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경험하는 낯설은 풍경

이건 그냥 일기다. 전하고 싶은 메세지도 없고 그냥 오랜만에, 대구에 31번 확진자 소식이 전해지기 이 전부터 두문불출 중이었던 터라(물론 쓰레기 처리 하러 더러 대문까지 내려가기는 했다) 적어도 두 달은 훌쩍 지나 거리에 나섰던 경험이 하 생소하고 신기해서 적어보는 것이다.


어제, 드디어 미루고미루던 택배 보내기를 하려고 단디이 마음 먹고 물건 소독, 상자 만들기 등을 하고 소금님께서 만들어주신 마스크에 필터를 끼우고 그 안에 다시 일반 황사 마스크를 끼고(이 시국에 걸린 감기에서 방금 회복 했기 때문에 겁이 많아졌...) 전화기 돋보기 다 소독이 귀찮아 의도적으로 놔두고 종이에 주소를 옮겨 써 들고 실리콘 장갑 챙겨 길을 나섰다.

택배로 보낸 것은 이것. 경철이? 아니고 경철이가 담긴 바구니[택배로 보낸 것은 이것. 경철이? 아니고 경철이가 담긴 바구니]

걸음을 옮겨보니 하도 오랜만에 나온지라 휘청휘청 발이 허공을 헛딛는듯 느낌이 생소하다. 그런데 저 멀리 마스크를 하지 않은 청년이 온다. 아아, 마스크 안 하는 사람도 있구나며 지나 가는데 본인이 알아서 휘돌아 거리를 더 띄우고 지나간다. 우리나라는 마스크를 안 하면 눈총을 준지 오래 됐지 참!


단추만 꾹꾹 눌러 보내면 되는 엘지편의점에 갔더니 기계가 전면 고장이라 한다. 덴당! 온 만큼 더 가서 세븐 일레븐에 도착하니 어라? 거기는 수기 송장이고 나는 돋보기 없으면 한 글자도 못 쓴다 ㅜ.ㅜ 다행히 염색을 하지 않아 백발 할매의 모습이라 그거 믿고 "돋보기 없쩌여~"를 해보니 나보다 한 연배 위인 것 같은 주인 아저씨가 친절하게도 대신 써 주시는데 또 어라? 10동이라고 적혀있는 걸로 보인다. 요즘 세상에 10동이 어딨노... 아저씨께 그렇게 적혀 있냐고 확인하니 그렇다 하신다.

"아니지 싶은데..."

"전화 해보세요"

"전화기도 없쩌여 ㅜ.ㅜ"

친절한 아저씨, 자신의 전화기를 꺼내 그냥 건네주지 않고 눈 없는 나를 위해 번호까지 눌러 건네주신다.

"안녕하세요, 비누바구니에요"
뜬금 없이 모르는 번호로 전화를 해 이 중 마스크 너머로 둔탁한 말이 건너가니 저 쪽에서는 적잖이 당황 하셨으리라 ㅎ;;

"네?"
"비!누!바!구!니!"라고 버럭버럭.

저쪽은 상냥상냥 서울 말씨를 쓰는데 이쪽은 마스크 낀 둔탁한 경상도 할매 목소리로 버럭버럭하고 있으니 와중에도 적잖이 우스운 상황이다 싶었다. 하지만 내 전화기가 아니어서 서둘러 전화를 끊고.


그런데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눈만 빼꼼 하고 있는 것이 훨씬 더 우습긴 했다. 택배를 부치는 동안 적잖은 손님이 들락거렸는데 하나처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으니. 나는 생전 처음 보는 풍경이라 웃음이 나기도 하면서 언제까지 이래야 하나, 아득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식물 위에 걸쳐놓은 마스크[세탁실 식물 위에 걸쳐놓은 마스크. 마스크는 해 드는데 말리라 했나? 저것은 일회용이 아니므로 버리지도 못하고 일단 최대한 만지지 않고 해 드는 곳에 놓을 수 있는 방법은 저것 밖에 없었다.

돌아오는 길은 내내 오르막, 얼굴이 버얼개지면서 숨이 헐떡헐떡. 마스크를 고리를 잡고 빼서(배운 건 있거등) 손가락에 걸고 느릿느릿 올라오는데 초등학교 앞 피아노교실에서 피아노와 바이올린의 이중주가 들린다. 피아노가 오른손은 트릴을 하고 왼손이 멜로디를 연주하는 부분이었는데 아이고야~ 멜로디는 뒤뚱거리고 트릴 소리만 드립다! (전반적인 수준은 선생님과 그 친구가 하는 듯 꽤 높았지만)  문을 열고 "거기는 일케일케~" 설명하고픈 선생 본능이 불쑥 올라오는 걸 꾹꾹 눌러 참았다.


만일 실행에 옮겼더라면 그 때부터 상당히 맛이 간 오지라퍼 할매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진심으로 고쳐주고 싶었다 힝~


그렇게 돌아오니

우리집 장남 고양이, 한 번 돌아보지도 않는다

우리집 장남 고양이, 한 번 돌아보지도 않는다. 희한한 것이 다른 사람의 움직임이 밖에서 들리면 언제나 사람보다 먼저 반응을 해 의문과 긴장이 뒤섞인 동작을 하는데 집사가 돌아오는 소리는 알아듣는 모양이다.

내 고양이 초코 발바닥

"쩔쭈야 엄마 왔다아~" 해도 늘어뜨리고 있는 초코젤리조차 까딱 않는다. 고양이 삼신! - 하긴 돌아와서 아이들 아는 척하기 전에 손부터 씻고 샤워하는 동안  꽤 시간이 흘렀으니 저러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

집사를 따라다니는 고양이

하지만 이 고양이는 내내 졸졸 따라다니고 있었던 것이 샤워하고 나왔을 때도 얼굴에 뭘 찍어 바를 때도 이런 모습으로 집사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나갔다 온 집사가 반가워서가 아니라 배가 고팠던 것이지만.


아무튼 20분 정도 외출하고 돌아오면서 발이 허공에서 헛디뎌질 것 같은 느낌, 전화에 대고 버럭버럭 한 것, 남에 연주에 불쑥 감 놔라 배 놔라 하고팠던 것, 거리가 휑한 것, 그나마도 서로 멀리 떨어지려는 것 그리고 눈만 빼꼼~ 이런 풍경이 내게는 처음 있는 생소한 것들이라 이렇게 장황하게 할 말도 많을 만큼 살째기 재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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