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형제의 식이요법을 시작하고부터 집사와 이들은 먹을 것 앞에서 내내 대치 중이라고 해야하나, 그런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아침에 고명 얹은 사료 몇 알씩 핥아 먹고
충분히 배가 고플 때가 됐다 싶을 때쯤 습식에 각 묘가 좋아하는 고명 듬뿍 얹어 대령했더니 두 녀석 모두 정말이지 고명만 핥핥하고 자리를 떠났고 그나마 먹어주던 곤충츄르는 어제 유산균을 섞어주는 실수를 하는 바람에 이 후로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렇게 종일 굶다시피 하고 한 녀석은 제 바구니에 편히 누운 것도 아니고 세상근심 다 짊어진듯 한 팔을 저렇게 걸치고 쪽잠을 자고 있고
다른 한 녀석도 집사 무릎 아래 와 있기는 하지만 세상 즐거움 눈꼽만치도 없는 표정이다.
배 고파 죽겠으면 먹겠지. 집사는 그야말로 전투적인 심정이 돼 요즘 들어서는 잘 마시지도 못하는 막걸리를 잔뜩 희석해 한 잔 마시고 맘 단디이 먹고 같이 버티고 있으니 이것이 고양이와 집사의 대치가 아니고 무엇이겠노...
그러다 저녁 무렵, 친구와 오랜만에 통화를 하고 있는데 이 고양이 좀 보소. 그저께 명태트릿이 도착하기 전에 약 복용 후 보상으로 주려고 샀건 황태채를, 이중으로 지퍼팩 포장까지 해 둬 냄새도 나지 않을텐데 인간 식탁 위에까지 기어 올라가서 가져왔다.
고양이에게는 작지도 않은 물건인데 사고를 치려면 조용히 부엌에서 치든가, 저걸 왜 방으로까지 질질 끌고 오느냐고요~ 그리고 지퍼백이란 저 물건, 믿어도 되나? 냄새가 고양이 코에까지 맡아진다는 뜻이잖아?
한참을 부스럭대며 이리 뒤적 저리 뒤적 하다가
"우짜꼬..."하는 표정으로 이쪽을 힐끔본다. 설마 이 중으로 포장해 놨는데 네가 그걸 뜯기까지 하랴, 집사는 통화를 계속 하면서 앉은 자리에서 사진만 찍고 있다.
그러다 이 고양이가 늘 제 먹이 해체쇼를 하는 바구니에까지 이걸 끌고 가는 것까지 봤지만
설마!
이 고양이가 입에 물고 있는 것은 정녕 황태채임이 틀림없다.
저 황태채는 사람용으로 나온 것이라 껍질, 뼈, 육질까지 다 살펴가며 고양이에게 줘야하는데 아무 것이나 제 입에 닿는대로... 이미 입에 물고 있는 건 빼앗을 수 없지만 나머지는 봉지째 압수!
[빨갛게 표시 한 저 과기를, 내가 진짜로 애지중지 하던 그 물건을, 이 고양이가 한 손으로 작업대 밖으로 내동댕이 쳤다]
사실 경철 고양이가 평소에는 겁 많고 소극적인 것 같지만 잔망스럽기로는 철수를 훨씬 앞질러 가서 한 번은(3년 전) 부엌 작업대 위에서 세수대야 만한 과기를 손으로 톡톡, 밖으로 밀어내서 와장창 깨뜨린 적이 있을 정도다. 핸드폰, 카메라는 말 할 것도 없고 때로는 밥이 담긴 밥그릇까지~
그리고 집사는 이래저래 마음이 똥밭이라 시간을 잊고자 내내 바구니만 짜고 있으니 바닥에 같이 있기도 싫던 모양인지 침대 위에서 눈을 감고... 자는 것 같지만 갑자기 즈들이 왜 굶기 시작했는지 이해가 안 되니 이에 분을 삭이는 중일 수도 있다.
사진을 찍으니 세상 처량한 표정으로 집사를 올려다 본다. 그리 봐서 그런가 눈까지 때꾼해진 것 같은 불쌍한 내 시키...
장남 고양이의 바구니 반항 그리고 처량한 눈빛 거기에 고양이 밥 안 주려고 낯술까지 마시고 버티는 집사... 그야말로 배 고픈 고양이 형제와 마음 고픈 집사, 환상의 조합이다.
병원 가는 일도 병원 약 먹이는 일도 이제는 진저리가 나 (경철은 만 7.5개월 동안, 철수는 40일) 쌤이 처방 해주신 유산균과 식이요법으로 어떻게든, 적어도 3개월은 버텨보려 마음을 망치로 쳐도 안 깨지게 단단히 먹고 있다. 제 새끼 입에 단 것 먹이려고 병 날 것 알면서 주는 부모는 없으니까...
누가 그랬다더라, 고양이 새끼 가지고 별나게도 군다고, 그 사람('나'를 지칭) 돈 많으냐고! - 남이사!!! 너나 잘 하세요!!!
아무튼, 그에 따라 했을 대답도 상상하니 씁쓸하기 짝이 없고 그래서 고양이는 배가 고프고 집사는 마음이 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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