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하얀 고양이 경철군, 이렇게 하얗고 새침하게 생겨서 와일드한 철수보다는 훨씬 활동력도 떨어지고
소심하고 까칠한 편이라 전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늘 이 모습 이대로 앉아 있을 것만 같다. 그런데 조금 전, 저녁 뉴스를 듣느라 집사는 정신 팔려있던 시간에 부엌에서 무엇이 후닥, 투둑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철수 고양이는 내 발치에 있으니 틀림없이 저 얌전한 하얀 고양이가 내는 소리다.
소리로 짐작컨데는 무엇 깨지거나 위험한 물건이 아닌 종이박스나 플라스틱 통 같은 것이 떨어진 것이어서 느긋하게 카메라를 들고 나가 봤더니 낮에 떡국 육수 내느라 꺼냈다가 냉장고에 돌려넣지 않은 마른멸치 통에서 유혹의 냄새가 솔솔 풍겼던 모양이다. 그걸 작업대 위로 뛰어올라 톡톡 드리블 해 떨어뜨린 다음(그래야 떨어지는 충격에 뚜껑이 열리니까) 뛰어내려
집사야 나오건 말건, 사진을 찍건 말건 눈썹 하나 까딱 안 하고 처묵처묵 하시는데
멸치 씹히는 소리가 제법 까드득까드득 난다. 얼마 전부터 황태채에 싫증을 내시더니 이제 입맛이 건멸치 쪽으로 선회한 모양이다. 멸치 쪽이 더 짜서 그런 모양인데
하지만 이건 안 된다. 황태채는 겨울 내내 덕장에서 얼었다 녹았다 하면서 대부분의 염분이 빠져나가지만 마른 멸치는 한 번 쪄서 말리는 것이라 하지만 황태에 비하면 사람 입에도 염분이 더 많이 느껴진다. (멸치 자체만으로 본다면 고양이 건강에 좋은 물고기다) 이미 입에 들어있는 것을 뺏으려 하면 급하게 삼키기 때문에 입에 든 것 다 씹고 삼킬 때까지 사진 찍으며 기다렸다.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더니 이제 좀만 더 발전하면 "집사, 멸치 찍어먹게 고추장 좀 가져와~"하지 싶으다.
그리고 여기서 또 하나 달라진 그림 - 철수 고양이가 그토록 침 바르고 사수한 "묘험한"([고양이 형제 철수와 경철이] - 만들기 시작만 해도 즉시 팔려나가는 묘험한 바구니) 그 바구니를 경철 고양이가 차지 한지 이미 꽤 오래 됐다.
하지만 철수 고양이, 대장답게 그냥 이렇게 제 동생 하는 짓을 보고만 있다가
한 번씩 뚜껑이 저절로 날아가도록 끓어오르면 조용히 제 동생을 침대 밑으로 불러들여 무슨 짓을 했는지 이러고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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