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이 들었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깨닫는 순간

얼마 전이었다. 청소기를 요란스럽게 돌리는 아침 시간에 전화벨이 울린다. 요즘은 소음이 심한 다른 무엇을 하는 중이면 웬만해서 전화 벨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데 용케도 이번에는 그 소리가 들려 발신자를 보니 모르는 번호다.


하지만 택배 받을 것이 있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통화를 연결,

"여보세요?"

"야~이 니은아! 전화는 왜 이렇게 안 받냐???!!!"

'흡!'

대놓고 화 내는 여성[Bild von Prawny auf Pixabay]

숨이 멎는 동시에 뭐지, 내가 누구에게 뭘 잘못한 일이 있나, 화를 몹시 내는 목소리는 아닌데 날 아는 사람인가, 전화 할 만한 사람 중에 대뜸 이런 단어 선택에 이런 목소리로 말 할 사람은 없는데..??? 멍하고 혼란스러우면서 동시에 사태파악을 하는 동안 저 쪽의 목소리는 계속 된다,

"@##@$$$@는 한다더니 다 했냐?!"

나는 누구에게 '@##@$$$@' 한다고 한 적도 없고 짧은 시간 동안 아무리 기억을 되살려 봐도 아는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다. 파악이 끝나니 이제 겨우 숨이 돌아오고 벌려졌던 입을 움직일 수 있게 됐다. 

 "야, 이 니은아! 너 누구야???!!!"

무엇인가에 열중한 고양이의 놀란듯한 표정[엄니! 바,방금 뭐라고 하셨슈?]

0.1%도 흥분 하지 않고 냉정하게 되받아치는 이 소리에 다시 온 몸이 얼어붙도록 놀란 이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철수도 경철이도 아닌 나 자신이었다. 한 자 한 자 새기듯 아주 야무지고 또록또록한 발음과 악센트를 넣은 낮게 깔린 목소리로 육두문자를 내뱉은 이가 말이다!


"오하하~ 나는 또 내 딸인줄 알고..."

상대는 놀라지도 화 내지도 않고 변명을 시작하는데 나는 더 듣지 않고 끊어버렸다.


그리고는 하루종일 이상한 나라에 와 있는 듯한 묘한 기분, 대놓고 육두문자부터 날리는 사람이나 똑 따낸 듯 그대로 되받아치는 인간이나...

고양이는 세수 중[아이고, 내가 마 챙피해서...]

이 낯설고 스멀스멀 이상한 느낌을 어떻게 표현하고 어떻게 소화할 것인가가 그 후 오랫동안 고민스럽게 머물러 있었는데 그런 욕을 한 것이 부끄러워 그랬냐고...? - 딱히 그런 것 같지는 않은 것이 더 이상하다.

머리 흔드는 하얀 고양이[인간들이란... 절레절레~]

오히려 내 놀라운 순발력이 더 감탄스러울 뿐이었다. 젊었던 때 같았으면 "저저...기, 누, 누구세요?" 하며 말까지 더듬었거나 대놓고 버럭! 했을 것이 뻔한데 시간이 갈수록 "잘 했다, 참 잘 했다"며 찰나의 망설임도 없이 똑같이 "무교양"을 시전할 줄 알게 된 스스로가 기특하다고나 할까, 카타르시스 같은 것을 느낀다는 것이 더 적나라한 표현이겠다.

할머니의 화 난 얼굴[Bild von OpenClipart-Vectors auf Pixabay]

그러면서 동시에 깨닫는 것, 이제 나도 교양이고 나발이고 웬만큼 거추장스러운 것들은 벗어던지고 싶을 만큼 나이가 들었구나... 평생을 교사로 지냈던 울엄니가 퇴직 이 후 어느 부분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단어 선택에서 뭔가 거칠어진 느낌을 받으며 실망에 실망을 거듭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무교양이 바로 늙어가는 과정이었다는 것을 내가 직접 시전 해보고서야 겨우 이해하며 이미 돌아가시고 없는 엄니에게 미안한 마음이 생기게 하는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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