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경철 - 까칠해, 너무 까칠해

둔한 집사, 언제나 철수가 가만히 있는 경철이에게 진상을 떤다고 생각했다. 경철이가 잘 앉아있는 자리에 슬그머니 끼어들어서

까칠한 하얀 난청 고양이

이렇게 천연덕스럽게 그루밍을 하면 혼자만의 휴식을 방해 받은 경철, 짜증스럽다는 듯 꼬리를 탁탁 치며 몇 초 정도 궁리를 하다가 결연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짜증스럽다는 듯 꼬리를 탁탁 치는 고양이

또 졸지에 혼자 남겨져 무안함을 감출 수 없는 철수를 뒤로 하고

또아리를 틀고 잠을자는 하얀 난청 고양이

오뉴월에 이렇게 꼬리까지 감아붙여 완벽한 또아리를 틀고 잠을 잔다. 이것이 "철수 절대 접근 금지" 포즈다. 여기까지만 보면 엉아한테 맨날 자리를 뺏기는 경철 고양이 넘넘 딱하다.

 

그런데 요즘 마음 먹고 이런 일련의 행동들을 관찰해 보니 언제나 경철씨가 먼저 자리잡고 있는 곳에 철수씨가 따라가는 건 맞다. 대부분 아르르~하며 밝은 소리를 내는 것은 "같이 놀자" 또는 "같이 있자"라는 뜻인데, 놀자는 제스추어를 보이거나 그루밍을 해주려 하는데 경철이 손을 들어 엉아 싸다구를 날리거나 입으로 앙~한다. (막상 싸다구 날리는 장면들은 관찰하느라 다 놓쳤지만)

각자 다른 바구니에서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던 고양이 형제

오늘 밤에도 각자 다른 바구니에서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던 녀석들이 연출한 예외없는 장면이다. 끼어 들어온 철수군을 바라보며 마징가 귀를 만들어 난감해 하던 경철군,

자리를 박차고 나오는 하얀 난청 고양이

미련없이 있던 자리를 박차고 나오는 경철이와

난감해진 표정의 철수 고양이

또 다시 난감해진 표정의 철수 그래도 포기를 못하고 기어이 쭐래쭐래 따라간 철수, 아주 잠깐의 그루밍을 적선 받고 또 다시 버려진다.


관점의 차이일까, 내 눈에는 철수가 한도 끝도 없이 외로워 보이고 경철이 한도 끝도 없이 까칠해 보인다. 엉아는 하루에 열 번도 넘게 가까워지기를 시도하고 동생은 하루에 열 번도 넘게 엉아에게 싸다구를 날린다.

외로운 형 고양이

철수는, 내가 따라다니며 밥을 떠 먹이면 나중에 토할 값에라도 의리로 먹어주는 정이 많은 아인데...

작은 박스에 들어간 외로운 형 고양이

맛있어 캔, 지영이 거라 접근 금지 명령을 내렸더니 "그럼 빈 박스라도 좀..." 경철이, 저 까칠한 시키를 우짜쓰까? 2012.08.03

 

요즘은 철수가 아예 대놓고 자리를 빼앗아 버린다."아르르~"하며 놀자는 신호 따위 통하지 않는다는 건 일찌감치 깨달았지만 경철이 안 들려 그렇다는 걸 모르니 서로 간에 오해가 깊어져 눈만 뜨면 하는 짓이 '일단 한 판 붙고 보자!'다. 사람이 돼서 어느 고양이를 붙잡고 앞은 이렇고 뒤는 저렇고 설명을 하겠는가. 아이들 사이가 나빠져 간 과정이 보이는 듯 해 착찹한 마음. 2017.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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