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가만히 있어, 다 내가 해줄게~

어쩌다 제일 먼저 올린 게 집사 손이 되고 말았다. 아침에 고양이 형제 화장실 청소를 하다 똥삽 잡은 새끼 손가락 쪽 측면이 상당히 쓰라려 살펴보니 그 쪽 뿐만이 아니라 손 전체가 만신창이가 돼 있었다.

고양이가 할퀸 집사의 손

손등 따위는 가히 말 할 것도 없지만 약 먹이거나 귀청소를 피할 수 없는 냥집사들에게는 흔하디 흔한 일이니 새삼스레 손바닥 뒤집어가며 더 보여드릴 필요도 없다. 그런데 대부분의 냥집사들은 이런 걸 특별히 아프지 않으면 의식조차 않고(못하고) 산다.

고양이 형제의 처연해 보이는 뒷모습

고양이 형제의 뒷모습이 처연해 보인다. 경철 고양이가 넥카라를 하고 있어서 더 그런 것이려니.

사진 찍는 기색을 느꼈는지 뒤돌아 보는 고양이

사진 찍는 기색을 느꼈는지 뒤돌아 보는 맴찢 내 고양이...

고양이 귀청소

이제 약 먹이는 일에는 고수가 돼 그냥 껴안고 단번에 투척, 끝!이지만 경철 고양이의 귀청소를 하려면 넥카라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고도 손 꼬라지가 맨 위에 저 그림처럼 되는 것은 일부러 긴소매 옷을 입어도 피할 수가 없다. 

여기서 잠깐!

면봉, 가늘은 것은 갓난아기 전용, 굵은 것은 반려동물 전용으로 낭창낭창 휘어지는 것이라서 사람용 나무 면봉과는 다르다. 내가 저것을 쓰는 이유는 경철의 귓바퀴가 이개혈종 수술로 쭈글쭈글해져 그 주름 사이에 끼인 귀지를 닦아내려면 면패드로는 어렵기 때문이다. 나는 저것에 병원에서 쓰는 연분홍색 소독약을 묻혀 닦아내는데 그것도 독하다고 우리 쌤은 식염수를 더 권장 하신다. (귀세정제 사용에 신중 하시라는 뜻이다)


이 이야기는 귀청소 이야기 때마다 하는 것이지만  사람용 마른 면봉으로 개, 고양이 귀를 청소 하시면 상처가 나 귀 상태가 더욱 악화 될 수 있으니 집사님들은 반드시 주의를 기울이시라고, 혹 저 사진만 대충 보고 따라 하시는 분 계실까봐 매 번 새삼스레 당부를 드린다.

기분이 상해 동굴에 숨은 고양이[경철 고양이는 귀청소를 하고 나면 어김없이 엄청나게 기분이 상해 바구니 동굴 끝까지 기어들어가 하루종일 꼼짝을 않는다. 밥도 안 먹고 화장실도 안 간다]

경철의 귀 상태는 저 위의 그림에 보이다시피 나아지지도 심해지지도 않고 있다. 우리의 의사쌤은 집사가 느끼기에 다른 치료방법이 없는 것 같아 병원을 바꿔야 하나 고민도 했다가 그것도 여의치 않아 여기저기 고양이 카페 등에 알아보지만 모두들 귀약을 쓴다는 말 뿐.


나는 귀약은 쓰고 싶지 않다 - 경철의 이개혈종이 결정적으로 귀약을 쓴 후, 미쳐 발광 한 다음에 생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은 병원약을 쓰지 않고 보조제(영양제?) 등으로 어떻게든 해결이 되려나 이런저런 시도를 하고 있는데 이것은 시행착오도 겪었고 아직 결론까지 간 단계가 아니어서 자세한 언급은 뒤로 미룬다.

밥을 거부하는 고양이

그렇게 귀청소를 당한 경철 고양이, 제 마음이 풀릴 때까지 한참 그냥 두었다가 밥 위에 제가 좋아하는 동결건조 생선을 올려주니 "그래도 난 안 먹을란다!"라는듯 입술을 앙 다물고 집사의 시선을 피한다. 이럴 때는 집사가 앞에 지키고 있으면 안 된다. 

밥 먹는 고양이

찢겨져 쓰라린 손으로 똥삽질을 하고 오니 어느 새 냠냠찹찹~

밥을 싹 다 먹어치운 고양이

그래서 일부러 자리를 피해 또 무엇인가를 하고 돌아와보니 그릇을 싹 비우셨다. 먹어주시면 괜찮은 것이다. 저 표정 봐라 "난 한 입도 안 댔소!"


이렇게 귀청소 등으로 한 번 토라지면 집사 눈 앞에서는 온종일 동굴 밖으로 안 나오기 때문에 화장실은 잘 가고 있나, 물은 얼마나 마셨나 다음 날은 화장실에서 반드시 감자 갯수를 센다. 하루에 6개가 나오면 정상이다. 긴 감자 3개는 철수 것, 동그란 감자 3개는 경철이 것으로 저러고 있어도 집사가 안 보는 사이에 저 할 것 다 하니 다른 이상은 없다는 뜻이므로 고마울 따름이다.

식후 그루밍을 하는 고양이

사진을 찍고 있자니 식후 그루밍을 하시는데 그 중 한 장면이 영락없이  집사에게 감자 한 방 거하게 먹이는 포즈로 보인다. 아이들 이런저런 잡병에나 시달리게 하는 무능한 집사, 감자 한 방 크게 먹어도 뭐라 할 말 없다는 것이 진정한 양심의 소리다.

집사 다리에 기대앉은 고양이

한편, 집사가 하는 일에는 웬만하면 그리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는 우리의 통 큰 대장 고양이, 약 먹을 것 다 먹고 양치질까지 마친 밤 시간에는 이렇게 TV 보는 집사 다리에 기대앉아 고로롱거리다가

애교 부리는 고양이

집사가 저한테 관심을 준다는 느낌만 들어도 요래요래 애교를 부려대지만

해먹 안에서 집사를 쳐다보는 고양이

날이 새고 아침밥 먹고 나면 그릇도 채 비우지 않고 재빠르게 "님은 먼 곳에~~" 위 그림과는 전혀 다른 고양이가 된다. 이 녀석도 매일 3~4 캡슐의 약을 먹기 때문에 웬만하면 여기서 종일 내려오지 않는다. 하지만 집사도 신공이 늘어 저렇게 들어가 계셔도 약 정도는 얼마든지 먹일 수 있다고 그저께 꼭지에 적었지 싶으다. ㅎ~

해먹에서 그루밍 하는 고양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고양이가 내려오지 않는 또다른 이유는 탈모 있는 배에 그루밍을 집사 간섭 받지 않고 마음껏 하고 싶어서이다.


고양이들의 행동과 존재 자체만 보면 그것은 우아하고 평화롭고 게다가 귀엽기까지 한 물 위에서 보는 백조의 호수, 하지만 집사의 손과 마음(그리고 지갑)은 치열하게 두 발로 노를 젓는 물 아래, 도대체 언제까지...? 때로는 너무 힘이 들어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느들은 무조건 건강하고 행복해야 하니까 우아하고 평화롭게 그렇게 가만히 있기만 하면 돼, 뭔가 좀 밑지는 느낌이긴 해도 물 아래에서의 발길질은 집사가 다 할게~ 그러니까 더 나빠지지만 말고 가만히 그대로 있기만 하길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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