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워라, 어미 고양이가 독립 시킨 제 아기를 대하는 모습

얼마 전에 대담하고 똑똑한 아깽이 까꿍이를 소개한 적이 있었다. ([창문 밖 아이들과의 추억] - 청출어람 일취월장 아깽이) 그 때는 어미 고양이인 지영이가 까꿍이에게 인간에게 밥 달라는 법을 가르치는 중이었고 2, 3일 안에 가르치지 않은 것까지 스스로 깨우쳐 오히려 인간의 걱정을 샀던 일화를 소개 했었다.


그리고 지금부터는 그 후로 이어지는 이야기인데, 마침 어미인 지영이가 더 이상 쓰지 않아 더러워진 밥자리로 일부러 찾아와 밥을 달라길래 다른 때 같으면 밥을 챙겨들고 내려가 정식 밥자리에 줬겠지만 한참 이사 준비를 하느라 나도 어수선 했던 터라 더럽긴 하지만 아이가 원하는 자리에 얼른 밥을 내려주자 마음 먹고(저런 자리에 준 것이 그 때도 미안 했는데 지금 보니 더더욱 미안하다)

밥 먹으러 온 길고양이에게 캔을 떨어뜨렸는데 하필 더러운 물그릇 모서리에 맞아 캔이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캔을 떨어뜨렸는데 하필 더러운 물그릇 모서리에 맞아 캔이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배가 많이 고팠던지 허겁지겁 흩어진 것들을 먹기 시작 하는데 이 녀석, 지금 보니 임신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뭔가 느낌이 쎄에~ 해서 카메라를 돌려 액정으로 아이 머리 왼쪽 방향을 보니

아빠 고양이로 추정 되는 담북이, 한 칸 아래 저 뒷쪽 담벼락에는 아기 고양이 까꿍이

내 창에서 더 가까운 턱에는 아빠 고양이로 추정 되는 담북이, 한 칸 아래 저 뒷쪽 담벼락에는 까꿍이. 담북이도 배가 고픈지 지영이가 먹는 모습을 보며 입술을 핥고 있고 저 뒤에 까꿍이는 멀어서 표정은 보이지 않지만 아마도 마징가 귀를 하고 잔뜩 긴장한 모습이리라.

길고양이의 서열은 1. 임신한 암고양이 - 2. 대장 수고양이 - 3. 청소년 아깽이

아 그런데 저 까꿍이 녀석 좀 봐라? 찬물도 아래 위가 있는 법인데 - 길고양이의 서열은 1. 임신한 암고양이 - 2. 대장 수고양이 - 3. 청소년 아깽이. 대략 이런 식이다. 그래서 앉아있는 위치도 담북이가 좀 더 먹을 것에서 가까운 것인데 제 마눌이 밥 드시는 데에 감히 접근 할 엄두를 못내는 아빠 고양이는 붇박힌듯 가만히 있는데 저 찌끄만 것이 잔뜩 몸을 낮추고 살금살금 담벼락을 타고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나름 어찌나 심각하게 살금살금인지 보고 있자니 같잖아서 실소가 저절로 터졌다.

담벼락 위의 고양이 두 마리

그러다 서열 더 높은 즈 애비가 돌아보가 "흡!" 하듯 제 자리에 멈춰 앉는다. 마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는 것 같다.

어미 곁으로 다가가는 아기 고양이

하지만 이 당돌한 아깽이, 즈 애비가 다시 얼굴을 돌리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할 동안 성큼 즈 엄마가 밥 먹는 곳에 한껏 가까워졌다. 바로 며칠 전까지 담장 타는 법, 인간에게 밥 달라고 하는 법 가르치던 어미였으니 새끼가 다가와 같이 밥 먹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여긴 인간 까꿍이 줄 캔을 다시 가지러 자리를 떠났는데 갑자기 "으그그갸갸갸~ " 하는 상당히 위협적인, 길고양이들이 제 밥자리 사수할 때 내는 소리가 들린다.

