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에 산 에어컨, 그러니까 철수 고양이에게는 평생을 여름마다 함께 해 온 물건이라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 싶은데
신기한 것은 해마다 이렇게 반응한다.
이렇게 차가운 바람을 토해내는 이 물건이 도대체 무엇이래~ 한 것인지 여름이 돼 첫 시동을 걸면 방드시 보이는 모습이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똑같다. 이제 그러려니 할 때도 됐지 싶은데 말이다.
"그깟 게 뭐 궁금하노?" 라는듯 입술을 핥다가 째지게 하품하는 하얀 고양이, 저녁에 약 먹을 시간이 돼 슬그머니 사라지길래 "뻔할 뻔"이지, 소심한 녀석 도망 가봐야 침대 아래지! 하지만 암만 들여다 봐도 없어 혹시나 하고
작은 방으로 건너가보니 여기에 새로운 TV가 생겼다는 건 언제 인지 했을까(그동안 여기에는 눈꼽만치도 관심 없어 보였던 때문) 본묘는 이미 익숙한듯 태연하게 자리를 잡고 바깥 구경을 하고 있다.
집사가 움직이면 거의 늘 따라 다니는 철수 고양이도 "이게 웬일?" 하듯 창틀에 두 손을 올리고 제 동생을 바라보는데
이누무 하얀 고양이 시키, 집사가 왔을 때는 그냥 흘깃 쳐다보고는 다시 바깥 구경에 몰두하더니 제 형이 뭘 어쨌길래 눈도 마주치기 전에 일단 하악질부터 날리는 것이냐? 철수는 진짜로 제 털끝 하나도 안 건드렸다. 집사 입장에서는 경철이가 저리 된 사정이야 이해 하지만 움찔, 겁 먹고 뒤로 물러서는 철수 꼴에 맴찢!
"내 TV 넘보지 말란 말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수가(제 동생을 좀 무시하기는 함) 다시 한 발 내디딜 기미를 보이자 두 번째 하악질 작렬, 그리고는
"오기만 해봐라 확 마!" 두 묘 이상을 모시는 집사라면 이 표정에 동반 되는 목소리쯤은 쉽게 상상 하실 것이다, 꼬리를 채찍처럼 탁탁 치며 엄청 낮은 톤의 "그으으~" 아니 이게 그렇게까지 반응 할 일이냐고오?
창틀 위에 있는 넘은 여전히 묘한 소리를 내고 있고, 이럴 때 철수를 보면 이거이 눈치가 없는건지 제 동생을 진짜로 개무시 하는건지 일방통행. 집사 눈에는 철수가 경철이 자리를 뺏거나 괴롭히려는 것이 아니라 저도 그저 창 밖이 궁금하다, 정도의 액션일 뿐인데
저 눈에 힘 준 꼴 좀 보소, 눈 튀어나올라! 언제나 그렇듯이 이 녀석은 전혀 다르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명백하다. 그런데 사실 자리가 좁아서 두 고양이가 나란히 올라앉으려면 몸이 서로 좀 부대껴야 하는데 청소년 시절을 지나면서 이 둘 사이는 점점 멀어지기 시작해 요즘은 두 녀석이 한 프레임에 잡히기만 해도 감지덕지 할 정도니 나란히 앉아 TV 시청 따위는 어림도 없다.
"철수야, 동생이 싫다잖아~" 다행히 철수는 집사 말을 금새 알아 들어(제 동생 말보다 존중 하는 편) 한 마디에 포기하고 주저앉아 버리는데 저 표정이... ㅜ.ㅜ
"나도 창 밖 구경 하고 싶은데..."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한 번 동생을 돌아보지만 다시 하악질이 날아올 것이고 한 번만 더 시도하면 솜방망이 타작 당할 것을 뻔히 아는 녀석,
"엄니는 왜 맨날 나만 갖고 그래여...?" 체념한 표정 뒤에 서러움이 숨어있다. 저 뒤, 피아노에 비춰진 하얀 고양이 시키, 제 형이 완전히 돌아섰음에도 아직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여유로운 자세로 엎드리지를 못하고 있다. 이럴 때 집사는 여늬 부모와 마찬가지로 아이들 탓을 하기보다는 자신의 무능함이 미안해진다, 좀 더 평 수가 큰 TV를 마련 해줬더라면 채널권 다툼 따위는 필요치도 않았을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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