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상황이 점점 나빠져 가는 것 같은 신호가 있다는 말을 짧게 했었다. 오늘도 길게는 하지 않을 생각이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것도 위안을 주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아무튼,
아침에 일어나니 하얀 책상 위에 철수 고양이의 잔털이 빠져 있는데 이건 그냥 털이 아니고 귀 또는 얼굴 등 털이 짧은 부분에서 빠져 나온 것들이다. 얼굴 부위의 탈모가 참치 때문이려니 짐작만 하고 그걸 끊었음에도 아직 나아지는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그냥 찍으니 여기저기 흩어진 것에 카메라 초점을 잡지 못해 손바닥으로 쓸어모았다)
그리고 경철 고양이, 어제 나를 엄청난 불안에 떨게 만든 것이 바로 이 고양이의 상태였다. 즉, 하루종일 침대 밑에 숨어 거의 꼼짝도 안 해 그 곳에다가 세 가지 밥을 차려드릴 정도로 노심초사 하게 만들었던 것.
아픈 것인지 스트레스인지 오만 추측을 다 하다가 일단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약 안 주기, 양치질 안 하기를 저녁에 실천해 봤더니 즉시로 태도가 달라져 어제 저녁에는 모처럼 집사 발치에서 잠이 들었다가
아침에는 다시 여늬 때와 마찬가지로 컴퓨터질을 딱! 방해하는 자세와 위치로 뻗치고 앉아 집사를 더 할 수 없이 안도케 했다.
하지만 인간의 욕심이란 얼마나 미련할 만치 끝 간 데 없는 것인지 집사의 움직임에 "먀아~ 먀아~" 하며 따라 다니길래 지나가다가 훌떡 입을 열고 미리 준비 해놓은 약(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것들 3가지를 넣어서 평소보다 2배로 작게 했다)을 밀어넣고 다시 아무 일 없다는듯이 스윽 지나갔더니 약이 작아 삼키는데 문제가 없었던지 저도 아무일 없는냥 행동한다.
하!지!만! - 이것은 그제부터 새로이 눈에 띈 약간의 탈모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뾰루지가 난 걸로 보이는데 철수와 같은 병인가, 그렇다면 정말 집구석의 곰팡이가 우리를 잡아 먹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자꾸 긁지 않으면 일단은 그냥 둬보려 한다, 괜히 소독 한답시고 건드렸다가 예민보스 성깔이 언제 다시 폭발할지 알 수 없으니 이제는 무엇을 해도 조심스럽다.
좀 전에도 원래 있는 귓병 때문에 가려웠는지 귀 세수를 한참 하다가 제 풀에 침대 밑으로 뛰어 들어갔다가 제 풀에 다시 나와 집사를 방해하는 중인데 "귀 가려우면 귀청소"가 이 예민보스에게는 이미 입력이 돼 있다는 증거다.
아이들 상태로 봐서 곰팡이 제거 작업은 그곳이 어디가 됐든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현관 곰팡이 없애기(집주인은 내가 연락하면 15일 연휴 께에 손 봐주겠다고 했음)를 위해 드디어 현관을 정리 하기로 작정하고 며칠 전부터 사뒀던 스티커를 붙이고 신고전화를 했다. 이렇게 날을 받아놓지 않으면 언제 움직일지 알 수 없으므로 약속은 목숨 걸고라도 지켜야 맘이 편한 스스로에게 즉효인 압박요법을 쓴 것이다 - 그런데 이 뭔 넘의 팔자인지 폐기물 내놓는다고 신고를 하자마자 비가 마치 스콜처럼 퍼붓기 시작한다. 지금 당장 내놓아야 하는 것 아니니 그나마 다행이라며 위로를 한다.
그리고 고양이 형제에게는 유산균을 건사료에 풀어 입속임용으로 동결건조 고기를 섞어줬더니 먹는 넘은 이 넘 하나다.
철수는 냄새를 맡은 후 "이걸 먹을 거라고 주는거야?" 하듯 자리를 떠나 이렇게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철푸덕!
아침저녁 약 먹는 일을 벌써 일 년이 넘게 해 오는 중인데도 그것에 만큼은 적응이 되기는 커녕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심한 스트레스 반응을 보이는 예민보스 고양이와 바로 어제, "그래, 약도 양치질도 귀청소도 다 포기하고 동물답게 해피하자" 했던 집사는 인간의 욕심이란 것을 버리지 못해 다시 약을 먹이는 개미련을 떨며 새로운 하루를 시작했다.
생각 하니 약 사이즈가 작아진 것만으로 고양이가 한 발 물러서 준 것이 오히려 더 대인배(대묘배)다운 행동이다, 싶을 정도로 스스로가 미련스럽게 느껴진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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