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일 하다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아, 저 하얀 고양이 시키 또 흘러내리고 있다!
그러니까 이 장면은 아래에 무엇 볼 게 있어 저러고 있는 것이 아니고 주무시는 고양느님의 장면이다, 이렇게 눌러붙은 자리에 턱만 없었으면 액체괴물처럼 줄줄 흘러내렸을 것만 같은.
가만, 진짜로 자고 있는 거 맞아? 하는 의심에 가까이 가보니 꼼짝도 않는다
역시 주무시는 거 맞다 - 그런데 신기하기도 하지, 이 녀석은 꽤 자주 이런 꼴로 주무시는데 어떤 원리로 얼굴이 붓지 않고 여전히 오똑한 코에 여전히 땡그랗고 큰 눈을 유지 하는지! 만일 집사가 이러고 잤으면 10분 후에는 틀림없이 선풍기 아줌마가 됐을겨~
하얀 고양이 자는 모습 구경하다 문득 "그런데 철수는 오데 갔노?" 하니 제 이름 불러줘 반갑다는 표시로 아무거나 손에 잡히는 데 스크래칭
맨날 보는털쥐인데 볼 때마다 이렇게 진지하다
"너 누구야?"
정말로 낯설은 것을 보는 듯한 표정이다 - 집사는 이럴 때마다 이 고양이들이 우습거나 무섭거나
사실은 집사가 흔들어 주는 것이 무생물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 매 번 이렇게 진지한 표정으로 사냥을 하니 우습고 연출한 장면에 장단을 맞춰 저리 진지한 척 할 정도니 내가 지금 여시랑 같이 살고 있는 것이지~ 하는 느낌에 무섭고
어쨌거나, 얍! 하고 덤볐다가
털쥐는 꼼짝도 않고 그 자리에 있는데 짐짓 놓친 척 하고 저어기 뒤로 물러나 마치 털쥐가 덤비기라도 할까 한 손을 저렇게 들어올리고 경계모드! 꺄악~ 저 새까만 머루눈이라니!!!
이런 장면마다 사냥에 단 번에 성공해 놀이를 일찍 끝내지 않고 오래 즐기겠다는 계산까지도 할 줄 아는 걸로 보이니, 아무리 작은 생명이라도 나름의 계산과 생각이 다 있다는 경험이 거듭 될수록 존엄하지 않고 경이롭지 않은 생명은 어느 하나도 없다는 진리를 점점 더 깊이 새기게 된다
아무래도 단 번에 사냥 하기에는 뭔가 여의치 않은 모양인지
지끈 더미를 돌아와서 바닥에 코를 붙이고 외면한다 - 이런 장면을 처음 보는 사람은 고양이의 집중력이 떨어져 이제 딴 짓 하려나 싶겠지만 천만에! 사냥감을 안심시키려는 페이크다
저 페이크 동작에 사냥감이 잠시 한 숨을 돌리는가 싶으면 그 빈 틈을 노려 순식간에 이렇게 공격 자세로!
공격의 낌새가 보이자 느긋하던 털쥐가 푸드득! 달아나니 같이 움찔! 이번에야말로 가만 두지 않겠다는 자세가 돼 한 걸음 스며든다 - 이 동작을 보면 가까이 가는 것이 아니라 '살금살금' 스며든다는 표현이 절로 나온다
장고 끝에 드디어 사냥감을 향해 날았는데 어찌나 격렬 했던지 저 지끈 몸에 휘감고 있는 꼬라지 좀 보소! (사람에게는 힘 들지만 이 지끈 더미가 고양이 형제에게는 작전 세우기 좋은 사냥터가 되어 준다
그거이 그리 재밌나? 철수 고양이도 똑같은 표정, 똑같은 자세로 털쥐를 노려본다
이 녀석은 성질도 급하고 복잡한 걸 좋아하니 털쥐가 알아서 지끈 더미 속으로 쏘옥~ 숨어든다
까이꺼, 이리 재고 저리 재고 할 것 하나도 없다, 한 방에 찾아 물고
경철 고양이가 절대로 안 오는 캣휠로 가서 느긋이 포식 중
집사, 이 때다! 철수가 잠시 털쥐를 놓친 사이 얼른 그것을 집어들고 머리 위에서 흔드니 우짜겠노 고양이, 포획물 되찾으려면 캣휠 타야지!
이것이 고양이가 캣휠을 정식으로 타는 자세다 - 털쥐를 흔들고 있어야 해서 멀리서 는 못 찍었는데 설명을 하면, 고양이는 캣휠을 타려고 타는 게 아니고 즈들 습성대로 위로 위로 점프를 하는데 아, 이 망할넘의 휠이 자꾸만 돌아가니 고양이는 자꾸만 점프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 사이 따라나와 제 형이 하는 꼴을 놀란 눈으로 지켜보는 하얀 고양이
이 표정과 자세는 경이로움의 표현일까 부러움 또는 두려움의 표현일까, 어쩌면 고양이라는 동물은 제 속마음을 이리도 진지하게 표현 하는지? 고양이, 세상 둘도 없이 진지한 사냥꾼이라 아니 할 수 없구리~
어제 내 글에 어떤 분이 '고양이는 밥만 축내고 빈둥빈둥하는 동물'이라고 댓글을 달았던데 당신은 밥 축내고 누군가에게 이런 순수한 웃음과 기쁨을 주는 존재냐고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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