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에는 아침이면 철수 고양이가 침대 위에서 한바탕 사냥놀이를 하는 루틴이 있는데 오늘은 어찌하다 털까지 침대 위에서 빗게 됐다 - 적어도 머리 빗기 만큼은 침대 위에서 하지 않으려 하지만...
요로케 놀다가 금새 골골대며 지쳐 떨어지길래 계속 집사와 컨택은 이어가고 싶지만 몸 고생은 하기 싫다는 뜻으로 해석 돼 이 형제가 좋아하는 빗으로 빗질을 시작했다.
내 고양이 형제가 좋아하는 빗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댕댕이용 눈꼽빗 그리고 가장 오래 좋아해온 빗이지만 성능이 개별로인 청소기용 솔빗(이 빗은 아이들이 아홉살이니 9년 내내 쓴 빗 - 이걸로 청소는 하지 않으니 위생 걱정은 뚝!^^ 기회가 될 때마다 소독하고 말려서 씀)
성능이 진짜로 개별로인 청소용 솔빗으로 빗다가 어딘가 뭉친 느낌이 드는 부위가 느껴지길래 눈꼽빗을 찾는 사이, 우리의 대장 고양이 우연이지 어쨌는지 솔빗을 베고 계신 것이 포착 됐다.
그러더니 슬슬 얼굴을 움직이기 시작,
저 가려운 곳을 스스로 빗에 갖다대 셀프 빗질을 시작하신다.
알러지가 심해진 이 후로 오른쪽 입술 주변에도 문제가 생겼는데 뒷발로 긁는 것은 집사에게 들키면 당장에 저지를 당하니 나름 최고의 눈속임을 생각 해낸 모양이다. 그렇게 서너번 왕복으로 셀프빗질을 하시더니
저 가려운 곳을 그리 자극적이지도 않게 제대로 긁어주는 이 빗이 솔찮이 기특 했던지 깨물깨물로 "넘나 좋다"는 심정을 전달 하시고는
만족한듯 입술을 핥는다.
그리고는 집사가 뺏아갈까 아쉬웠던 것일까, 빗을 베고 스르르 졸기 시작 하신다. 이쯤 되면 집사는 빗질이고 나발이고 주무시게 내버려 둘 줄 아는 상식 정도는 있다. 그래서 다른 녀석에게 할 일을 하자고 마음 먹는다.
집사의 고양이 귀청소용 패션 - 여름이면 집사가 최애하는 5천 원짜리 얇디얇은 원피스, 저것을 입고 그냥 귀청소를 시작하면 경철 고양이 발길질에 갈갈이 찢어져나갈 것은 두 말 할 필요도 없는 일이라 (이미 하나를 그렇게 해서 버렸다) 그 위에 아무리 발길질을 해도 끄덕없을 냉장고티 재질로 된 원피스를 걸쳐 입었다. 이 원피스는 주욱죽 늘어나는 재질이라 아이를 꽁꽁 싸서 품에 안기도 편하고 잡힌 아이도 그리 불편하지 않아서 즐겨 착용하는 전투복이다. 그런데 오늘 따라 입고 보니 피식! 웃음이 날 정도로 기괴한 조합이라 한 컷 남겼다 - 옷의 재질과 무늬의 천재적인 조합, 여기다 꽃만 하나 귀에 꽂고 거리로 나가면 별다른 짓 하지 않아도 모두들 슬슬 피할 것 같은 ㅋㅎㅎ!
경철 고양이의 귀청소는 성공적! 이제는 귀 상태가 많이 좋아져 양은 많았지만 귀지가 액체처럼 흐르지 않고 고양이의 전형적인 "왁스 같은 귀지"로 변해 그나마 집사를 찐기쁘게 했다. 이 상태로 계속 나아지면 좀 더 딱딱해져 나중에는 굳이 청소를 하지 않아도 머리를 세게 흔드는 걸로 스스로 해결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하지만 집사는 귀 상태의 호전으로 너무 기뻐서였을까,
종아리에 심상찮은 기운을 내내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될 때까지 꾸욱! 눌러참고 귀 청소를 야무지게 마무리 하고 약까지 먹였다. 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고양이들은 귀를 닦으면 간지러워 죽겠는지 내내 쉬지 않고 뒷발질을 하는데 오늘 하필 딱 걸린 곳이 살이 연한 종아리 부분이어서 저 꼴이 됐다. 원래는 긴바지를 입고 양말이나 토시를 바지 위로 올리고 넥카라를 채우는 등 완전무장을 하지만 오늘은 덥고 습한데다 아이의 스트레스를 조금이라도 줄이려 '설마'하며 저것만 걸쳤던 것인데 제 귀 가렵다고 이렇게까지 험악하게 남에 다리에 뒷발질을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구리...
그리고는 또 당했다는듯 분을 눌러 참느라 입술을 꾹 다물고 끙끙 숨소리를 내며 이마에 참을 인자 수십 개를 쓰고 계시는 우리의 경철 고양이. 그래도 언젠가부터는 이렇게 참고 나면 가려움이 사라진다는 걸 알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것은 그저 집사의 느낌적인 느낌일 뿐일까...?
그리하여 오늘 아침 새로이 선보인 우리 고양이 형제의 진기명기, 스스로 빗질 하기와 제 귀 긁으려다 남에 다리 긁기! (만일 누군가가 이렇게 당하고도 고양이가 밉지 않냐고 물으신다면 답은 당연히 놉! 거의 매 번 겪는 일이이라 길이 든 때문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제대로 보살피지 못해 병을 만든 집사가 훨씬 더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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