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연속 번데기를 먹은 사연 - 숨 쉴 시간이 따로 필요없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주말

아따, 참말로! 바쁘고 정신없고... 이건 뭐 비엔나 시절에 공부를 한 자라도 더 하려고 새벽에 일어나고 배가 고파도 참고 그랬던 바쁜 것과는 품질이 다르다. 재미도 없고 머리 아프고 어깨까지 덤으로 아프고 아픈 팔에 피는 안 통해서 손가락 움직이기도 힘들고 말이다 - 이렇게 사람도 기계처럼 녹슬고 삐걱거리며 고장 나다가 종내는 하늘나라로 떠나는구나, 그런 토요일이었다. 그런데 바빴던 만큼 보여드릴 만한 장면은 거의 하나도 없다는 것이 함정!

비닐로 밀봉한 중문

이것이 비닐로 안팎을 완전 밀봉한 우리집 중문이다. (안쪽만 찍었지만 밖에도 똑같이 했다)

곰팡이 현관

지난 겨울에 찍은 (해마다 되풀이 된 것이지만)고양이 형제의 주요 알러지원으로 의심 되는 현관의 곰팡이와

약품으로 곰팡이를 지운 후

약품으로 곰팡이를 지운 후의 모습을 보여드리면서 도저히 더 견딜 수가 없다, 집주인에게 뭐라도 해 달라고 해야지, 등의 글을 쓴 적이 있었다. 그 동안 여름이 가면서 장마가 너무 길어 습해서 안 돼, 장마가 지나니 또 너무 더워서 안 돼, 그러고 나니 추석이라 안 되고 드디어 손을 대겠노라고 약속 받은 날이 급추워지기 시작한 25일인 오늘이다 (글 쓰는 현재 시점은 24일, 토요일이다)

테이프와 비닐로 밀봉한 중문

그 동안 집주인의 말로 짐작컨데 곰팡이를 지우는데 락스 원액을 쓸 것이 분명하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일 그들이 락스를 들고 들이닥치기 전에 집 비밀번호 알려주고 "나는 중문을 완전 밀봉 할테니 말도 붙이지 마라. 그리고 현관 센서도 죽여라, 택배 풀 때마다 십 수 번씩 일어섰다 앉았다 돌아버리겠다..." 암튼 그래서 오늘은 염소산 냄새를 흡입해 좋을 것 1도 없는, 그렇잖아도 나이 많고 잔병 많은고양이 형제 때문에 중문을 완전히 밀봉하는 작업을 미리했다.


이 정도 육체노동이라면 괜찮지만 시간을 잡아먹고 또 잡아먹지만 진도는 그리 나가보이지 않는, 내놓고 말 하고 싶지는 않은 또다른 일을 벌이면서 정신마저 하나도 없었으니 난 살다살다 이리 바쁘고 정신 없는 날은 처음이다, 할 정도였다.

냉동 번데기

이 사진 찍은 시각을 보니 오후 5시 57분으로 나온다. 일 하면서 간간이 커피 마신 것 외에는 이 시간까지 칼로리가 되는 걸 삼킬 시간이 없었다. 당연히 너무나 심히 허기가 져 그 시각에 첫 양치질을 한 손으로 하면서 급한 마음에 다른 한 손으로는 어제 언니가 갖다준 번데기를 냉동실에서 꺼내 애벌삶기를 했다(중국 번데기일테니). 잠시 후 한 번 끓어 오르길래 체에 받쳐 물을 버리고 새 물에 역시 언니가 갖다준 만능 육수내기용 양념장과 번데기를 투하,

스트래처로 막은 중문

번데기가 끓는 동안 중문 바닥을 이렇게 막았다. 물론 테이프로 4, 5 중으로 철저히 접착하기는 했지만 이 녀석들은 비닐만 보면 사람이 자꾸만 새우깡에 손이 가듯이 입이 가는지 비닐 한자락을 어떻게든 끌어내 아그작아그작 씹어대기 때문에 비닐 중문에 접근 원천봉쇄! (아무 문이든 열고 닫아도 비닐이 서걱이지 않는 걸 보니 아주 제대로 밀봉에 성공 한듯해 와중에 뿌듯)

번데기탕

한 손으로는 계속 양치질을 하며 중문 단속 마무리를 하고나니 번데기가 다 끓었다. 심한 노동을 했을 때는 역시 탁주 한 잔! 오늘도 동동주 맑은 물에 2/3 정도의 맹물을 채워 펄펄 끓는 번데기 한 그릇과 늦은 밥상인지 주안상인지 새참인지... 글 쓰는 현재는 저 번데기 세 그릇째 먹고 있음. 너무 많이 담아 들고오면서 흘리지 않으려고 국물을 후룩후룩 마셔 가면서.

지끈으로 짠 고양이 스크래처

와중에 완성한 한 장의 고양이 방석 - 역시 아날로그가 주는 힐링은 디지털의 D도 명함을 내밀 수 없을듯. 이건 언제 완성이 됐는지 의식도 못하던 사이에 어느 순간 다 됐지 싶어 자를 꺼내 재보니 좀 늦었으면 큰 일 날 뻔! 속 모르는 사람들은 그 와중에 이런 걸 만든다고 지롤을 하니 더 정신 없고 바쁘고 아프지, 하시겠지만 요즘 같은 디지털 세상에 아날로그 일거리가 얼마나 커다란 휴식이 되는지 아시는 분은 다 아실듯. 이렇게라도 머리를 식힐 수 있는 재주와 핑계가 있어 얼마나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인지!


이런 연유로 어쩔 수 없이 연이어 징그런 번데기 사진을 올리게 됐네그랴~ ㅎㅋㅋ. 사람이 숨 쉬는데 따로 시간을 내야 했다면 오늘은 아마도 숨 쉴 시간이 없어서 죽어버렸을 것만 같은 날이었다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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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6)

  • 2020.10.25 20:10 신고

    엄청 바쁘셨군요... 그래도 첫 끼니가 너무 늦으셨사와요~~~ 그렇게 드셔서 살이 없으신가봐요... 전 나날이 살이 오르고 있어요.. ㅠ
    저희도 번데기 가끔 삶아 먹어요~ 파는 데도 없지만 집에서 해먹는 게 왠지 깔끔해요~ㅋㅋ

  • 2020.10.26 13:16

    비밀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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