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22일 화요일
이른 시간이지만 일기라는 거 쓰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결국 무엇인가 영양가 없는 말일지라도 늘어놓고 싶다는 뜻일게다.
19일 밤 10시 17분 촬영. 텔레비전과 노트북 불빛만 있는 어둠 속에서 "후아아앍~" 한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양파과자에 대고 저 하얀 고양이가...
원래 이렇게 찍힌 사진인데 RAW파일도 아닌 것을 카메라Raw에 넣어 돌렸다. 일기 쓴다 해놓고 시작부터 횡설수설이다.
과자에 하악질하는 고양이라, 희귀한 장면을 잡아야겠기에 얼른 방에 불을 켜고 구석진 자리에 있던 과자를 방 가운데로 모셔다 놓으니 얼룩 고양이 철수군이 먼저 와 "뭔데, 뭔데"한다. 저 하얀 고양이 어두워서 잘 안 보였을 리는 없고 -고양이는 원래 살짝 어두운 장소에서 시력이 가장 좋다 - "저거였어 쩝!" 하는 듯 보인다.
"그래 이거였어 이눔아!" 그게 그리 거세게 하악질을 할 대상이었는지 확인 하시라고 과자 하나 던져 줬더니 - 고양이가 이 과자를 먹게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양파 과자에다 염분이 강하므로 - 외면.
8월 22일 현재 시각 10시 16분 바깥 기온 28도. 나는 9시부터 에어컨을 돌리고 있다. 그것도 터보로. 눈을 떠 커피를 앉히고 아이들 밥상을 차리는데 "아, 왜 이렇게 피곤하지" 혼잣말이 절로 나온다. 숙취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잠을 덜 잔 것도 아닌데, 날은 또 왜 이리 더운 것이야!
오늘 오전 7시22분, 덥고 짜증스러워도 아침에 꼭 해야하는 일이 있다. 아이들과 아침 인사하고 잠시 놀아주기.
또 옆길로 새는데, 나는 이 카메라가 정말로 싫다. (똑딱이 소니 RX-100 초기 모델이다). 매 컷마다 무엇이 제대로 들어맞지 않는다. 경철이 오랜만에 장난감에 움직이길래 얼른 눌렀더니 셔터속도 160임에도 불구하고 초점이 빗나가 그렇겠지만 이따위로 찍히는 게 백이면 95다. 물론 내 실력 문제가 가장 크겠지만 뭔가 전체적으로 이 카메라는 느리다는 느낌이다, 이 전에 쓰던 싸구려 니콘 쿨픽스가 내 손에는 훨씬 나았다.
어떤 설정을 해도 마음에 안 들어 며칠 전부터는 아예 인텔리젠트 자동이라나 그것에 놓고 눌러대기만 하는데 하여간 카메라가 빠릿빠릿하지 않은 것만은 사실이다.
나는 이 녀석 이런 표정이 정말로 좋다. 정작 내놓고 싶은 말은 따로 있는데 자꾸만 빙빙 도는 이런 심리를 뭐라고 하나...?
어제 저녁에 "스승의 은혜" 모친이 전화를 했다. 나는 이미 그 아이 스승이었던 적이 없는 사람이기로 작정을 했는데 지금 왜? "저... 논문 계획서 말이예요... " 이건 뭔 소리여? "그리고 영문 초록이라는 거..." 이건 또 뭔 소리여?
이렇게 쓰면 전화한 사람이 참 염치 없는 사람 같지만 그건 아니다. "악의"라고는 0.1도 없는 사람에 늘 할 도리 이상을, 능력에 넘치게 하는 사람이다. "스승의 은혜"가 시킨거다. 논문게획서조차도 직접 하기 싫어 또 요술방망이 꺼내 휘두르려는 거다.
눈 뜨자마자 느낀 돌덩이 같은 피곤함, 견딜 수 없는 후텁지근함이 이 때문이었다는 걸 커피 마시며 고양이들과 노닥거리며 깨달았다.
철수 고양이, 침대 위에서 발라당 앵앵거리다 후다닥 창턱으로 뛰어 오른다.
까치가 건너집 옥상 턱에 앉았다. 이 동네는 산이 가까워서일까 새가 유난히 많다.
이렇게 저렇게 내가 알고있는 모든 요령은 다 알려줬지만 "저는 이제 걔 선생 안 할래요, 앞으로 저를 부를 일 있으면 그냥 **씨 하세요."가 내 대답의 요지였다. 요령을 그나마 설명 한 것은 모두 이 엄마 때문. 20년이라는 세월을 버티게 한 원동력도 이 엄마였다. - 사연이 많은 이십 년의 시작이 있었지만 각설 -
있는 논문 들여다보면 아니, 개요만 들여다 봐도 계획서 따위는 저절로 나오는 것 아닌가? 무작정 쓰는 것도 아닌 양식에 따라 쓰면 되는 것인데? 초록과 개요가 같은 개념이라고 '스승의 은혜'에게 벌써 말해주고 적어주기까지 한 지가 언젠데 초록? 논문계획서 못 쓰는 사람이 발표는 우째 한디야?
학위를 버리시든가 따시든가 모른다, 정말로 이제는 내 손에서 떠나보낸 일이다. 접어져 있었으면 좋았을 기억이 전화 한 통으로 되살아나고 그 감정이 고스란히 수면 위로 떠오른다.
난청인 하얀 고양이, 아무리 새소리가 나도 철수처럼 즐길 수가 없다, 안 들리니 보러가지도 못하는 것이다. 철수와 사람, 둘이서 설쳐대면 기껏 이렇게 앉아 "느들 왜 그래?" 할 수 있을 뿐이다.
어제는 이 말도 했다. "20년 동안 스승의 날 한 번도 안 빠지고 챙기더니 졸업연주 끝났다고 어법에도 안 맞는 문자 한 통? 그러니 결국은 이십 년 동안 진심이 아니라 목적이 있는 알랑방귀였던 게야." 뒷모습이 이래 갖고서야, 그것도 나를 발판으로 내디뎌야 할 걸음이 아직은 진행 중이었는데... 아, 이 말도 했다, '당신이나 나나 이제는 뭘 덜 해줘 저럴까 죄책감 느낄 일은 없다'고
그랬다. 이제 마지막 사진도올렸으니 그만 하자. 에어컨 때문에 추워지는데 창문을 열 수 있는 정신 상태가 아니다. 밖에서 들어오는 어떤 소리도, 매미소리 새소리 자동차 소리 그리고 그 중 최고는 사람 소리. 사람 소리 중에 최고는 재채기 소리 가래침 뱉는 소리. 그런데 우리나라, 진짜로 너무너무 시끄럽다...
그런데 정말 우스운 것은 그 '스승의 은혜' 문자가 어법에라도 맞았더라면 "싸가지 없는 인간"정도로 욕하고 잊었을 법 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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