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갈수록 사람처럼 시근이 멀쩡해져가는 고양이

아침부터 제습기와 에어컨을 순전히 제습을 목적으로 번갈아가며 돌리고 있다. 아직 계절이 계절이니 만큼 밖에 암만 바람이 불고 비가 와도 문을 닫고 제습기만 돌리면 집구석이 꽤 더워지기 때문에 에어컨까지 등장 하시는 것이다.

고민스러운 표정의 고양이[경철 고양이가 몹시 고민스런 표정을 지으며 작은 바구니 안에 구겨져 들어가 있다]

 "앗, 집사가 왜 여기 나타났지?"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긴 고양이

이것들은 어제의 장면인데 창문을 열어놓고 에어컨도 제습기도 돌리기 전으로 이 고양이가 이 구석진 곳(집사가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면 이 자리는 무슨 짓을 해도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에 앉아 집사를 보자마자 몹시 난처하고 근심스런 표정으로 생각에 잠기는 모습이다.

손을 핥는 고양이

나름으로 제법 고민이 큰지 제 주먹으로 입을 가리고 고민을 안겨주는 상대를 심각한 눈빛으로 "음... 우짜지?" 주시하다가

제 손을 들여다보는 고양이

"그래 결심 했어!" 라며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인 후

제 등을 그루밍 하는 고양이

"에라이, 모르겠다" 그루밍을 시작 하신다.

다리를 들고 제 배를 그루밍 하는 고양이

그리고는 곧바로 다리를 들고... 문제는 그저께부터 경철 고양이가 다시 뱃살을 오버그루밍하기 시작해 젖꼭지 둘레가 피가 발갏게 배었고 일부 피가 나오기까지 했다. 그걸 발견한 즉시 에어컨을 돌리고 넥카라를 채운 후 마데카솔을 발라 응급처치는 했지만 다음 날 또다시 같은 곳을 그루밍 하기 시작한 모습이 지금 보이는 장면들이다. (위그림서부터는 이미 창을 닫고 제습을 하는 응급처치에 들어간 후다)

집사 눈치를 보는 고양이

고양이 탓이 아닌 걸 알지만, 그리고 이 녀석이 집사 괴롭히려고 일부러 그러지 않는다는 것이야 더더욱 알지만 절망감과 짜증 피곤함이 복합 된 감정이 불끈 솟구쳐 아이 다리를 끌어내려 배를 덮어버렸다. 그 직 후에 고양이는 이런 표정이다... 그 짓을 하면 집사가 날카롭게 반응 한다는 것을 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애초에 집사 몰래 뱃살을 그루밍 하겠다는 뜻으로 여기에 자리 잡았던 것이다.

귀세수를 하는 고양이

미안한 것일까 집사의 신경질적인 반응에 민망해진 것일까, 괜히 머리를 긁적긁적...

손을 그루밍하는 고양이

"내친 김에 세수나 하자..."며 흔하디 흔한 고양이 세수를 시작 하는데

머리아파~ 하는 듯한 고양이 포즈

이번에는 또다른 이유로 집사 가슴이 철렁! 한다 - 귓병이 또 도졌나, 그래지는 것이었다. (잘 때 몰래 귓속을 들여다봤지만 아직은 반짝이도록 깨끗하다, 다행이다)

바구니 속에 웅크린 고양이

그루밍은 이래도 저래도 집사를 신경질적으로 만든다는 것을 알았던 것일까, 이내 세수조차도 하다말고 한숨을 쉬듯이 팔을 베고 엎드려 버린다. 정말 잠을 자고 싶은 것이 아니라 지키고 있는 집사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이다. 그러니까 이 포즈는 일종의 페이크다. 꼬리 아홉 개 달고 또 하나를 달아가고 있는 고양이이니 어련할까...

좁은 바구니 속에서 잠 든 고양이

'봐라, 나 정말 잔단 말이야~" 하듯 일부러 눈 감은 얼굴을 들어보이기까지 한다. 정말이지 시근이 멀쩡! 눈치를 볼 줄 아는 등, 하는 짓이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사람 같아진다.

고양이가 들어있는 바구니를 옮겼다

구석진 자리에서 몰래 하는 그루밍을 막기 위해 그 자리의 바구니를 없애기로 하고 자는 척하는 아이를 바구니째로 들어 침대 위, 내가 훤히 볼 수 있는 위치로 옮겨 놓았다. 그 서슬에 잠에서 깨 다시 그루밍을 시작 했지만 확실히 에어컨이 돌아 습도가 낮아지면 적어도 오버그루밍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 관찰 됐다.

비어있는 마성의 구석 자리

다음날 아침, 비어있는 마성의 구석 자리,

나른하게 누워있는 고양이

오버그루밍이라고 하면 단연코 철수를 따라올 고양이가 없는데 아침에 눈 뜨자마자 창문을 모두 닫고 제습기를 돌리기 시작하니 정말로 거짓말처럼 내내 핥아대던 허벅지며 배를 가만히 두고 한 바탕 침대위를 달리는 놀이를 한 후 나른하게 뻗어있다.

다른 바구니에 앉은 고양이

이 하얀 고양이 역시 집사가 잘 내려다 보이는 제 나이와 똑같이 늙은 바구니 안에 들어앉아 그루밍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나른한 표정으로 엎드려 있다. - 이쯤 되니 역시 습기가 문제였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오늘은 아예 문을 모두 닫고 제습기와 에어컨을 돌리고 있는데 오후 6시가 가까워오는 이 시각까지 오버그루밍 따위는 완전히 잊어버린 모습이라 전체는 아니지만 일부의 해법을 찾은 것 같아 마음이 좀 가벼워졌다. 그나마 제습이 도움이 된다면 여름이고 겨울이고 전기세가 얼마나 나오고 소음이 얼마나 심해도 제습기 쯤이야 내내 돌리고 살 용의가 얼마든지 있다. 


그리고 곰팡이밥을 먹든 간장밥을 먹든 어제보다 더 비참해지지 않은 여여함에 감사하다는 생각이 문득 스친다. 많은 사람들에게 그러하듯이 작은 일상에 감사함이 없으면 사는 일이 너무도 비참하고 괴로운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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