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계절 탓으로 우리집 고양이 형제의 하루 일과는 아침에 밥 먹는 걸로 시작해 머리 빗고 잠시 놀고 나면 아직 이른 오전 시간에 모두 끝이 난다. 아침부터 푹푹 찌는 탓인지 머리빗기나 놀이가 끝나기도 전에 널부러져서 놀이 중에도 자다깨다를 반복하기 일수여서 집사는 이 형제가 제대로 잠 들기 전에 필수 일과를 마무리 하려 동분서주 하게 된다
이제는 웬만한 장난감은 모두 식상해져 놀이가 잘 진행되지 않는 관계로 즈들 머리카락 빗어 모은 걸로 공을 만들어 흔들어주니 철수 고양이 저 표정 좀 봐라 "뭐야, 왜 이런 걸 갖고 놀라는 거야?"라는듯 살짝 혐오스러워 하는듯 보인다
"어허이~ 하지 말라니까!" 표정은 그리 보이지만 사실 이 표정은 매우 흥미를 가지고 사냥놀이 할 때 특유의 것으로 이 형제는 즈들 털로 만든 공을 잘 가지고 노는 편이다
이것은 경철 고양이만의 특이한 일과로 아침밥 먹고나면 집사 꽁무니를 따라 다니며 킁킁 냄새를 맡아댄다. 제 형에게 털공을 흔들어 주고 있는데 이 녀석은 이러고 있다 - 아, 쓰면서 방금 떠오른 건데 "나도 좀 놀아 줘어~"라는 신호일 수 있겠다. 부러운 것, 원하는 것이 있을 때 이 고양이 형제는 대상에게 코를 대고 킁킁거리니까
그리고는 집사 발치에 납작 엎드려 두 눈이 검실검실 한다. 누가 보면 고양이 키스라도 날리는 줄 알겠지만 천만에! 시크한 경철이는 그런 거 안 한다. 걍 졸고 있는 거다 --;;
"야아야~ 아직도 머리도 안 빗었는데 벌써 자나?"
머리는 빗고 재워야 하니까 경철 고양이가 좋아하는 탱탱볼로 잠을 깨우니 서너번 집사와 탁구하듯 랠리를 하다가
닭이 알 품듯이 공을 꼬옥 껴안고 꼼짝도 않는다. 서너번의 랠리에 벌써 지쳐버린 것이다. 놓치면 다시 강서브가 들어올 걸 뻔히 아는 이 고양이 "놓치지 않을 꼬예욤"
"경철아, 공 이리 내라 좀만 더 놀자~"
"머라 카노. 하나도 안 들리긔~"
정 그러면 머리라도 빗어야재~ 집사가 빗을 들고 나서면 두 녀석 모두 벌떡! 일어나 마치 자석에라도 끌리듯 다가와 온 몸과 영혼을 맡긴다
물론 빗으면서 피부가 당겨져 그렇겠지만 머리 빗을 때 경철 고양이의 표정, 특히 눈은 정말로 모양이 특이해진다. 눈 주변이 살짝 부풀어 오르면서 뭔가가 쑤욱~ 빠져나가는 듯한 묘한 모습. 그런데 경철아 네 얼굴 가까이 보니 너무 더럽다, 세수 좀 해야할 것 같은데 우째 생각하는가?
오늘은 어쩐 일로 철수도 납작하게 앉아서 머리를 빗는다 (평소에는 마구 돌아다녀서 집사가 헐떡이며 쫓아다닌다) 그래서 못 해 보던 걸 해 본다
경철이처럼 영혼이 빠져 나가는 표정이 나오나 머리피부를 주악 당겨 빗어보니 ㅎㅋㅋ 이 녀석은 눈 주변 살이 부풀어 오르는 대신 세 번째 눈꺼풀을 보여주네? 그런데 이 표정 좋았어, 맨날 똘방똘방 좀은 거세게 보이던 아이가 아기 같이 순진해 보여서!
철수 고양이 머리 빗는 동안 하얀 고양이 그 새 또 퍼드러졌다. 혹시 눈치 채신 분 계실까, 모든 고양이가 다 그렇지만 특히 경철이 이러고 있으면 그 자체만으로도 유난히 힐링스럽다는 것을 - 뭐 그건 경철 집사 네 생각이고~ 하면 할 수 없고! ㅎ;;
그러다 갑자기 눈이 이따시 만해져서 몸을 일으킨다. 시선을 따라가니 창 밖으로 새가 휘릭 지나가는 중이었다.
새는 이미 지나갔는데 미련을 못 버린 고양이는 몸 움직이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한참을 눈만 굴려 창밖을 관찰한다
새는 가 버렸고 일어난 참에 좀만 더 놀자고 공을 던져 주니 단 번에 캐치해 품에 끌어 안아버린다. "고마 해라, 마이 했다 아이가" 눈으로 말 한다
좀이라도 더 놀게 하려고 공을 뺏아오니 그 즉시 있는대로 주욱~ 퍼드러져 버린다. 금새 하얀 여우 목도리가 탄생했다. 이 정도 길이면 목에 둘러도 충분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공을 정조준해 던져주니 한 치도 어긋남 없이 솜방망이를 날려 스매싱을 한다
우리는 이렇게 제법 랠리가 된다, 시종일관 누워서 하는 것이라 문제지만
헛, 집사의 실수! 공이 잘못 날아가 경철고양이의 목께를 강타하고 턱 밑에 멈춰 버렸다
이 기회를 놓치면 아직 몇 분은 더 시달려야 한다는 걸 잘 아는 경철 고양이, 슬그머니 손만 움직여 공을 끌어다 품에 안아버린다. 진짜로 귀찮았던지 표정은 이미 썩었구마이~
어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가까이 가보니 눈 뜨고 입 벌리고 이미 꿈나라로 떠나셨다
흰여우 목도리가 왔어요, 가끔씩 오렌지 색 알도 품어요~ 싸게 드릴 테니 하나 들여 놓으세요, 얼굴은 좀 더럽지만 씻어 쓰세요~ 세상 둘도 없이 따뜻하고 포근포근 말랑말랑 자체 발열까지 하는 여우 목도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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