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그치면 황사가 극성을 부릴 거라던 예보와는 달리 하늘이 말갛게 개어 햇빛마저 더없이 쨍쨍하다 (물론 가시감만 그랬다)
캣타워 꼭대기에서 아침 식 후 해바라기를 하는 하얀 고양이, 바람도 불지 않는데 햇빛에서 늦은 봄 향기라도 실려오나 벌름벌름 댕댕이처럼 냄새를 맡는다
마따따비처럼 강렬한 폭풍은 아니지만금새 햇살 또한 고양이에게 부드러운 마약과도 같은 것, 좀 전에 자고 일어난 고양이가 마약에 취해 다시 꼬박꼬박 졸음에 빠져든다 - 자는 아이는 내버려 두고 "철수야, 머리 빗자"
며칠 전 사은품으로 받은 그루밍 장갑이다 - 이걸 손에 끼고 슥슥~ 쓸어주니 털이 수울술 잘도 모인다
우리집 고양이 형제도 이 장갑으로 그루밍 해주는 걸 몹시나 좋아해서 철수는 아예 발라당을 하고 마따따비에 홀릭 됐을 때처럼 장갑을 물어뜯으며 고로롱송을 부른다. 졸고 있던 경철 고양이도 빗질 하는 걸 귀신 같이 알아차리고 내려와 합류하고
이제 그 동안 쓰던 솔로 마무리만 하면 되는데 이 녀석은 며칠 전부터 이 단계에서 캣타워로 훌쩍 뛰어올라가 햇살을 받으며 서비스 받기를 즐기신다. 정말 기분이 좋을 때 나오는 경철 특유의 포즈 - 완전히 (자빠져)누워 세상을 거꾸로 보기
머리를 완전히 바구니 밖으로 떨어뜨려 이 쪽 봤다~
저 쪽 봤다~ (그런데 이 움직임, 어쩐지 엄청난 복근 운동의 스킬이 들어 있는 것 아닌가 싶다?) - 그런데 이 고양이, 같이 살아 볼수록 엽기스러운 것이 이 때 코뽀뽀 하자길래 코 대주면 머리 냄새 좀 맡자 한다. 그래서 머리 대주면 몇 번 킁킁 하다가 두 손으로 막 스크래칭을 한다, 내 머리카락에 대고 말이다 ㅜ.ㅜ '할망구야, 냄새난다 머리 좀 잘 감아라'인가?
뒤집뒤집, 고롱고롱 - 하얀 털 위로 반사되는 투명한 햇빛이 현실감을 잃을 만큼 환상적이다. 아아~ 그러나 그림에는 보이지 않지만 집사 노비는 끊임없이 빗질 중이다, 멈추면 뒤집뒤집도 멈추기 때문에 --;;
그러다 반짝 각성하는 듯 햇빛 같은 표정을 짓는다 - 사실은 사진 찍으며 빗질 하느라 배를 좀 마음에 안 들게 쓸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집사는 한 편 "휴우, 다행이다"한다, 왜냐하면 저 뚱뚱한 고양이가 좁은 캣타워 위에서 뒤집뒤집 하다가 바구니가 무게중심을 잃고 뒤집어질 뻔하는 일이 꽤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다시 뒤집뒤집 고로롱을 시작하던 찰나
캣타워 아래에 나타난 어두운 그림자 - 집사가 하얀 고양이와 햇빛의 장면에 너무 오래 빠져 있었던 모양이다
집사는 잊고 있었던 넘에게 미안해 땀이 삐질 하는데 하얀 고양이는 완전 방해 받았다는듯 눈을 내리깔고 새치름한 표정을 짓는다 - 너 그러다 아무래도 한 대 맞지...
모든 것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철수 손만 알고 있다
그리고 다시 찾아 온 햇빛 아래 포근한 평화 - 그래, 봄날의 불금에는 고양이와 햇빛이나 한 모금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