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있어 참 좋았다

오늘 아침, 언니와 짧게 통화하면서 Wien에서 돌아올 당시에 내가 겪었던 역시 Sociopath와 관련된 이야기에 잠시 그 시절 생각이 났다. - 그때 내게는 참 좋은 친구들이 있었다.

[그리운 남사친 - 네가 있어 참 좋았다]

크리스티안, 역시 피아노를 공부하던 나보다 6살 어린 친구였는데 다른 선생님 반이었지만 이론 수업에서 일 년 이상 마주치면서 혼자 반해 있다가 어느 날 용기를 내 말을 걸었는데 알고 보니 아주 오랫동안 여친과 살고 있는 중이어서 그야말로 헛물만 켰지만 돌아오는 그 날까지 좋은, 아주 좋은 친구로 남았고 아직도 내 기억에 가장 진실한 우정을 나눴던 존재로 남아있다.

 

이 친구는 예컨데 남들이 아무도 하지 못하는 지적질을 듣는 내가 전혀 기분 나쁘지 않게, 하지만 뭔가 눈이 확! 떠지는 기분이 들게 하는 기술이 있었는데 "너 대체로 너무 표면적이야"라고 했던 지적이 가장 마음에 남는다. 뭐 길게 말할 것도 없다, 이 전까지 나는 집구석에서 보고 배운 대로 내내 징징대는 스타일이었지 스스로를 깊게 들여다보고 자신을 객관화하는 법이 전혀 없었던 있간이었는데 그때 이 짧은 한 마디에 "아!" 했고 이때부터 나는 내면적으로 서서히 성장을 시작했다.

 

위 그림은 (내 눈엔) 너무나 잘 생긴 아이가 늘 더벅 바가지 머리를 하고 다녀 "야 (Du), 너 오늘 머리카락 확 좀 걷어올려보자" 해서 무스를 잔뜩 발라 올백을 시켜놓으니 어찌나 못났던지 "너 진짜 못 생겼구나?!" 했더니 "몰랐어?" 하며 킬킬대다가 못난이 인증샷을 찍은 것이다.

위에서 'Du'에다 강조를 한 것은 우리 둘이 서로 "너, 너" 하는 것이 유난히 정답고 친밀하게 들려 부러울 정도라는 한 한국인의 코멘트가 우리의 우정을 가장 잘 표현한 것으로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어서이다.

[이 떡을 할 자슥은 저 자세로 곁눈 한번 안 주고 저 책을 끝까지 다 읽고갔다 - 너도 있어 참 좋았다]

이 친구 이름은 말하기 싫다. 이미 이 세상에 없다... 아무튼 이 친구가 결혼 하자고 하면 하고 싶었던 내 생에 유일한 존재였는데 초기에 내 실수가 좀 있어 (나는 바람기가 많았다) 여친으로서의 신뢰는 잃었지만 Wien 생활 2년째부터 돌아오는 그날까지, 8년 동안 한결같이 곁을 지켜준 친구였다. - 이 인간 덕에 나는 강제로 냥집사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Wien 생활의 2/3를 나는 고학으로 청소부며 서빙이며 등을 하며 생활비를 벌어 공부 했는데 그때 그런 일들 모두 접고 피아노 레슨 만으로 생계를 이어갈 수 있게 용기와 방법을 가르쳐 주었고 한국에서 생활비 받은 흔적이 없어 비자를 받을 수 없게 됐을 때 자신의 돈을 (1990년대 당시 우리나라 돈 500만 원) 내 통장으로 빌려주어(받은 흔적이 없으면 잔고라도 일정 금액 이상 있어야 했다) 비자를 받게 해주기도 했고 성적증명서를 떼어 변호사를 붙여 "이런 성적인데 왜 비자를 안 주니?"라고 해서 또 받게 해 주기도 한 고마운 친구였다.  끝까지 애인도 아니면서 애인 같은, 남사친도 아니면서 남사친 같은 사이를 유지했던 우리는 참으로 물음표가 가득한 사이였다.

