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에 길고양이에게 생길 수 있는 일 - 짓밟힌 밥그릇

그 해2012년은 대구에는 이례적으로 눈이 많이 오신 축복의 화이트 크리스마스였다. 집집마다 담장에 쓸어모은 눈을 2,30센티씩 쌓아 놓는 게 자연스런 풍경이었는데 중국집에서 눈을 치워 쌓아놓은 자리가 하필 바깥 고양이들 밥자리라 어제 딱 하루, 딱 한 뼘 다른 자리로 꺼내 놓았는데 그곳이 하필 교회 주차장 자리였다.

 

애초에 중국집 총각이 거기는 교회 땅이니 모서리를 돌지말고 놓으라 했거늘 이 할망구가 아이들이 눈을 밟고 서서 먹을 일이 끔찍해서... 사실 이틀간 아이들이 눈 위에 서서 먹기도 했지만 눈이 얼음으로 변하니 딱 하루만! 이런 것이었다.

누군가 짓밟은 길고양이 밥그릇

잠시 현금자판기에 갈 일이 있어 겉옷만 걸치고 집을 나선 참에 중국집 앞 밥자리를 살펴 봤다. 이것이 웬일인가, 그릇이 걷어차인듯 표시한 곳에 엎어져 방한화 발로 납작 밟혀져 발자국까지 찍혀있고 사료는 사진에 찍힌 모양 그대로...

 

'나섰으니 돈 사서 오는 길에 치우자...' 일 분 정도 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의 현금자판기에 다녀오면서 '교회 아니냐... 더구나 성탄절인데, 살살 밀어 제 땅에서 치운 것도 아니고 걷어차서 짓뭉개...?' 이러며 청소도구 가지러 들어오기 전에 다시 한 번 살펴보니 어라?

내팽개쳐진 길고양이 밥

짓밟힌 밥그릇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청소도구를 가져와서 다시 살펴도 없다, 아까 나가는 길에 분명히 그렇게 널부러져 있었는데, 그 옆에 같이 엎어져 있는 커피컵은 그대로 있는데... 아까 미리 찍었어야 하는데 나는 왜 핸드폰조차도 가지고 다니지 않는 인간일까.

 

누군가가 틀림없이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 밥그릇이 내 것이라는 걸 아는 사람이고  내가 뭐랄까 신경이 쓰이지 않는 사람도 아니다... 교회?, 중국집 총각 중 하나? 그도 저도 아니면 또 지하집 할미? 어느 인간이든, 오늘은 성탄절이란다, 이 육실헐, 짐승만도 못한 인간아!!! 안 주던 밥도 줘야 옳을 날이거늘... 사료가 눈 사이사이에 박혀 깨끗이 쓸어지지도 않았다

이리저리 흩뿌려진 고양이 밥을 눈덩이와 함께 쓸어 대충 치우고 들어오는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더라, 성탄절인데, 성탄절인데...

두 발로 선 하얀 고양이

<신이시여, 성탄절에 어찌 이런 일이!?>

나중에 들은 이야긴데 교회 바로 옆에도 캣맘이 한 분 계셔서 교회와 맞닿은 캣맘 당신에 담장 아래에 고양이 밥을 놓아도 목사님께서 제발 괭이 밥 좀 놓지 마시라고 여러 번, 아주 여러 번 말다툼이 있었다 한다 - 해당 캣맘이 직접 전한 말이라... 아, 성탄절 그 일도 그거였구나 그냥 그리 짐작했다

처음 보는 길고양이

<그 날 밤 새로 내놓은 밥에 제일 먼저 입을 대는 처음 보는 아이>

 

마음 상하다 못해 되려 고양이들까지 원망스러워지던 날이었다 - 제 때 제 때 좀 먹어 치우지, 집으로 들어와서들 좀 먹지... 오만 원망이 다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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