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시간 : 평소에 고양이 형제들 밥 주려고 찬장을 열면 밥을 꺼내기도 전에 즈들이 먼저 들어가 캔 노릇을 하려들어 재빨리 꺼내고 재빨리 문을 닫고, 집사라면 누구나 그렇게 할 터. 오늘은 아이들 밥 찬장이 거진 비어 가길래 채워넣으려 어제 온 택배를 정리해 갖고 들어오니 아뿔싸, 내가 찬장 닫고 가는 걸 잊었던 모양이다
두 분 모두 이러고 계신다! 한 분은 이미 빠닥비닐 찾아서 씹고 계시고 다른 한 분은 씹을 만한 걸 아직 못 찾으신 듯 킁킁. "이 눔 샤꾸들, 이리 안 나왓?!" 해도 빠닥비닐에 이미 홀릭 된 넘은 들은 척도 않고 오히려 들리지 않는 난청 고양이가 슬그머니 물러난다. 물론 나를 의식해서가 아니라 씹고 뜯을 만한 게 없기 때문이다
이러고 계실 때는 저렇게 밖으로 흘러내린 꼬리 집어넣고 문을 닫아버려도 눈 하나 깜빡 않고 컴컴한 데서 계속 빠직빠직! 문 열어 달라고 울지조차 않는다
그리고 오후 시간 : 티비 켜놓고 세 식구 모두 낮잠을 자야 할 시간이다. 침대 위에 우연히 티비 방향을 향해 앉아있던 경철 고양이
티비가 켜지고 화면이 몇 초 노출되니 갑자기 휘리릭~ 날아서 티비 밑 바구니에 안착한다. 그리고는 한참을 화면에 골똘 하길래 집사도 덩달아 뭐, 뭔데? 하고 경철의 시선을 따라가봐도 모르겠다
맹충한 집사가 갑갑했을까, 몸을 주욱~ 늘여 "나 이거 보고 있자너~" 하듯 집사의 시선을 온 몸으로 유도해준다. 아아~ 로봇 청소기! 광고 화면 아랫켠에 2계좌 가입시 공짜로 드린다 어쩐다 하면서 로봇 청소기가 뱅뱅 돌아가고 있었던 것 - 아아 그래, 이건 아무래도 네 사냥감이야
하얀 고양이, 제 위치에서 로봇청소기를 잡아보려고 팔을 쭉 뻗어보니 아무래도 팔이 넘 짧다
(ㅍㅎㅎㅎ! 다시 봐도 우스바 죽겠다) 저것이 생각이라는 것을 할 줄 안다고 액자를 지지대로 쓸 생각은 우찌 했을꼬? 저걸 디뎠다고 과연 목표물에 훌쩍 더 가까워졌다! - 새삼 느끼는 고양이란 존재의 작고 가벼움, 얼마나 작고 가벼운 생물인지 내가 지끈으로 짠 가볍기 짝이 없는 액자는 저렇게 딛고 서도 기울어지기만 할 뿐 떨어지거나 부서지지도 않는다. 그런 작은 생물이 저걸 딛고 서면 원하는 것에 더 가까워진다는 걸 안다!!!???
인간은 또 다시 고양이에게 홀리고 만다. 그리고 생각한다, 저런 생각을 할 줄 아는 아이들을 어찌 아니 존중할 수 있으며 어느 누가 함부로 대할 수 있을까 하고...
그러다 화면 윗쪽에서부터 실물보다 더 커 보이는 로봇청소기가 막 구르면서 아랫쪽으로 내려오기 시작하니 저 어리석은 넘, 혹시 화면 밖으로 떨어지려나 티비 밑으로 머리를 처박고 골똘히 기다린다 (오타 점검해 내려오면서 또 봐도 저 골똘한 뒷모습과 이마에 잡힌 주름이 새삼 우습고 귀여워 다시 육성으로 푸히힛! 한다)
나올 리가 있나, 암만 기다려도 안 내려오니 혹 저 모르는 사이에 방바닥으로 떨어졌나 싶은지 돌아서서 바닥을 살핀다
"집사, 혹시 니가 치웠나 로봇 청소기...?"
"내가 안 치웠다, 난 사진 찍고 있었자나!"
실망해 고개를 돌리니 마침 강아지 두 마리가 저를 향해 막 뛰어오고 있다. 옳지, 사냥 해야지! 경철 고양이는 아기 때부터 바깥에 남자들이 어른거리면 채터링을 하고 자동차가 지나가도 까르릉~ 하는 엄청난 사냥꾼이다. 당연히 벌떡 일어나 파닥파닥, 투닥투닥! - 놔~ 우리 경철 고양이, 강아지는 안 되고 로봇청소기 하나 놔 드려야겠어요~
그리고 저녁 시간 :
오늘 찍은 사진들 정리 편집하고 있자니 두 녀석, 약속이나 한듯 같은 표정 같은 자세로 코 앞에 앉아 집사에게 무언의 압박을 보낸다 "놀아 주거나 간식을 주거나!" - 이런 것이 우리 세 식구의 가장 흔한 하루다. 그나저나 로봇 청소기는 얼마나 하려나? 공짜로 받으려면 상조 두 계좌나 트라는데? --;;
ⓒ고양이와 비누바구니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