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 뜨면 밥 먹은 후 이런저런 영양제를 먹고 양치질을 하는 것이 우리 고양이 형제의 일과다. 정기적으로 이 짓을 시작한 지도 병원약 포함 1년 하고도 몇 달이 넘어가는데 우리집 고양이 형제는 아직도 이 일이 견디기 어려운 것인지, 아니 어쩌면 나날이 더 싫어하는 것 같은 느낌마저 주는데...
약을 가지고 들어오니 대장 고양이는 하필 달아나기 좋은 위치에 있었던 행운(?)으로 마징가 귀를 만드는 즉시 0.1초의 숙고도 없이 침대 아래의 숨숨상자로 단숨에 뛰어들었다.
다행히 이 녀석은 나른하니 침대 위에 엎드려 있다가
"어, 약 갖고 왔나?" 호다닥! 뚱뚱한 것이 얼마나 행동은 잽싼지 억지로 잡으면 꼬랑지 정도는 잡을 수 있었겠지만 마침 카메라도 들고 있었고 위험한 짓은 말자는 판단 하에 내버려뒀더니
침대 아래 숨숨집이라고 마련한 박스에 통 잘 들어가지 않던 이 하얀 고양이가, 게다가 제 형이 먼저 도망 가있어 자리도 엄청 좁을텐데 아랑곳없이 제 뚱뚱한 몸을 구겨넣고 한 쪽 눈만 빼꼼~
늘 말 하지만 고양이는 무슨 짓을 해도 예술이다. 숨어 있는 모습까지 어쩌면 이렇게 귀엽고 예쁜지~~ 오른쪽으로는 상자가 비어 있을텐데 왜 하필 거기는 비워두고 꼭 얼굴을 억지로 내놓고 요렇게 예쁜 짓을 하느냐고오~
하지만 하얀 고양이의 귀여움에 취해 집사가 잊어버린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대장 고양이!
경철의 상태나 철수 고양이의 표정 그리고 박스의 크기로 봤을 때 분명 숨통이 막히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 약 먹는 것은 숨 막히는 것보다 더 싫었던가 눈을 껌뻑거려가며 숨을 참는 것이 역력한 표정으로 꿋꿋이 버티고 있다.
대장 고양이 입장을 고려해 두 녀석이 잠시 자리 정리할 시간을 주려고 천천히 방향을 바꿔 측면에서 촬영을 시도하니 푸히힛! 이 녀석은 도주에 성공했다고 느꼈는지 이렇게 예쁜 짓을 하고 있다.
어느 새 서로 반반씩 자리를 나눠 않은 모양인가? 이 넘들은 무엇을 해도 그냥 인형각이다!
집사가 상자를 끌어내지 않고 사진만 찍고 있으니 하얀 고양이는 이제 제법 안심한 눈치인데 걱정은 저 위에 흐릿한 그림자로 철수고양이다. 박스 내부 사정을 자세히 알 수는 없으나 9kg이 넘는 저 허연 방뎅이가 들어가 있으니 역시 7kg이 넘는 철수 고양이가 편안히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니까 말이다.
철수 고양이, 도저히 못 참겠던 모양이다. "야, 좀 비켜봐!" 하더니
대장 고양이답게 의연한 표정으로 걸어나왔다. "아고 우리 쩔쭈 나와쪄여~ 약 먹으까아?" 하니
집사의 말이 화근이었을까 "아, 맞다. 나 진짜로 약 먹기 싫어!" 하듯 침대 아래로 되돌아들어간다.
그러다가 허연 방뎅이가 박스를 온통 차지하고 있다는 걸 문득 깨달았는지 모든 것을 포기한 표정으로, 이 역시 침대 아래용 바구니이나 집사가 사진 찍는다고 옆으로 밀어 반 넘어 침대 바깥으로 나온 바구니에 그만 주저 앉고 만다. 대장 고양이답게 어차피 맞을 매라면 빨리 맞고 끝내자고 생각한 모양이다. 똑똑하고 기특한 거엇!
행사는 끝이 나고 다시 평화가 강림 했다. 이렇게나 싫어하는데 아침마다 먹는 약도 저녁마다 먹는 유산균도 눈에 띄게 큰 도움은 되지 않는 것 같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도 문득문득 들지만 아이들 나이가 있으니 만큼, 그리고 탈모니 귓병이니가 아직도 그 자리에 도사리고 있으니 만큼 한 순간의 감정으로 쉽게 그만 둘 수도 없는 일이다.
[엄니, 나 경철이한테 깔려 죽을 뻔 해쩌여~]
어쨌거나 9kg짜리 방뎅이에 압사 당할 뻔했던 대장 고양이에게도 평화가 찾아왔다. 그래... 우리 이렇게 좀만 더 힘 내며 견뎌 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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