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목요일, 1월30일에 식이 알러지를 앓는 고양이용 캔과 건사료가 드디어 도착했다.
이 브랜드를 선택한 이유는 중성화 수술 이 후에 먹였던 AD캔이 반응이 괜찮았기도 하고 가장 큰 이유는 캔도 함께 나오는 브랜드가 이것 뿐이었기 때문이다. 알러지 식이 요법을 할 때는 한 가지만 먹이고 다른 것은 가능한 한 안 먹이는 것이 좋다는 지침을 따르기 위함도 있었고 건사료보다는 캔을 먹어주기 바라는 마음이 컸던 탓도 있었다.
나는 새 사료 소개는 언제나 바닥에 낱낱이 뿌려 사냥하는 것처럼 흥미를 유발시켜 줏어먹게 하는데 뿌리자 마자 경철 고양이는 이미 멀찌감치 제 바구니로 피신했고 철수 고양이만 몇 알 줏어 먹다가 "너는 안 먹어?" 하듯 돌아본다. 벌써부터 실패의 느낌이 물씬!
할 수 없이 경철 고양이 쪽으로 다시 몇 알을 흩뿌리니 한참을 내려다보다
냄새를 맡아보니 독약은 아닌 것 같았는지
세 알 정도 줏어먹고는
이게 안 없어지면 내가 피하는 수 밖에...?
두 번째로 사료로부터 멀어져 바구니 동굴로 피신했다.
그나마 철수가 몇 알 더 줏어 먹기는 하지만 그렇게 환장해서 먹지는 않는다.
자꾸 피한다고 포기할 집사가 아니다. 다시 몇 알을 제 코 앞에 가져다 놓으니 "이걸 내가 먹어줘야 끝이 날 모양이다"의 표정이더니
집사의 성의를 봐서...
제 앞에 있던 정확히 6알을 먹길래 잘 먹나? 하고 세 알을 더 얹어주니
이미 사라지고 안 계신다.
그렇게 사료 시식은 "배 고파 죽겠으면 먹긴 하겠다" 정도로 진단이 나왔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캔을 따주니 두 녀석 모두 와서 맛을 보기는 한다.
하지만 둘 다 표정이
행복해 보이지를 않는다.
이렇게 끝! 전혀 먹었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양이 줄어들지 않았고 이 후로 배 고플 때마다 식탁에 얼씬거리면서도 두 녀석 모두 맨 입으로 돌아서기를 토요일 아침까지.
다행히 순채식 사료가 알러지를 일으키지 않는다 해서 샘플 주문한 것이 토요일 아침에 도착, (난 육식 동물인 고양이에게 채식이라니 동물학대가 따로 없다고 늘 생각하던 사람인데 절박해지니 시험 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시 바닥에 흩뿌려주니 침대 밑에 있던 경철 고양이도 호기심에 스르륵 기어나와 몇 알 드신다. 아이고 귀여운 고양이 시키!
그리고 다음 장면. 이 사료는 먼저 받은 H 사료보다 훨씬 더 인기가 없다. 그리고 건사료를 먹으면 잘 토하는 철수는 그 사이 한 번 구토도 했다.
일요일인 오늘도 내내 굶고 있어 건사료와 습식에 동결건조오리를 얹어주니 두 녀석 모두 오리만 핥아 먹고 건사료나 습사료 모두 먹는다고 할 수준이 아니다. 입에 맞는 처방식 사료를 찾을 때까지는 곤충 츄르와 동결건조 오리로 연명을 해야 할 모양이다.
접해본 일이 없는 단백질이 안전한 편이고 가수분해를 했다 해서 악어트릿,
이건 경철 고양이가 아기 때부터 환장하던 명태트릿 - 평소에 너무 비싸 황태만 가끔 주고 못 사먹였는데 할인 하길래 주문 (명태가 알러지원일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기도 하고(자주 안 먹었으니까) - 대신 철수는 입에도 안 댐)
좋은 음식을 만드는 회사는 아니지만 고집이라는 간식도 가수분해를 했다해서
그리고 이 건사료는 샘플 구입이 가능해 일단 주문
또다른 처방식을 시험해보고 싶었지만 습사료가 없어서 포기 - 스페시픽이라는 처방사료에 습식이 있는 것을 발견 했지만 또 힐즈처럼 내쳐지기 전에 샘플 먼저 구해 볼 생각이다.
이러는 와중에 생각해보니 경철 고양이의 귀는 아기 때부터 상태가 별로였는데 첫 진단에서 문제가 없다고 하는 바람에 그냥 귀지가 많은 아이로만 생각하고 방치했던 탓인 것 같고 철수 고양이의 탈모는 이 집에 이사 오고부터였는데 원인이 곰팡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 (집 안의 곰팡이는 거의 잡았지만 현관 곰팡이는 방법이 없다. 집주인에게 날 풀리면 현관에 타일공사라도 해닿라고 이야기 해 두긴 했다)이 들기도 한다.
그러니 정말 식이 알러지일지, 환경 문제일지 그것도 아니면 뭔가 다른 것이 숨겨져 있는지 이 모든 걸 다 병원에서 정확한 진단을 받아봐야 알 수 있을 것인데 여기서 함정은 선생님들도 정확히 이걸 하면 해결 된다, 를 하지 못하신다는 것이다(검사를 하면 수 십 가지 알러지원이 나오기 때문에 그걸 다 따지면 먹일 수 있는 것이 없을 정도라는 집사들의 경험담) 그리고 기호성 좋은 처방식을 찾았다 해서 무조건 문제가 해결 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 그러니 해결은 고스란히 집사의 몫이 되고 그 개고생을 언제까지 해야하나, 그냥 P사의 음식들만 끊는 걸로 쉽게 갈까라는 유혹마저 받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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