 쉬워보이는 면이 있다는 것을 부인 할 수가 없는데 고양이 세상에도 그런 것이 있는 모양이다. 우리집 고양이 형제는 하루에 세 번 약을 먹어야 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이 일을 둘러싼 에피소가드 하루 일과 중 가장 많이 일어나는데 이 날은 어쩌다가 철수 고양이가 집사가 약을 소분 하는 동안 바로 옆 의자 밑에 또아리를 틀고 마치 기다리는듯 앉았길래 냉큼 잡아다가 두 알을 집어넣고 이제 경철이 차례인데 아무리 살펴봐도 없다? (맛이는 츄르는 그저께부터 끝이 나 약 먹는 시간을 더더욱 끔찍해 한다)

스크래처 하우스에 숨은 고양이

ㅋㅋㅋ 어이없는 웃음이 터질 수 밖에 없다. 제 형이 당하는 꼴을 보고 작은 방, 가장 구석진 곳에 있는 일 년에 한두 번 갈까말까 한 스크래처 하우스에 제 눈만 가리고 나름 숨어있는 경철 고양이를 발견 했기 때문이다. 타조 시키처럼 제 눈만 가리면 온 세상이 사라진다고 느끼는 것일까?

약 먹기 싫어서 숨은 고양이

집사가 카메라를 낮춰서 잡으니 저도 스르르 고개만 낮춰서 집사의 동태를 살핀다. 불쌍하게도 평온한 표정은 아니다 ㅜ.ㅜ

겁 먹은 고양이의 표정

더 가까이 잡으니 잔뜩 겁을 먹었지만 절대로 피할 수가 없다는 것도 아는 눈빛이다. 이 눈빛을 볼 때마다 집사 가슴은 찢어진다. 이렇게 싫은 짓을 언제까지 계속 해야할까, 눈에 띄게 좋아지는 것도 없는데... 물론 면역력을 끌어올리는 요법이란 게 조제약을 쓰는 것처럼 드라마틱한 효과를 보이지 않는 것은 당연 하지만 집사도 고양이도 하루에 세번, 너무 괴로운 과정이다. 일주일에 세 번 수술 받는 사람도 있는데 뭘 그깟 걸 가지고, 늘 이렇게 위로를 하지만..." 피하고 싶지만 이제는 퇴로가 없다..." 절망 또는 체념이 그대로 읽혀진다. 

동생에게 뛰어오른 형 고양이

고양이든 사람이든 이런 표정 또는 약점을 보이면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지는 넘에겐 갑질 하려는 자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바닥에서 왔다갔다 집사와 경철의 동향을 살피던 철수 고양이가 단숨에 뛰어 올라 "이 시키 이리 안 나왔!" 하신다.

스크래처 하우스에서 대치 중인 고양이 형제

지붕 위로 뛰어올라 잔뜩 겁 먹은 경철 고양이를 몰아낼 길을 찾으려 하지만 퇴로도 없을 뿐 아니라다른 입구도 없다. 스트래처 하우스 위에서 이리저리 집 안으로 진입할 길을 찾다가 도저히 방법이 없다. 

고양이 형제의 움직임

냉큼 뛰어내린다. 이것이 매 먼저 맞은 자의 여유라고나 할까. "시캬, 그거 뭐 대단한 일이라고 글케 쫄아서 숨고 지롤여. 얼릉 겨나와!" 하는 것이다. 그럼과 동시에 집사의 "철수 내려와!" 낮고 굵은 목소리를 듣고 단숨에 뛰어내린다. 희한하게 특별히 혼나거나 그랬던 일도 없는데 집사의 엄한 목소리는 알아듣는다. 그건 경철 고양이도 거의 비슷하다. 조금 더 막무가내이긴 하지만 청력이 없어서 그럴 것이려니...

캣폴 위의 하얀 고양이

경철 고양이, 당할 것 다 당하고 캣폴로 달아나(그런데 해먹에는 왜 생전 들어가지 않는 것일까?) 머얼리 애수 어린 눈빛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이 녀석아 너도 며칠 전에 먼저 매 맞은 자의 여유를 한것 과시 하지 않았더냐? ([고양이 형제 철수와 경철이] - 저 좋으라고 먹는 약도 밥도 유세 덩어리)에서 침대 아래를 주억거리며 들여다 보면서 숨어 있는 엉아를 찜져 먹었던 순간을 벌써 잊었단 말이더냐? 이런 것이 묘생역전이란 거이여~

메롱하는 고양이[끝내 잘 난척 에롱~을 시전하시고야 끝이났다]

참 인간도 고양이도 제가 겪은 일이나 저지른 일은 까맣게 잊고 상대에게서 손톱만치라도 약점이 보이면 자동적으로 갑질이 하고 싶은 모양인가보다, 그것이 동물의 본성인가보다... 하지만 차이는 받아들일만 하면 받아들이고 이건 넘 더럽다, 아니다 싶은 것은 아니다! 할 줄도 알아야 인간이리라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세월을 겪고 있으며 또한 겪었을 것이다... 그냥 이 작은 고양이 형제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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