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흰 고양이와 지붕 위 길고양이

미어캣처럼 높이 앉아 내리는 비에 골똘해 있는 경철군

비 오는 날 하얀 고양이와 지붕 위 길고양이 1

비가 일 초도 쉬지 않고 내리시니밤  새 아이들이, 거센 빗속을 가로질러 밥 먹으러들 왔을까, 내다보니 지영이네는 몇몇 녀석이 무릅쓰고 다녀간 흔적이라 다시 특식을 내놓는다, 태풍을 견디고 오는 아이들인데 맨날 먹던 그 밥은 어쩐지 엇박자인 듯하다.


중국집 옆에도 그나마 마른 자리에서 먹으라 깔아둔 비닐 위 두툼한 신문지는 흠뻑 젖어버렸지만 먹이가 남은 흔적은 없다. 아픈 발이 물에 젖어 불으면 어찌 될지 알기나 하는 것인지...

비 오는 날 하얀 고양이와 지붕 위 길고양이 2

나는 밥벌이 스케줄도 미루고 빗속으로 막걸리를 사러 나가려 한다, 매운 고추튀김을 해 낮술을 할 작정으로, 비가 오시니까, 일 초도 쉬지 않고... 마트로 가며 생각한다, 이럴 때 남자 하나가 필요하다고 . 왜냐하면, 다리 아픈 저 아이 잡아 들여야겠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기 때문이다.


발 다친 아이는 잘 하면 케이지만으로도 잡을 수 있을까. 이미 어느 병원으로 갈지 의사선생님과 말도 맞춰 놓았고 항생제도 먹이고 있는데 잡아 들이는 일이, 임신인지 수유기간인지 등 여러 잡다한 걸림돌로 실행에 옮겨지지 않고 있는 중이고...

비 오는 날 하얀 고양이와 지붕 위 길고양이 3

벌건 불빛을 내뿜는 것이 자꾸만 가까이 가니 가차없이 하앍!!! 얼마나 예쁜지 뒤집어질 뻔했다. 이 날 이 후로 아이 상태고 나발이고 사진은 안 찍기로 했고 다만 " 이 때닷!" 하게 되는 순간을 만들어가며 기다리는 중이다. 2012.09.17

 

비가 그친 며칠 후, 경철이는 들리지 않아 바깥 아이들과 좀처럼 마주치지 못하는데

비 오는 날 하얀 고양이와 지붕 위 길고양이 4

오늘은 아조 머리를 들이박고 "끄르릉, 까르릉" 움찔움찔 하니 저 짝에 멀리 있던 철수까지 달려 오시고 예삿일은 아녀, 하고 내다 봤더니

비 오는 날 하얀 고양이와 지붕 위 길고양이 5

아 글쎄, 요 콩만한 냔이 오른쪽으로 구르고, 왼쪽으로 구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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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려다 보며 "메오오~" 한다. 끄르르~ 움찔움찔 이상의 반응은 할 줄 모르는 창 안에 남정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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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나를 발견하고는 정색! "밥순이잖아? 괜히 깜딱 놀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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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연히 구르기~

 20 비 오는 날 흰 고양이와 지붕 위 길고양이

비 오는 날 하얀 고양이와 지붕 위 길고양이 10

보고 있기가 하 딱해 간식 넣은 봉지를 안에서 흔들어 보였더니 다시 벌떡!

비 오는 날 하얀 고양이와 지붕 위 길고양이 11

무슨 일인지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모퉁이를 돌아 밥자리로 온다. 이 아이는 지붕 위 아이들 중 가장 깨끗하고 가장 건강해 보이는 아인데 도무지 살가움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지영이 몫의 좋은 밥을 자꾸만 가로채기 때문이다. 요 냔이 이런 상태여서 우억이가 요즘 밤마다 나타나 철수와 창문 미팅을 가지는구나, 지난 번 낮에 나타났을 때는 아직 때가 무르익지 않았었구나, 임신 할 거면 차라리 그 때 하지, 점점 더 추워지는데 한겨울에 아이 낳아 어쩌자고, 중얼중얼 걱정은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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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턱에 우억이가 올라오면 하도 막강한 대장 포스를 풍기는 놈이라 나도 뭔가 두려워져 "저리 가, 이 눔!" 하게 된다.

비 오는 날 하얀 고양이와 지붕 위 길고양이 13

쫓겨가며 뭔가 원망스럽고 아쉬운 듯 이리보고 저리보고 하는 모습에 다시 마음이... 지영이는 아이를 낳았는지 어쨌는지 며칠째 보이지 않고... 2012.09.21

 

오늘도 순덕이는 '발 다친 아이'로 호명되고 있어 이상하다, 이렇게나 오래 데면데면 대했었나 스스로를 의심했는데 옛블로그의 댓글에 내가 쓴 답글을 보니 아이 잃게 될까봐 정 들이지 않으려고 일부러 작명을 늦추고 있었던 것. 이 불쌍한 것, 앞으로 들여다보게 될 겨울 이야기가, 그 이야기 만큼은 아직도 낱낱이 기억에 남아있어 벌써 찌릿한 통증을 느낀다. 2017.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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