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 고양이가 언제나처럼 바구니에서 제 동생을 몰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 하고 앉았다.
그런데 승리한 자의 표정이 아니다. 누가 봐도 지루함과 심심함이 뚝뚝 흐른다. "우리 쩔쭈, 찜찜해요오~?" 그래서 조금은 더 갖고 놀지 싶다고 예상 했던 양모 쥐돌이를 건네주니
저 혀 좀 보시오! 이 쪽으로 접고
저 쪽으로 접고, 섬세하기 짝이 없는 일도 어렵지 않게 해 내는 혀의 특별한 능력을 빌어
양모실을 잣고 있다(사람에게 손가락이 있으면 고양이에게는 혀가 있다) - 저렇게 혀의 돌기 사이에 끼워 뽑아낸 실을 이제 고개를 한껏 뒤로 젖혀 최대한 길게 만들어
합! 인간이라면 실패에 감아 실로 만들어 쓰려 하겠지만 이 고양이는 이렇게 잣은 실을 디저트로 드시려는 중이다 - 안 된다, 안 돼! 제 헤어볼로도 장폐색이 생기는 사고가 생기기도 하는데 이건 심지어 남에 털이고 길이도 단모종 고양이의 털 길이와는 비교도 안 된다. 그렇다고 간신히 지루함을 물리치는데 큰 도움을 준 쥐돌이를 뺏을 수도 없고...
집사, 꾀를 낸다 즉, 쥐돌이의 꼬리 끝을 단단히 묶어 매듭을 지으면 실이 매듭에 걸려 더 이상 뽑혀 올라오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다시 건넨 쥐돌이, 집사가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니 같은 방법으로 실잣기를 하다가
뜻대로 되지 않으니 "어? 이 맛이 아닌데?" 하듯 아예 쥐돌이를 들어올려 유심히 들여다본다. 집사가 한 짓을 눈치 챘을까? ('아니다'에 한 표 - 그냥 쥐돌이가 변한 것이다)
"그래 네가 맛이 변했다, 이 말이지? 그렇다면!" 변해버린 쥐돌이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왼쪽, 오른쪽 돌려가며 꼬리를 깍깍 씹어댄다. 이러는 것을 보니 실을 잣지 못하게 하는 데는 성공을 했는데
"우이씨, 이게 뭐야?" 이 표정이 말 하는 것은 아무래도 씹기보다는 실잣기가 더 재미있다는 것이다. 고로 매듭을 지어준 것은 고양이의 놀이를 위해서는 잘 한 일이 아닌 것 같다. 미안타, 그렇다고 실을 뽑아 삼키게 그냥 두는 집사가 어딨겠노?
"세상만사 다 재미없다..." 한 순간에 쥐돌이를 놓고 실의에 잠긴다.
하필 이 녀석은 무슨 장난감이든 그루밍 하는 것을 너무 좋아해 집사를 식겁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마음 놓고 가지고 놀 만한 장난감 선택의 폭도 훨씬 좁아져 이렇게 장난감을 두고도 심심한 시간을 보내게 되니 무엇으로 이 좌절감을 보상 해 줄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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