[Wien의 내 마지막 집 1]

이 두 사람의 기억과 추억이 가장 깊고 진하게 남아있는 곳이 내가 살았던 마지막 이 집이다. 이 집에서 역시 악연인 혈육이 연결해 준 사람과의 일로 사람이 겪지 못할 일도 겪었지만 이 외에 여기서 나는 가장 행복했고 "지금이 내가 가장 행복한 때"라는 것을 확실하게 인식하고 있기도 했었다.

사족 : 저 의자와 테이블, 그리고 그 뒤에 보이는 노란 상자 등은 내가 냅킨아트(?)로 만든 것인데 이것이 친구들에게 대히트를 쳐서 돌아올 때는 프랑스 친구 가족이 몽땅 다 가져갔다 ㅎ~ 당시로서는 일반 냅킨의 몇 배 가격이었던 "디자이너스 길드"의 제품이었는데 돌아와서 해외직구라도 하려고 아무리 찾아봐도 패브릭 등등은 여전히 판매되는데 냅킨만 사라지고 없더라... 진한 아쉬움. 저 냅킨 진짜로 멋있었음

[Wien의 내 마지막 집  2]

이 집에서 나는 Wien 생활을 끝내고 돌아오게 되었는데 사진 왼쪽으로 보이는 저 악보전집을 하나도 가져오지 못하고 크리스티안과 또 다른 피아노 하는 친구 페터에게 선물로 주고 나는 속옷 한 장 챙기지 못하고 (다른 책들 챙겨 오느라) 빈 손으로 돌아오게 된다 - 이제는 돌아가야겠다고 연락을 하니 비행기표를 프랑크푸르트에서 출발하는 걸로 날짜, 시간 지정해서 달랑 한 장 보내주고 내 물건들을 되보낼 비용이나 전화요금 등을 정산할 비용도 보내주지 않아 그야말로 울며불며 친구들의 도움으로 정리를 하고 눈 내리는 첫새벽에 기차를 타고 9시간 만에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해 다시 8시간 기다려 한국행 비행기를 탔었다. 도착하니 "커피도 하나 안 사 왔어?" 하더라...

 

나중에 엄니의 이야기를 들으니 내가 이미 비행기를 탄 다음에 내가 돌아온다고 알려주더라는 것... 내가 돌아온다고 거짓말을 하고 돈을 뜯어낼 심산으로 그랬다고 없는 죄를 만들어 덮어 씌운 사람이 있었는데,

[화목난로를 때면 집 안으로 연기가 모두 역류했다]

이 전 집에서 방세를 나눠내던 룸메이트가 없어지면서 세를 감당하기 어렵고 여러 가지로 지치기도 해서 이제 그만 갈란다, 해서 한국에서 150만 원 정도를 전해 받아 짐을 모두 쌌던 찰나, 이제 그만 오라고 하니 내게 피아노를 배우던 한 친구가 자기가 유산으로 받은 이런 집이 있는데 열악하지만 거기라도 갈래? 해서 싸 두었던 짐을 크리스티안이 자동차로 6번이나 왕복을 하며 고스란히 옮겨주어 다시 눌러앉게 되었었다. 그리고 집이라는 곳에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이미 나는 "사기 쳐서 집에서 돈 뜯어내는 범죄자"가 되어있었고 그런 연유로 내가 진짜로 돌아올 때 "니 양치기 소년 피터다, 아나?!"며 전화기 너머 일갈하던 목소리가 생생하다. 그 때라도 인연을 끊었어야 했는데... 

 

아무튼 내게도 좋은 인연이 있었고 그리운 사람들도 있구나, 늘 불행했던 것만은 아니구나, 감사하고 그리운 친구들과 시절... 네가 있어 참 좋았다... 

 

이 할망구나 낯술 했나, 와 이카노~ 하시겠지만 낯술 안 했고 정신 말짱함. 어쩌면 살아남기 위해 내 무의식이 이런 힐링이 되는 기억들을 슬그머니 꺼내놓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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