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동쪽 창으로 쏟아지는 평온한 아침이다. 햇빛이 많아지는 계절이면 우리집 고양이 형제는 그 쪽 기온이 얼마나 더 높아도 상관없이 무조건 햇빛 가까운 쪽으로 자석에 끌리듯 자리를 잡게 된다.
방바닥에 비치는 조각 난 햇빛 안에서 고양이 특유의 요가 자세로 그루밍을 하던 철수 고양이가 문득 무엇인가를 발견한 듯한 눈빛을 한다. 뭔데?
대장 고양이의 눈길을 따라가보니 하얀 고양이가 창가에서 해바라기를 하다가 아랫쪽의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리는 찰나다.
동시에 대장 고양이의 눈빛은 문득 무엇인가를 발견 했다를 이미 지나서 무엇인가를 작정하는 쪽으로 바뀌어 있다.
"아, 또 시작인겨..." 제 형의 눈빛이 변하는 걸 집사와 똑같은 순간에 느꼈는지 정말로 난감한 표정이 되는 안타까운 동생 고양이. 이 때부터 집사와 경철의 심장은 쫄깃거리기 시작한다.
그런데 뜻밖에도 대장 고양이는 그루밍 자세를 접고 바닥에 편안히 배를 대고 엎드리는 자세를 취한다. 그냥 잠시 개구진 마음이 동했다가 사그라진 것일까? (하지만 아직 시선을 거두지 않은 것에 주목)
철수가 움직이지 않을듯 자세를 바꾸자 경철이도 마음이 놓이는지 다시 해바라기에 집중하는 자세로 돌아앉았다. 하지만 집사는 사람인지라 철수의 거두어지지 않은 시선 때문에 아직 심장이 쫄깃거리고 있는데!?
중간 과정 찍고 말고 할 사이도 없었다 - 사실 찍기는 했지만 모두 뉴스나 다큐를 보면 카메라가 마구 내동댕이쳐지는 그런 장면처럼 찍혀서 쓸 만한 것이 하나도 없어서 패스. 사실 위의 장면도 초점이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아무튼 순식간에 제 동생을 지나 가장 공격하기 좋은 윗칸으로 자리를 잡은 철수 고양이, 아까 엎드린 척 한 것은 순전히 집사와 제동생을 속이기 위한 페이크 동작이었던 모양이다.
등 돌리고 있는 적을 공격하다니 치사한 자식! 하지만 고양이 세계의 룰에는 잠 잘 때와 밥 먹을 때 건드리지 않는 것 외에 등 돌리고 있을 때 건드리지 않는다는 항목은 없다, 그러니 치사 하다고 하는 건 인간의 관점일 뿐이다. ㅎ;;
예전에 어떤 분이 아이들 싸우는 걸 보고 재미 있다고 포스팅 하냐고 집사 자격 운운하는 악플을 단 적이 있어서 다시 한 번 설명 하는데, 이 고양이 형제의 사이가 그리 좋지 않은 것은 분명 하지만
[고양이 사이에 정말 심각한 싸움은]
1. 밥 먹을 때 건드리는 것,
2. 잠 잘 때 공격하는 것,
3. 화장실 못가게 하는 것,
4. 피가 나게 싸우는 것 등이다
이 외에는 사이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어도 이 정도 투닥거림을 심각하게 생각해 집사가 개입하면 오히려 사이가 더 나빠질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는 것이 좋다. 특히 동물들은 동성인 경우에 싸움이 더 잦다는 것도 알고 있으면 도움이 된다.
그렇다고 저 장면이 "논다"라고 표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노는 것은 한 쪽이 일방적으로 쫓기거나 피하는 것이 아니라 엎치락 뒷치락 쫓고 쫓기는 장면이 있는지 없는지로 구별할 수 있다 - 이때도 물론 서로 맹공을 해서 "피"를 본다면 절대로 노는 것이라 볼 수 없다.
그리고 싱겁게도 이것이 다음 장면이다. 바닥에서 제 동생을 지나 바스켓까지 한달음에 뛰어올라갈 때는 지상 최대의 냥코전쟁을 벌일 것 같더니 막상 바스켓 안에 들어가니 언제나처럼 두 손은 쉽게 내리지만 두 발을 내리기는 귀찮았던 것, 경철이 제 팔 길이보다 먼 곳으로 달아나니 저 내려다 보는 꼬라지 좀 보소, ㅍㅎㅎ!
그리고는 언제 심술을 부렸냐는듯 쏟아지는 햇빛을 받으며 달콤한 낮잠에 빠진다.
짧디 짧은 전쟁이 끝난 후 집사의 해석 - 철수가 바스켓 안에 들어가고 싶었는데 그러려면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길목에 하필 경철이 있어 걍 한 대 줘팼다? 이 정도 쌈박질이야 하거나 말거나 집사의 소원은 오로지 하나, 그것이 무엇인지 새삼 입에 올릴 필요도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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