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 고양이의 탈모는 증상이 경철 고양이 귓병 만큼 절박하지는 않아서 유산균만으로 버텨 보려고 약을 끊은지 2, 3주가 넘은 것 같다.
하지만 확실히 병원약의 효과가 떨어지니 다시 그 부분을 그루밍하지 시작했다고 며칠 전에도 썼는데, 요즘은 집사 손 닿는 곳에서 그루밍을 하면 하다못해 리모컨이라도 안겨서 못하게 방해를 하니 머리 하나는 기가 막히게 돌아가는 이 고양이, 감히 집사가 근접 못하는 해먹 안에서 그루밍을 시전 하신다.
그러다 집사와 눈이 딱! 마주쳤다.
"헉!"
저 표정 봐라, 하면 안 되는 짓이 뭔지 멀쩡하게 다 알고 있는 넘이다.
그러더니 일 초도 지체없이, 그러나 암것도 모른다는 듯한 동작으로 슬그머니, 여유롭게 고개를 돌려
벗겨진 배를 다 드러내며 일어서서 문턱 위를 탁탁 더듬으며 사냥을 하시는데, 하이고오~ 까딱하면 속을 뻔했다. 점 같이 작은 날파리라도 있나 아무리 살펴봐도 아무 것도 없다.
제법 한참 동안 사냥 연기를 하시더니 서 있는 위치가 위치인지라 불편했던지 슬그머니 내려 앉는다. "철수! 배에 그루밍 하면 안 돼!" 집사가 일갈한다.
무엇 하는지 보려고 등 돌리고 앉은 녀석 정면으로 가보니 "그루밍 안해요, 내 손을 보시오 이러고 있는데 어떻게?"
그래도 집사가 지키고 서서 눈을 떼지 않자 정말이지 그루밍 할 마음 눈꼽만치도 없다는 걸 확신 시키고 싶었는지 "어? 집사, 저건 뭐지?" 하는 표정을 만들더니
고개를 쭈욱~ 빼서 집사 머리 뒤를 넘어다 본다. 마치 그루밍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무엇 대단한 볼거리라도 발견한 것처럼 말이다. 집사 머리 너머로는 별 다를 것 없는 일상이 화석처럼 박혀 있는데 말이다.
알 것 다 아는 시근이 멀쩡한 이 고양이, 집사가 물러설 때까지 이렇게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자신은 절대로 그루밍할 수 없는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무엇 심히 볼거리가 있어 몰두한 듯한 연기를 계속 하셨다.
집사가 자리를 뜨고 정말 그루밍을 안 했는가 하면 아니다. 저 할 만큼 실컷 하고 저기서 내려오시디라... --;;
경철 고양이는 식이요법 시작하고 어쩐지 살이 쪼옥 빠진 느낌이다. 이제 사냥놀이도 웬만하면 시들하고, 세상 낙이 없는 표정으로 앉았길래
사이키 조명이 사람 기분도 들썩거리게 하는데, 고양이에게도 컬러 테라피가 있는 만큼 기분이라도 좀 나아지라고 켜 줬더니 "니는 이게 재밌나?"란 표정으로 집사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한참을 앉았더라...
이제 두 녀석 모두 뭔가 집사 머리 꼭대기에서 노는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들면서 고양이도 9년쯤 묵으니 꼬리가 아홉 개 달린 여우가 되는구나, 실감하는 나날이다.
ⓒ고양이와 비누바구니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