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여한 아침이었다. 일이 시작 된 것은 집사는 물걸레질을 하다가 잠시 뭔가를 하려고 책상 앞에 앉아있을 때였다.
경철 고양이, 아침부터 정수리에 솜방망이 한 대 맞고 최애 바구니에서 차선의 바구니로 쫓겨나 몹시 심기가 불편한 일이 있었는데다
언제나처럼 제 형 밥을 넘보다가 집사에게 "네 밥 저어기 남았잖아" 해서 다시 제 밥자리로 쫓겨나는 수모까지 당했으니
입장 바꿔 생각해도 기분이 좋지는 않았겠지만
그저께와 마찬가지로 집사 일감에 들러붙으러 가는 철수 고양이에게 경철 고양이가 느닷없이 덮치는 모습이 포착 됐다. - 이 장면은 덮치고 난 후 철수가 다시 일어났을 때부터다.
졸지에 완전 덮침을 당한 철수 고양이 "이 시키가~?" 하는 눈으로 제 동생을 노려보고 경철 고양이는 그 눈빛에 쫄아서 귀도 고개도 한껏 뒤로 당겨지는데 여차하면 공격하려고 와중에도 한 손을 들고 있다.
이럴 때는 집사가 문제다. 늘 사람 아이들한테 하듯이 "야아들이 또 와 이카노?" - 내 말을 알아듣는 건 철수 뿐이니 철수가 참고 자리를 피하는 모습이다.
그렇게 서로 방향을 엇갈려 철수는 집사가 던져놓은 물걸레 쪽으로 와 가렵지도 않은 귀를 긁는다 - 고양이는 당황 했을 때 귀를 긁는다. 사람이 멋적을 때 머리를 긁는 것과 같은 모습으로 싸울 의사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경철 고양이는 저쪽으로 가 스크래칭을 한다. 스크래칭은 그만 하자는 뜻이 아니다.
철수는 여전히 귀를 긁고 있는데 저 눈빛 봐라~ 상대가 방심한 사이 다시 한 번 비열한 공격을 할 모양이다.
하지만 철수의 재빠른 "너 또 뭐야?!"라는 눈빛 대응으로 멈칫.
이제 전쟁이 시작 될 모양이다. 고양이들은 싸움을 시작하기 전에 꼭 이런 모습으로 빙글빙글 돈다.
그러다 철수가 한 발을 먼저 내 딛으니 잠시 멈칫 했다가
무엇이 경철 고양이를 심기일전하게 했을까 밀리지 다시 한 번 선제 공격을 해보지만 철수 고양이가 재빨리 몸을 뒤로 빼는 바람에 공격에 실패,
철수 - "내 이제 더는 못 참는다아~?"
경철 - "그래, 덤벼라, 덤벼"
순식간에 철수가 또 깔리고 말았다. 이런 기술은 '안다리 걸기"쯤 되나?
한 판 자빠뜨렸으면 항복을 받아내야지, 쫄보 같은 하얀 고양이 금새 풀어주고는
자리를 피하며 "까불지 마라이?" 눈빛을 던진다. 다시 순식간에 당한 철수는 넋이 나간 자세다.
그리고 다시 철수가 싸우기 싫다는 사인을 보내니
이 냥아치, 아랑곳 없다. 한 번 자빠뜨려 보니 재미가 들린 모양인지 다시 한 번 공격 자세로 들어가는데 이 무렵부터 해설하는 집사 속은 타들어간다. 왜냐하면 이것이 좀체 벌어지지 않던 상황이기 때문인데 이 아이들 8년 7개월 생애 중 아기 때 사냥놀이를 하며 서로 물고 뜯고 쫓고 쫓기고 하던 시절을 제외하면 경철이 먼저 공격을 하고 철수가 자빠지고 하는 건 내 기억으로는 처음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웬 조바심? 하시겠지만 고양이는 상대가 약할 때 또는 아플 때 공격을 한다. 이런 기회를 노려 약자를 도태 시키는 동물들의 본능이다. 그래서 고양이들끼리의 행동도 집사는 유심히 살펴야 하는데 혹시 철수가 아픈건가, 하는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른 한 편으로는 경철이 오래 앓아왔던 귓병에서 벗어나 기운을 차려 기상이 드높아진 탓일까, 후자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사진은 찍고 있지만 마음이 타들어가고 있는데
다행히 철수 고양이가 귀 긁던 동작을 멈추고 경철 고양이의 앞을 막아선다. 다행이라니, 집사가 돼갖고 아이들이 싸우는데!!!
그런데 진심 다행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철수가 계속 귀만 긁고 그렇게 싸움이 끝났다면 틀림없이 철수에게 모종의 문제가 생긴 것이라 병원에 가봐야 할 각이기 때문에.
철수 - "야, 너 잠깐만! 이 자슥이 보자보자 하니까 정말 보이네?!"
경철 - "왜 또 한 번 디져볼래?"
경철 고양이의 눈빛도 절대 만만치 않다. 집사는 속으로 빈다, 철수야 다시 귀 긁으면서 용서 해주면 안 돼~
경철 - "마이했다 아이가, 비켜라~" 한 발 내 디디니
철수 - "오데를 갈라고?" 한 발 더 정면으로 막아선다
경철 고양이 표정만 봐도 철수 고양이의 눈빛이 보인다 - 경철 고양이 완전 쫄았다. 유능한 싸움꾼은 상대의 기가 꺾였을 때의 절묘한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 법,
철수 고양이, 순식간에 뒤집기 기술 들어갔다. - 고양이들은 이러면서도 찍!소리 하나 내지 않는다. 신기하지 않은가? (옆집에 새로 이사 온 강아지는 새벽 댓바람부터 짖어대 요즘 슬슬 짜증이 나는데)
구사일생 빠져나온 경철 고양이에게 여전한 대장인 고양이 철수 : "오델 가는거야, 일루 와!" 손짓을 한다.
하얀 고양이가 단 한 장면만에 사라진 것은 셔터보다 더 빠르게 침대 아래로 토꼈기 때문이다. 철수 참 무던하다. 동생을 달아나게 내버려 두고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대장답다)
침대 아래에 몸을 반만 숨긴 하얀 고양이, 표정은 영 불편해 보인다. 혹시 제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도발을 했는지 스스로도 놀라고 있는 것일까? 그래도 셋 중에 제일 많이 놀라고 마음이 불편한 건 집사일거다. 이런 변화, 절대 좋은 신호가 아니므로 - 단, 경철 고양이가 그 동안 아프다가 컨디션이 회복 돼 기가 살았다면 이야기가 다르지만 어쨌든 집사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살펴야 할 일이 하나 더 생긴 셈이다.
대장 고양이, 그 자리에 그대로 철푸덕 누워 저희들 싸움의 흔적을 이윽히 들여다본다. 아무리 싸움이 나도 검은 털이 흰털보다 더 많은 건 이번이 처음이라 제 눈에도 볼 만할거다. 그 동안 철수가 힘으로는 경철을 지배하는 구도였으니 집사는 이것이 변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유는 위에서 충분히 설명했다)
그렇다고 경철이 손해 보는 건 하나도 없다, 밥 뺏아 먹는 건 언제나 경철이니까. 철수는 단 한 번도 경철이 밥 먹는 걸 뺏거나 건드린 적이 없으니 이 힘의 균형이 무너지지 않고 이대로 가길 바랄 뿐이다. - 이상 "고양이 격투기" 녹화중계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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