대치 중인 어미 고양이와 새끼 고양이

잰 걸음으로 돌아와 보니 어미란 것이 제 새끼에게 저따구 무시무시 앙칼진 소리를 내고 있었다. 제가 다시 임신 했으니 그리고 얼마 전에 밥 얻어 먹는 법까지 다 가르쳤으니 이제 네 밥은 네가 알아 챙겨라, 이건 내 거다! 하는 선언인 모양이었다.

제 새끼에게 으르렁거리는 엄마 고양이

아무리 그랬더라도 제 새끼인데 어찌 저럴 수 있을까, 인간은 어안이 벙벙한데

이것이 고양이들의 세상인지 겁이 난 까꿍이, 후다닥 물러나 아쉬운듯 제 어미가 먹는 밥을 돌아본다

이것이 고양이들의 세상인지 겁이 난 까꿍이, 후다닥 물러나 아쉬운듯 제 어미가 먹는 밥을 돌아본다. 

인간 집 방충망에 매달리던 기백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아깽이. 심기일전 되돌아온다

하지만 역시 까꿍이다! 인간 집 방충망에 매달리던 기백이 시퍼렇게 살아있어 심기일전 되돌아 온다,

긴장해서 마징가 귀를 한 아깽이

그리고는 귀가 거의 뒤집어지도록 긴장을 한 채로 제 어미를 건너다 본다.

제 새끼를 위협하는 임신한 어미 고양이

아니나 다를까 어미는 다시 "그르르~으그그~" 그런데 요 까꿍이란 넘 지지 않고 대꾸를 한다. "으께, 께 엣?" 번역 하면 "엄마가 여기서 밥 얻어 먹으라고 해놓고 왜 그래?" 정도일까? - 아이가 다시 쫓겨나기 전에 인간은 재빠르게 준비해 온 캔을 떨어뜨렸다.

캔을 먹는 아깽이

인간도 이 번에는  까꿍이가 한 발도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서 먹을 수 있게 위치를 절묘하게 잘 맞춰 떨어뜨렸다. 

엉뚱하게도 인간이 나서서 즈들 세계의 룰을 깨는 것이 기가 막혔던 것일까 그르르~ 를 멈추고 몹시 의아한 눈빛으로 올려다 보는 어미 고양이 지영여사

엉뚱하게도 인간이 나서서 즈들 세계의 룰을 깨는 것이 기가 막혔던 것일까 그르르~ 를 멈추고 몹시 의아한 눈빛으로 올려다 보는 어미 고양이 지영여사. - 미안하다, 걍 같이 먹어라~

아무리 고양이 세계의 법칙이라도 밥은 인간이 주는 것이니 주는 넘의 힘을 무시할 수 없었던지 이 후로 두 녀석 모두 평화로이 밥을 먹고 입을 씻으며 각자 갈 길로 흩어졌다

아무리 고양이 세계의 법칙이라도 밥은 인간이 주는 것이니 주는 넘의 힘을 무시할 수 없었던지 이 후로 두 녀석 모두 평화로이 밥을 먹고 입을 씻으며 각자 갈 길로 흩어졌는데

저 멀리 소외 된 한 외로운 영혼이 있었으니 까꿍이가 있던 담벼락으로 다시 내려와 "그럼 나는?" 하듯 고개를 갸웃~ 하고 올려다보는 수고양이 담북이. 물론 이 녀석도 늘 결국특식을 먹는 자리에서 캔을 얻어 먹었지만 어미란 것이 제가 다시 임신 했다고 아이를 저렇게 독립시키고 저렇게까지 모질 수도 있구나, 그들의 방식에 적지 않은 충격을 느낀 날이었다. 사진을 다시 보니 지영이의 제 새끼를 향한 "그르르~"가 새삼스레 생생히 귓전에 맴돈다.

ⓒ고양이와 비누바구니 All rights reserved.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