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시간이 다르게 가고 있다

몇 주 전에 경철의 귓병이 재발해서 병원 약을 타 왔고 그걸 먹고 생전 안 하던 구토를 해서 소화제까지 따로 타 와서 섞어 먹였어야 했던 이야기를 전했었다. [고양이 형제 철수와 경철이] - 고양이와 하얗게 지새운 새해의 첫밤, 결론은 소화제를 섞어도 구토를 하길래 며칠 쉬었다가 아이 상태 봐가며 다시 일주일 가량 같은 약을 먹였었는데...

[동굴에 숨어 밥을 외면하는 경철 고양이]

결국은 아이가 이 지경이 되고 말았다. 약 먹이는 동안은 구토에 신경 쓰느라, 그리고 약을 먹이면 금새 호전돼왔기 때문에 약효가 있는지 없는지 크게 살피지 않았다.

[컨디션이 바닥인 경철 고양이]

그런데 약을 먹이다보니 딱히 '무엇 때문'이 아니라 아이 상태가 점점 뭔가 이상해진다는 느낌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틀 치 약이 남았음에도 그만 먹이기로! 그런데 말이다, 만약 이번에 받은 약이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느낌이 틀리지 않았다는 거의 확신에 가까운 생각이 드는 것이 경철의 상태가 점점 나빠져가고 있는 것이 모든 행동에서 보이기 시작하다가 급기야는 저렇게 하루 종일 숨어 다니며 밥을 외면하기까지 하는 시점이 왔다. (그 전 날 밤은 세 식구 모두가 또다시 뜬 눈으로 꼬박 밤을 새웠다)

[동굴 안에서 잠 자는 경철 고양이]

숨소리나 행동거지 등으로 유추해 볼 때 귓병이 몹시 아이를 괴롭히는 중인데 이개혈종 수술까지 겪은 이후에는 한 번도 보이지 않는 증상이었고 따라서 이번에 받는 병원 약은 재발의 조짐을 잡지 못했고 귓병 약 저대로 진행되고 잘못된 약 때문에 그건 그것대로 아이 상태를 더욱 나쁘게 했던 것 같다. 구토를 할 정도로 독한 약이었다면, 어디에 쓰이는 약이 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이 몸에 무리가 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가루약으로 캡슐에 넣어져 온 상태라 옳다, 그르다 따질 수도 없고 개별적으로 성분분석을 의뢰할 만한 비용도 없고...

[자는 녀석 사진을 자꾸 찍으니 빼꼼~ 눈을 뜬다]

상태를 봐서는 당장 병원으로 달려가야 하는데 그 병원은 이제 더 이상 가면 안 되겠으니 새 병원을 구해야 하는데 어느 선생님이 고양이를 잘 보는지도 모르겠고 무엇보다 내 발목을 잡은 것은 새 병원에 가자면 모든 검사를 다시 해야하는데 결정적으로 내게는 그럴 비용이 없다는 것이다(사람 쓸 돈 남겨두고 고양이에게 쓸 돈 없다, 이런 개념이 아니다).

 

방법이 없다... 다시 동물약국에 전화해 상황을 설명하고 일주일치 약을 받았다.

[심상찮은 분위기에 철수도 하루종일 이렇게 찌그러져 있었다]

그런데 막상 약을 받아보니 항생제 양이 만만찮게 들어있다. 처음에 경철의 귓병 치료를 시작할 때 항생제를 먹이니 설사를 해서 최소한으로만 먹였던 것인데 괜찮을까? 아니, 어쩌면 항생제가 더 필요한데 설사 때문에 덜 먹였던 것이 완치를 방해했을 수도 있겠지... 약사님께 다시 전화를 해 이러저러하다 설명을 하니 "필요할 때는 먹여야 합니다." 하신다. 그래, 그러자. 당장 어떤 다른 방법도 시도할 여력이 없으니 그것만이라도 해보자...

[숨숨집을 완전히 점령한 경철 고양이]

그렇게 항생제 섞인 약을 일주일치 타서 이제 이틀 반, 그러니까 5번만 더 먹이면 끝이나는데 인간의 개인적인 시간은 이렇게 쏜살 같이 지나가는데 (한 번 자고 나면 일주일이 가 있고 두 번 자고 나면 한 달, 세 번 자면 일 년이 가 있다 --;;) 아이 약 끝나는 그 날짜는 왜 이렇게 까마득히 멀고 또 먼 것인지... 하나의 사람이 같은 시간 속에서 사안에 따라 시간의 흐름을 전혀 다르게 느낀다는 아이러니.

[숨숨집 지붕 위에 철수 고양이]

잠정적인 결론, 결국 병원약은 오(誤) 조제된 것이 거의 확실해 보이고 경철의 상태는 약국 약을 딱 한 번 먹은 그 길로 호전되는 것이 눈에 띄어 밥도 잘 먹고 숨소리도 행동거지도 달라졌다. 아침저녁으로 다시 시작한 약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부분이 있지만 몸이 안 좋은 것과는 상태가 다르다는 것을 집사는 느끼기 때문에 일단은 안심이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멀어지는 고양이 형제]

이래서 경제력이 안 되는 사람은 반려동물을 들이지 말라는 것인데 (동물이 아프면 사람보다 훨씬 많은 돈이 든다. 의료보험 등 시스템의 도움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아이들이 입양하던 그 시점에도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병원 정도는 다닐 수 있었고 게다가 "설마... " 하는 마음이 더 컸던 것 때문에 저질렀던 것인데 설마가 사람 아니, 고양이 잡는 체험을 하니 경제력이 안 되는 분은 절대로 랜선 집사로만 만족하시라고 도시락 싸들고 다니며 강권하고 싶다. 아이 상태가 나쁜 걸 들여다보면서도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과 죄책감은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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