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고양이, 졸려 죽겠지만 집사가 뭐하는지 감시를 게을리 할수는 없으므로 마음 편히 잠자리에 들 수는 없다.
그러니 집사가 바라보이는 피아노 위에서 꾸벅꾸벅 졸게 됐는데~ 안 들리는 대신 미세한 진동에도 몹시 민감하게 반응하시는 경철 고양이,
"응, 이게 뭐지?" 깜짝 놀라 달콤한 졸음에서 깨어났다 - 이렇게 경철 고양이의 휴식을 방해한 것은
방바닥에서 놀던 철수 고양이가 하필 경철이 자리잡은 피아노와 의자 사이의 좁은 틈으로 끼어들면서 미세하게 - 소리 따위는 하나도 안 났음 - 피아노 몸체를 건드렸기 때문인데
"어떤 눔이 감히 잠 자는 백사자의 코털을 건드리는 것이냐?!" 분기탱천 발걸음을 옮겨
"야! 얼룩괭이 니 짓이야???" 들여다 보이지도 않는 위치인데 기가 막히게 진원지를 알아내고 솜방망이질을 한다. 이 때만해도 철수 고양이 '이거 뭐야?'하는 표정이더니 솜방망이질이 서너 번 반복되자
어라라? 순식간에 완전 쫄아들어 아직 덜 올라간 다리마저도 어정쩡 올라가려던 자세 그대로 걸쳐져 있다.
천하의 호랑이가 피아노 찌끔 건드렸다는 죄로 이토록이나 쫄아야 하나??? '아, 미안타, 계속 자구라' 하고 가볍게 넘기면 될 것을... 하는 게 집사 생각인데
"뭔데... 그만한 일로 니 꼭 이캐야 하나?" 역시나 억울한 눈빛을 보내는 철수 고양이와 "그럼! 겨우 잠 들었는데 하룻괭이가 잠 자는 백사자 코털을 건드려 시캬?!" 하는 듯 참으로 엄한 표정과 단호한 자세로 딱! 버티고 앉은 하얀 고양이 아니, 잠 자던 백사자! "긍까, 거어 가마이 낑기이 있어라, 꼼짝만 하믄 아조 죽여불라니!!!"
"얌마, 꼼딱 말고 거어 처박혀 있으라 캤재!" "아, 아랐따..."
"아, 진짜... 그게 그렇게 큰 잘못이었구나..." 사람도 둘만 있을 때는 목소리 크고 힘 센 넘이 이기는 법, 쌈박질이라면 일가견 있는 철수 고양이 좁고 낮은 곳에 겨우 낑겨 있는데 솜방망이까지 연타로 들어오니 진심 자신이 뭔가 잘못해 당하는구나 수긍하는 듯한 눈빛이다 "허억! 내가 우짜다 이런 신세가 된 것이야...?"
"나가자, 내가 암만 죽을 죄를 지었기로서니 이래 처박히 있을 수는 엄따..." 보고 있는 인간, 참말로 기가 막힌다. 살짝 잠 좀 깨웠기로서니 벌떡 일어나 솜방망이 휘두르는 놈이나 그거 무섭다고 콕! 낑겨서 오금을 못 피고 저렇게 슬금슬금 굴욕적인 자세로 기는 놈이나.
"내가 진짜 죽을 죄를 짓는갑다..." 철수 고양이, 엉금엉금 구사일생 빠져 나왔는데 어라, 저 표정 봐라!? 인간의 관점으로는 암만 봐도 별 잘못한 것 없는 얼룩괭이, 두 손 다소곳이 모으고 석고대죄 모드
반면에 하얀 고양이는, "잘 해라, 내 지키보고 있다이!!!" - 이 후로도 철수는 한참을 안절부절, 괜히 바닥을 킁킁대며 뱅뱅돌고 소위 백사자님은 저 포스 넘치는 눈빛을 계속 쏘고 계셨으니 이런 상황이 진정 하룻괭이 잠 자는 백사자의 코털을 건드린 것이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